어차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삶을 살면서 누구나
어떤 어려움, 고통을 피할 수는 없다고 오랫동안 생각해 왔다.
하나의 고통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아 저 쪽으로 이동하면,
거기에서도 또다시 – 거의 필연적으로 – 어려움이 생겨날 것이다.
다른 종류의 어려움일 뿐
고통 자체는 삶과 함께 늘 거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통을 찾아간다는 것과도 상통하는 것 아닐까.
어차피 삶 속에서 고통을 제할 수 없다면,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아
그 삶 속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수용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나마 그렇게 살아갈 때
우리 삶의 고통은 의미를 갖게 되는 것 아닐까.
스스로 충족감을 느끼지 못하며
너무나 힘이 든다면
그 일을 오랫동안 지속하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고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고통의 종류를 찾는 것은
그런 면에서 중요하다.
타인의 몸이 자신의 몸과 닿는 것이 불편한 사람이
레슬링 선수로 계속 살아가기는 힘든 일이다.
자신과 어울리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지.
그것은 어쩔 수 없이 삶 속에서 살아가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시행착오를 거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진실을 받아들이면서.
지식과 정보, 분석과 느낌, 직관을 총동원하겠지만
삶의 총체성을 따라갈 수는 없다.
자신이 되고 싶었던 사람과 될 수 있는 사람의 차이를,
때로는 깊은 괴로움을 느끼며 수용하면서.
그러면서 우리는 조금씩 삶에서
우리에게 가능한 고통과 불가능한 고통을 가늠하게 된다.
몸과 정신, 마음과 영혼을 잘 살피면서
자신에게 만족감을 주는 삶의 요소들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인해 감당해야 하는 고통의 항목들을 점검하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삶을 찾아가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어렵지만 통과해가야 하는 어떤 시기도 있다.
그것을 견딜 수 있는가 또는 그 시기를 통과할 용기가 있는가는
참 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시간을 가졌다고 여기기 쉽지만
그것은 착각인지도 모른다.
실은 시간이 우리를 품고 있다.
한 시기를 놓치면 어떤 종류의 삶은 거기서 결정되고 말기도 한다.
어떤 종류의 삶은 인간의 특정한 시기,
그의 생기와 에너지, 관심사가 세상과 특정한 방식으로 만나는 시점을 요구하기도 한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고통을 가늠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삶의 의미와 맞닿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우슈비츠 생존자이자 정신과 의사였던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라는 극도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음에 경이를 느끼고 그 이유를 찾았다.
그는 그것이 ‘의미’였다고 전한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가족을 만나야 한다거나, 또는 그저 죽고 싶지 않다는 생각 하나라도,
자신에게 살아야 할 이유, 그 끔찍한 시간이 도달해야 할 의미가 있다면,
그 사람들은 계속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급속도로 잃어갔고, 결국에는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것은
고통을 견디게 해준다는 점에서 소중하다.
사람들에게 허망함을 안겨주는 조직이나 사회가 위험한 것은
그것이 의미와 자부심,
삶의 에너지를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최근 예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고등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무조건 남과 달라 보이려는 학생도 있었고
진로를 정하지 못한 학생들도 많았다.
희망을 품은 학생들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보였다.
이야기를 들으러 모인 아이들의 눈을 바라보며
쉽지 않은 길을 꿈꾸는 아이들 앞에서
또 하나의 신기루를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을 하건
스스로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고 말하자
아이들은 자주 들었던 말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그런데 그 앎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자신이 바라던 결론이 아닐 수도 있다고.
나를, 세상을, 알아간다는 것은 멋진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환하고도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러나 힘주어 덧붙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은 실망할 일이 아니라
아주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우리는 신나게 그림을 그리며 만남을 마쳤다.
text by 엘렌의 가을
photo by Dan Go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