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장 와이프, 경은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원장이 손질이 잘 된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기며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미정이 미리 꺼낸 카드로 카운터를 톡 톡 두드렸다. 무의식 중에 하는 행동이겠지만 왠지 재촉하는 듯해 그 소리가 거슬렸다.
“그냥 해주세요.”
“일시불이요?”
“네.”
일시불로 한 걸 알면 남편이 잔소리하겠지만 나중에 카드 앱에서 3개월 할부로 변경 가능하니까.
옆에서 미정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쑥 내밀었다.
“저도 일시불이요.”
‘이미정'이라고 적힌 신용카드를 들고 있는 손에 반들거리는 코랄빛 네일이 눈에 들어왔다. 경은은 큐티클 정리를 못한 자신의 손톱이 생각나 원장이 내미는 남편의 카드를 재빨리 챙겼다.
“어유, 시원해. 상한 거 다 쳐냈더니 날아갈 것 같아. 그동안 거지 존이라 묶고만 다녔거든. 원장이 머리 잘하네.”
미정은 연신 손으로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미정의 말과는 달리 고작 3cm 정도 다듬은 게 다였다.
“여태 마음에 차는 헤어샵을 못 찾았는데 나도 앞으로 여기 원장한테만 머리 해야겠어.”
미정은 경은이 소개해준 청담동 헤어샵이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응, 그래서 나도 여기만 다니잖아.”
경은은 자신의 긴 머리를 손으로 쓸며 말했다. 동네 미용실보다 3배는 넘는 가격에 청담동이라 집에서 거리도 멀지만 경은은 결혼 전부터 이곳에서만 머리를 했다.
이곳에서 서비스받는 느낌이 좋았다. 고급스러운 가운을 입고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서비스로 제공되는 커피를 마시며 트리트먼트 케어를 받으면 독박 육아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렸다.
미정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가자, 점심 먹으러. 소개받은 값으로 내가 쏠게.”
미정이 앱으로 택시를 부르는 동안 경은은 인스타에 올릴 인증샷을 골랐다. 가운을 입고 고급스러운 커피잔을 들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사진으로 골라 업로드했다.
‘#청담동헤어 #홍원장님사랑해요
#헤어샵커피퀄리티실화 #관리받는여자…
택시가 도착했다.
"판교 가는 손님 맞으시죠?"
“네에"
경은은 테이블 가득 놓인 음식들의 사진을 연신 찍었다. 이미 인스타에 업로드를 마친 미정은 포크를 들었다.
“대충하고 먹자. 나 배고파 죽겠어. 사진 잘 나온 거 내가 보내줄게.”
“응, 알았어.”
미정의 재촉에 경은도 한 손으로 포크를 들었다. 앞에 있는 빵조각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고 건성으로 씹으며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를 열심히 골랐다.
오랜만에 오는 #판교버터풀그랑시에
#유럽가정식 느낌 그대로 테라스에서 즐기는 여유 고급스러운 풍미가 가득한 #클램차우더와 #명품빵…
미정의 전화가 울렸다.
“어, 아들 ~ 집에 왔어? 응, 손 씻고 냉장고에 빵 하나 꺼내먹고.. 응, 너 오늘 영어 가는 날인 거 알지? 학원 숙제하고 있어. 어, 어, 응~”
부지런히 씹던 경은의 턱이 멈췄다. 경은은 손에 들고 있던 빵을 잘게 조각내며 최대한 자연스럽게 물었다.
“영어 학원.. 다닐 만 하대?”
“응. 너무 재밌대. 선생님들도 수준이 다 높아서 그런지 아직 한 달도 안 됐는데 벌써 레벨 3 책을 읽더라고. 돈 값은 하는 거 같아.”
미정은 손으로 빵을 툭 뜯어 입에 가득 넣고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너도 다시 레벨테스트 데려가 봐. 이번에는 붙을 수도 있지. 저번에는 테스트 볼 땐 거의 백지로 냈다며. 좀 예민한 애들은 긴장하면 그럴 수 있다나 봐.”
경은은 자신도 모르게 빵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 계속
(커버이미지: https://unsplash.com/@maddibazzocco) #인간심리 #심리 #안경과장 #영어학원 #판교브런치 #판교맛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