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도교수 멱살 잡기
얼마 전에 ‘직장상사의 멱살 잡아끌기’라는 글을 올렸었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적용 가능한 ‘교수의 멱살 잡아끌기’를 쓰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직장상사 2편이 된 것 같다.
팀장이 되었건 교수가 되었건, 날 부려먹는 ‘주인님’으로 대하기보다 가까운 미래의 동료이자 서로 윈-윈 관계로 대하는 게 나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었다. 정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말이다.
내가 일을 거지같이 하면 팀 성과에 영향을 미치니 팀장도 곤란해진다.
그러니 미리미리 질문하고, 서포트를 적극 요청하는 게 서로 윈-윈이다.
내가 거지 같은 논문을 발표하면 함께 이름이 올라가는 교수도 곤란해진다.
그러니 미리미리 질문하고, 서포트를 적극 요청하는 게 서로 윈-윈이다.
대략적인 연구 기획서를 써서 한번 봐 달라고 이메일을 보냈지만 며칠 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 내가 무슨 주제로 논문을 정했는지 몇 번 회의를 할 때마다 얘기를 해도 까먹고 다시 묻기 일쑤였다.
한국 사람답게 처음에는 당연히 ‘내가 교수에게 밉보였나? 아님 뭐 실수했나?’라는 생각을 하고 쪼그라들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를 다닐 때라 다른 동기들처럼 연구실에 기여를 많이 못해서 괜히 혼자 더 눈치를 봤던 거 같다.
일을 하다 늦게 대학원에 들어갔기에 대체 교수를 어떻게 대하는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팀장에게 업무 보고 하듯이 하면 되는지, 아님 ‘선생님’처럼 뭔가 노트와 펜을 들고 교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받아 적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래서 동기들은 교수가 오면 어떻게 하는지 봤다.
교수가 지시(명령)를 내리면 학생들은 그냥 따랐다.(몇년 전 이야기. 요즘은 모르겠다.)
이메일을 먼저 보내지도 않지만 혹여 보내도 교수 답을 마냥 기다렸다.
사실 한국에서 ‘윗사람’이 지시하고 우리는 따르는 수동적인 형태에 익숙할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영영 답이 없는 교수와 상사를 만나면 당황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내 성격상, 환경상 도저히 이렇게는 할 수 없었다. 아는게 도둑질이라 여기가 회사라면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해봤다.
프로젝트 기한이 다가오는데
컨펌할 팀장이 감감무소식이다?
당연히 쳐들어가야지!
(눈빛은 뜨거우나 손가락은 공손하게)
“안녕하십니까 팀장님, 바쁘신 와중에(블라블라) 프로젝트 A건이(블라블라) 확인 부탁드리오며~~”
여기서 팁은 ‘지난번에도 요청드렸는데 깜빡하셨나 봐요?’와 같은 상대방을 지적질하는 말은 하지 말자.
현 상황에 도움도 안되고 인간적으로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쁠 말을 굳이 말해 뭐하나. 중요한 건 기한 안에 내 일을 털어내고 월급 받고 잘 먹고 잘 살고 뭐 그런 거 아닌가.
그럼 어쩔 수 없다. 똥줄 타는 사람이 나서는 수밖에. 그렇게 이번에는 교수의 멱살 잡아끌기가 시작된다.
(대부분 학생을 졸업 시켜야 교수에게 유리하다. 그러니 확실한 근거 없이 일부러 내 졸업을 질질 끈다고 생각하지는 말자. 교수들은 나에게 그렇게까지 쓸 에너지가 없다. 내가 나 살기 바쁘 듯, 교수들도 그렇다.)
답이 없다면 이메일로 답변 듣는 것은 접고 대신 시간을 내달라고 한다.
혹은 측근(가장 가까운 랩실 도비)를 털어서 언제 어디에 교수가 있는지 알아낸다.
그리고 이메일이나 문자, 혹은 전화로 찾아가겠다고 알린다.
예제) 교수님, 논문 제목 상의드리려는데 이번 주 수요일에 OO에서 미팅 있으시다고 들었습니다. 끝날 때 즈음 제가 찾아 뵈어도 될까요?
교수들은 보기보단 바쁘기 때문에 따로 약속을 잡으면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일정과 일정 사이에 짬을 내달라고 하면 거의 모두 흔쾌히 수락했다.
또한, ‘논문 좀 봐주세요’처럼 어마어마한 일보다는 ‘논문 제목’, ‘논문 목차’ 혹은 ‘설문 방식’처럼 작고 구체적으로 요청하자. 보통 30분-1시간 안에 끝낼 수 있는 정도가 좋다.
나 같은 경우 내 논문에 수정이 있을 때나 조언이 필요할 때 논문 쓰는 구글 문서에 교수를 태그 했다. 그 후 당연히 내 문서를 읽지 않았다고 가정하고(확신하고) 문서를 프린트한 후 딱 교수가 30분 분량으로 피드백을 줄 수 있는 질문을 가져갔다.
미팅 시작에는 지난 미팅에 대해 2-3분 브리핑을 하자. 교수나 상사는 기억상실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엄마, 아빠, 애인이 아니므로 당연히 지난번 무슨 얘길 했는지 기억 못 한다.
그러니 간단히 브리핑을 하고 내 논문 진척도에 대해서 간략히 알린다.
그 후 ‘오늘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예제) 지난번 교수님하고 정한 제목이 OOO입니다. 확실히 제목이 확정되고 나니 목차 가닥잡기가 수월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큰 줄기를 잡고 써보려고 하는데 목차 한 번만 봐주세요.
(1) 지난 이야기 > (2) 감사 > 계획 > (3) 오늘의 분량(30분) > (4) 오늘 교수가 할 부분
잘해봐야 본전이고 실수하면 혼나는 학교 시스템에서 자랐다면 더 그렇다. 당연히 완성되지 않은 보고서를 보내며 피드백을 받는 것은 긴장된다. 특히 결과로만 평가받는 게 익숙한 한국사람들은 완성도 높은 작업으로 피드백을 받고 싶을 것이다.
상사는 당신에게 그런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다.
여러 부하직원을 봐왔기 때문에 연차에 따라 당신이 얼마큼의 완성도를 보일지 알고 있다.
교수도 마찬가지. 학생 수십명을 졸업시켜봤으니 당신이 1학년 때 어떤 수준일지 다 알고 전. 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니 부담감을 김칫국처럼 마실 필요가 없다.
수정을 요구하는 피드백을 받으면 우울하기도, 화가 나기도 할 수 있다. 당연히 기분은 좋지 않다.
하지만 수정=부정적, 이런 공식이 아니다. (진짜 부정적일 때는 피드백조차 줄 수 없다.)
수정=다른 사람의 의견 수용
내가 할 일이 확 줄어든 셈이다. 나 혼자 계속 보고 있다면 잘한 부분을 수정한다고 끙끙 앓다 오히려 완성에 멀어질 수 있다. 게다가 혼자 하면 언제 끝내야 될지 모른다.(어차피 완성도 100%는 나올 수 없다)
내 윗사람이 ‘이제 그만, 오케이’라고 하면 나는 아주 아주 맘 편히 넘겨버리면 된다.
이게 컨펌하는 상사의 고뇌이다. 컨펌한 사람의 책임이 되니 오히려 밑의 사람이 맘 편할 때도 있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데 초반부터 작업을 공유해서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 상사가 단순 평가자에서 협력자가 되는 것 같다. (회사 빌런 제외)
적진(최종 보스전/다른 팀과의 미팅)에 출전하기 전 무기(프로젝트)를 비장하게 함께 점검하는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린다. 그럼 든든한 동지애가 형성되는 듯하다.
(대부분) 상사는 나와 같은 편이다.
(아니면 프로젝트 한정, 같은 편이 되자)
(대부분의) 지도교수도 나와 같은 편이다.
이렇게 생각해 버리자.
즉, 깊게 생각하지 말자.
답 없으면 피드백 달라고 하면 되고,
실수하면 '아임 소리'하고,
수정하라 그럼 '오, 땡큐 베리머치'하면 되지.
건강하면 됐다. 내일 다시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