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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Apr 06. 2021

뉴질랜드에서 잡채로 지구정복

뉴질랜드 2


바닥은 몸 누일 자리도 없는 Cozy함의 정석, 나의 첫 자취방


나의 첫 자취방의 주인은 뉴질랜드인 커플, 클레어와 제임스이었다.

그리고 옆방에는 토모코라는 플랫메이트(Flatmate, 룸메이트와 달리 함께 살지만 방은 따로 쓴다)가 살고 있었다. 토모코는 아트스쿨을 다니며 미용실에서 파트파임 일을 겸하고 있어 밤 늦게야 얼굴을 겨우 볼 수 있었다.


반면 제임스와 클레어는 다른 뉴질랜드 가게와 마찬가지로 저녁이면 가게문을 닫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만들어 먹었는데 시간이 비슷하다보니 자연스레 내가 그 자리에 끼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메뉴는 각자 따로따로.

그러다 서로 많이 친해진 어느 날, 제임스가 제안했다.


"우리 일주일에 한번 돌아가며 요리 하는 거 어때?"


헉! 이럴수가. 위기였다. 요똥인데..이사가야 되나?

내가 망설이는 듯하자 클레어가 얼른 덧붙였다.


"우리 네명이 돌아가면서 하면 한달에 한번 네 차례가 올거야."


제임스도 거들었다.

"토모코도 요즘 너무 집에 안 들어와서 미안하대. 같이 밥 먹으면 일주일에 한번은 이야기도 하고 좋잖아.

아, 물론 네가 싫다면 강요하진 않을게. No worries."


과연 그랬다. 한달에 한번이라면 도전해 볼만 했다. 나의 긍정회로는 바로 팔랑거리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클레어는 거의 요리하는 모습을 본 적 없지만 제임스와 토모코는 요리를 잘했다.

그럼 한달에 한번만 고생하면 세번은 맛있는 요리를 (그것도 공짜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완전 좋아!"


 



제임스는 뉴질랜드 남자답게 바베큐와 감자요리를 했다. (몇몇 서양권 남자들은 바베큐 요리를 잘 하는 것이 남자다움이라고 생각한다.)


뉴질랜드로 온 후 거의 처음 먹어보는 제대로 된 집밥이라 눈물이 나올 뻔 했다.


다음은 토모코. 원래 내 순서였는데 그동안 미안하다며(왜?) 자신이 먼저 요리하길 자처했다.

토모코는 연어회를 꽃처럼 장식한 연어덮밥과 치킨 가라아게를 선보였다.


일단 화려한 비주얼에서 합격. 연어덮밥이야 연어가 다 했다쳐도 치킨 가아게는 정말 맛있었다. 겉은 바삭, 속은 촉촉했고 집에서 튀김을 한다는 것 자체를 상상 해 본적 없는 나에게 가히 충격이었다.


그 다음이 나인데... 허들이 너무 높았다. 그런데 또 요똥인 주제에 승부욕이 타올랐다. 왠지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 경합하는 느낌적인 느낌? 이럼 또 한국인은 절대 물러서지 않지.


아는 한국 요리의 레시피를 모두 찾았다. 일단 요똥인 나도 가능해야 하고 외국인 입맛에도 맛아야 하며 현지에서 재료를 구할 수 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한국 음식들은 다 매운거야! (흑흑)


학원에서도 여기저기 물어보니 맵지 않은 요리 중 외국인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갈비찜이나 불고기를 많이 추천해줬다. 그런데 난 돈이 없다. 먹을 것을 가장 많이 아끼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달에 한 번, 큰 출혈은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메뉴는 잡채! 비싼 한국마켓에서 구매할 재료는 당면이 전부인 완벽한 메뉴였다.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잡채 어떻게 만드는 거야?"

"잡채? 왜? 잡채 귀찮아, 하지마."

"해야 돼. 사는 집에서 각자 돌아가면서 요리하기로 했어."

"아, 그럼 볶음밥 같은 거나 해. 다 넣고 볶으면 되잖아."

"그건 나중에 할 거 떨어지면. 빨리 잡채 어떻게 해?"


한번 해보니 잡채는 어렵지 않은 요리였다. 그냥 무지 귀찮은 요리였다.


짜잔!


반응은 대 성공!

쌀밥, 계란국, 그리고 잡채가 다였다. 잡채를 가운데 산처럼 쌓아 놓고 각자 그릇에 파스타처럼 덜어 먹으니 그럴싸한 한 상이 차려졌다.


다들 그릇을 싹싹 비웠고 난 그 모습을 백종원에 빙의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다음날 아침, 학원에 등교하려는데 제임스와 클레어가 날 불렀다.


"혹시 어제 좝최 남았어?"

"좝최..? 아, 잡채? 남았어. 여기"


양조절에 실패해 한가득 통에 담긴 잡채를 보여주자 둘의 얼굴이 밝아졌다.


"와! 다행이다. 우리 이거 너-무 맛있어서 점심에 싸 가려고."

"와, 진짜? 고마워!"

"앞으로 넌 딴 요리 하지말고 잡채만 해도 될 거 같아. 내 평생 먹은 요리 중 최고야."


이겼다!

신나서 방방 뛰다가 잡채를 싸들고 나가려는 두 뉴질랜드인의 뒤통수에 대고 다급하게 외쳤다.


"야야,그거 차가우면 맛없다! 렌지넣고 한 3분 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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