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과장의 부인, 경은
수다를 떨다가 실없는 농담에 미정이 손뼉을 치며 크게 웃었다. 그 바람에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가 찰랑거렸다.
“못 보던 목걸이네? 샀어?”
“아~ 이거, 이번에 생일 선물로 남편한테 받았어.”
“…그래..?”
“응. 난 워낙 뭐 안 차고 다니잖아. 필요 없는데 자꾸 사주겠다는 거야. 결혼 10주년이기도 해서라나. 그런데 막상 선물 받으니까 또 감동이더라고.”
“뭐야, 자랑하는 거야?”
“응~! 자랑 좀 하면 어떠냐? 어차피 나도 남편 생일 선물로 평소에 노래 부르던 자전거 사 줬어. 와, 근데 요즘 자전거 왜 이렇게 비싸?
10주년에 여행 가려고 모은 적금 있었는데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가지도 못하니까, 그거 깨서 사줬거든?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는 거야. 막 눈물이 그렁그렁 해서는 덩치도 산 만한 사람이 그러니까 나도 처음에는 ‘에이, 울어? 울어?’ 하고 놀리다가 둘이 같이 울었어~ 주책이지?"
미정은 말하다 말고 냅킨으로 눈물을 콕콕 찍었다.
“아, 또 생각하니까 눈물 나려고 하네.. 정말 나이 드니까 눈물만 많아져서. 아 난 원래 눈물 많았다 하하.”
미정은 눈물을 찔끔 닦다가 다시 웃었다.
“이럴 때 보면 우리 남편, 덩치만 컸지 속은 너무 여려.
너무 심하게 감동받으니까 나중엔 내가 민망해져서
‘이 맛에 돈 벌지! 와이프 멋져서 막 가슴이 두근대지?’ 이러고 장난치니까 ‘네~! 누님~!’ 막 이러더라고!”
“...”
경은도 그런 미정을 따라 웃었다.
웃으려고 노력했다.
입꼬리를 애써 위로 끌어당겼지만 웃는 것처럼 보였을지는 의문이었다. 미정의 웃음이 꼴 보기 싫었다. 왜 꼴 보기 싫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절대 질투는 아니다. 이 불편함이 질투는 절대 아니다. 미정을 질투하다니 말도 안 됐다.
미정이 생일선물로 받은 목걸이는 한 달 가까이 경은이 갖고 싶어서 끙끙 앓았던 제품이었다. 졸라봤지만 남편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그 목걸이가 생각지도 못한 미정의 목에서 빛나고 있었다.
복직했을 때 미정은 한동안 아이가 눈에 밟혀 일을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 고민을 그녀의 남편이 만류했다고 했다. 그리고 미정의 남편이 육아휴직을 썼다.
그런 미정의 가족을 보며 경은은 궁상떤다고 생각했다.
커리어를 쌓고 싶다는 미정의 말도 허세라고 단정지었다.
‘결국 돈이 궁핍하니까 그 야단법석을 떨어가며 맞벌이하는 거 아냐. 남편이 잘 벌어다 주면 뭐 하러 맞벌이를 해? 그런 주제에 일한다고 유세는, 참나.’
자신의 남편보다 머리 하나는 족히 넘도록 커다란 미정의 남편이 집안일하는 모습을 자주 상상해 봤다. 퇴근하면 집안일을 나눠서 하고 웬만한 반찬은 직접 한다는 그에겐 측은한 마음도 들었다.
‘밖으로 나도는 와이프 만나서 고생하네.
하긴…. 남자가 못나서 지 와이프 돈 벌어오라고 내보내는 인간이면 뭐, 고생해도 싸지. 내가 남자라면 쪽팔릴 거 같은데…’
그런 미정을 질투한다니. 그래. 질투 따위가 아니다.
평소에는 돈 번다고 온갖 궁상을 떨다가 결국엔 비싼 목걸이를 자신에게 자랑하려고 차고 온 그 같잖음이 꼴 보기 싫은 것이다.
미정의 가족은 국산차를 몬다. 언젠가 그 국산차를 보고 안경과장이 비웃은 적이 있었다.
“참나, 맞벌이면 보통 수입이 두 배여야 정상 아니야? 근데 왜 저런 차를 타지?”
그 말에 경은은 눈을 모로 떴다.
“왜, 맞벌이 부럽냐? 나도 나가서 돈 벌어오라고 눈치 주는 거야 지금?”
“뭐라는 거야. 니가 이제 나가서 뭘 하겠다고.
그게 아니라, 내가 맞벌이면 돈 펑펑 쓸 텐데, 국산차나 모는 거 보면 지지리 궁상떨거나 생각보다 저 집, 돈 없는 거 아냐? 돈이 있으면 왜 저러고 살아? 당장 외제차 끌고 다녀야지.”
그제서야 쌜쭉대던 경은이 표정을 풀고 안경과장과 같이 웃었던 것이 기억났다.
미정은 그동안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아무리 남편이 휴직을 하고 집안일과 육아를 도맡아 하고 있어도 퇴근하면 집으로 ‘출근'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번 생일을 맞아 결혼 10년 만에 비싼 미용실에서 머리도 하고 브런치도 먹고 하는 게 솔직히 목걸이 받은 것보다 더 좋다며 웃었다.
‘가식도 가지가지 떨고 있네.
결국엔 나한테 보여주려고 차고 온거 아냐.
지 자랑질 하려고.’
경은은 미정의 그 모습이 같잖았다.
진심으로 같잖아서 이제는 거짓 미소마저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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