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읽기 귀찮으신 분들은 동영상도 확인해보세요~
누군가 테이블 모서리에 커피잔을 올려두면 커피잔이 테이블에 닿기도 전에
벌써 떨어뜨려 새까만 커피가 블라우스에 튀고 산산조각 난 유리가 사방에 퍼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자동적으로 눈앞에 스틸컷처럼 떠오른다.
거의 매 순간이 이렇다 보니 일을 하면서 엉켜있는 생각과 이미지화된 것을 글이나 도표로 풀어내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에 대해 똑같이 정리해 보려고 했다.
평생 해온 일 자체가 문제점 도출, 파악, 해결점 제안이다 보니 공황장애도 비슷하게 문제와 원인을 알면 해결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는 것처럼 문제를 파악하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남들 다 겪는 시월드라든지 남들 다 겪는 성차별이라든지 남들 다 겪는 직장 스트레스라든지
그런데 정리를 하다 보니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써내려 가기만 했는데도 공황발작이 올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어느 상황에 공황발작이 오는지만 대충 짚고 넘어갔다.
그럼 그 상황을 피하든 마음의 준비를 하든 약을 미리 먹든 대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다.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집에서 가깝고 칼퇴가 가능한 직장으로 연봉을 확 낮춰서 들어간 회사는
말 그대로 쓰레기들이 모인 쓰레기 회사였다.
들어가기 전에는 일 욕심도 버리자, 워라벨 맞춰가면서 살 수 있으니 쓰레기통이면 어떠랴 하고 들어갔는데 역시 쓰레기통에 살면 사람이 아프다.
저녁은 그나마 나보다 체력이 좋은 남편이 했다.
그러고 나면 둘 다 손가락 까딱할 힘도 없어 집은 엉망진창이었다.
아이를 재우고 둘이 소파에 늘어져 인터넷 쇼핑을 했다.
사람들 앞에 나서 설득할 일이 많은 나는 ‘옷’을 전투복쯤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당하게 옷 쇼핑을 해댔다.
이렇게 사들인 옷은 막상 도착하면 내가 이런 걸 왜 샀지? 싶거나 아예 기억이 안나는 것들도 많았다.
대충 사고 처박아 놓은 옷들만 많다 보니 터져 가는 옷장 속에서 막상 입을 옷은 찾을 수가 없어 매일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주말마다 정리해야지 생각은 하지만 막상 주말이 되면 밀린 집안일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하다 보면 주중보다 더 힘든 스케줄을 보내기 일쑤였다.
세일 알람과 혜택을 받기 위해 우르르 설치한 쇼핑앱들도 1,2개만 남기고 다 지웠다.
성격상 수치를 정하면 그 목표에 달성할 때까지 몇 날 밤을 세서라도 나 자신을 몰아붙일 걸 알기 때문에 일부러 몇 벌 혹은 옷장 이만큼 하는 식의 눈에 보이는 목표는 피했다.
어차피 체력상 시간상 한꺼번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보일 때마다 찔끔찔끔 정리를 해 나갔다.
상한 옷은 버리고 멀쩡한 옷은 기부하기 위해 베란다에 던져 놓았다.
어느 날은 하루 한 벌, 어느 날은 20벌 가까이.
나의 궁극적 목표는 전부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고 잘 입는 옷만 남기는 것.
인생은 어렵다. 그러니 일단 오늘은 옷장이라도 내가 컨트롤하는 것.
옷이 아니라 나 자신을 갑옷처럼 딴딴하게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