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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너무 추워서 조선시대 굴뚝에 국뽕이 왔어요

ft. 캘리포니아, 뉴질랜드

by 엘레브




요즘 너무 춥다. 한국에서도 난방비가 많이 올라 집에서 내복이나 긴 옷들을 입고 지내긴 했지만 왠지 여기가 더 추운 느낌이다.



아무래도 서양은 실내에서 춥게 사는 게 익숙한 문화인 것 같기도 하다.

뉴질랜드에서 어그 부츠는 외출용이 아니라 실내용이었다. 겨울에는 집에서 양털 조끼를 입고 어그 부츠를 신는 게 디폴트였다. (밖에서 어그 부츠가 보인다면 그건 집에서 신다 갈아 신기 귀찮아서 그냥 어그 부츠를 질질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다.)



뉴질랜드에서 살 때 겨우내 난로를 땠었지만 자는 동안 밤새 불을 켤 순 없으니 잘 때는 전기담요나 물주머니(Water Bottle)를 안고 잤었다.





워터 보틀. 따뜻한 물을 넣고 배 아플 때 얹거나 추울 때 껴안고 자면 정말 따뜻하다. (The art of skiing, 1941 | Walmart.com)




장식용 캘리포니아 벽난로

반대로 캘리포니아에서는 이 벽난로를 아예 막아버리고 틀만 남아 있거나 없애버린 집도 많았다. 겨울 온도라고 해봐야 우리나라 초가을 수준이라 낮에는 반팔에 반바지 차림도 쉽게 볼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벽난로를 막아버린 집도 많음 (thehoneycombhome.com/ | thespruce.com/)





동부의 겨울은 혹독하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벽난로를 보고 미나리가 좋아할 테니 크리스마스 때나 한번 이벤트성으로 불 붙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여긴 너무 춥다!


미국도 난방비가 많이 올라 벽난로를 한번 켜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일단 장작 한 다발만 사 보았다. 가을이 시작되면 마트마다 땔감을 쌓아 놓고 판매한다. 예전 뉴질랜드에서도 그랬지만 여기서도 업체에서 트럭채로 나무를 구매해 마당이나 창고 벽 한 면이 가득 차도록 쟁여 놓는다고 한다.







10년 전 뉴질랜드에서의 기억을 살려 제이를 조종했다.

그때는 하얀색으로 된 네모난 파이어 스타터에 불을 붙였었는데 중요한 것은 나무를 쌓는 모양이다. 나무를 잘 쌓고 여기에 불을 붙이면 알아서 잘 타는데 모양을 잘 못 쌓으면 중간에 불이 꺼지기도 한다. 방법은 먼저 바닥을 쌓고 스타터를 가운데 놓는다. 그리고 그 위에 장작으로 지붕을 덮으면 된다.


(*파이어 스타터 없이 불 붙이려면 연기 마셔가며 토치로 한참 동안 불을 붙여야 장작에 불이 붙는다.)


다양한 파이어 스타터들. 이게 없으면 *고생함. (amazon.com)











단, 불멍을 하다 보면 얼굴을 너무 뜨겁고 뒤통수는 추움.

왜 동화책이나 영화를 보면 벽난로 바로 앞에 의자들이 붙어 있는지 알 거 같다.






경복궁 굴뚝들은 건물에서 뚝 떨어져 있다

경복궁 교태전에 보면 이렇게 정원에 굴뚝이 모여 있다. 보통 벽난로로부터 직선으로 쭉 올라가 건물 지붕에 달려 있는 서양식 굴뚝과는 달리 이곳의 굴뚝은 생활하는 건물에서 뚝 떨어진 형태이다. 왜 그럴까?



건물에서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한 굴뚝들 (경복궁 아미산 후원 굴뚝들 | 국가문화유산포털)



이건 굴뚝 하나도 아름답게 만들었다...에서 그칠 일이 아니다!

방 아래에 불을 때면 바닥 통로를 통해 방 전체를 데우고 한곳에 모여 연기가 빠져나가게 디자인되어 있다! 각 방에서 모인 연기들이 바닥을 통해 방을 데우고 땅에 묻은 통로를 통해 같은 곳으로 빠져나가게 한 점은 정말 너무 놀랍도록 멋지다!


온기와 연기가 방바닥을 데우고 땅에 심은 '연도'를 통해 정원의 굴뚝으로 빠져나가도록 설계했다. (일곽배치도 | 국가문화유산포털)




눈 막고 귀 막고 우리 것만 세계 제일이라고 외치는 '국뽕'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문화유산은 반드시 학교에서 배워야 하지 않을까? 내가 배울 때는 그냥 온돌의 기본 정도만 슥- 읽고 지나갔다. 이렇게 놀라운 굴뚝 설계를 했었다는 걸 대체 왜 안 가르쳐줬는지 모르겠다. 요즘은 배우나?


한국에서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 이 굴뚝을 실물로 처음 봤다. 건축가 집안(?)이라 이런 것에 관심이 특히 많은 제이와 함께 설명을 읽으며 한참을 경이로워하다 내가 질문하니,

수능에 안 나오니까

"영어, 수학하기 바쁜데 문화유산을 가르치겠냐.."

라고 제이가 담담하게 말했다.




아직 내가 서양식 난방 문화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한국 전통 온돌에 대한 방식을 잘 모르듯이 내가 아직 벽난로 불로 집 전체 온도를 높이는 방법을 몰라서일 수도 있다. 벽난로를 켜고 천정에 달린 대형 팬을 돌리면 방 하나 정도는 따뜻해진다. 그러나 옆방으로 온기가 옮겨가진 않는다.


혹시 비법 아시는 분?





우리집 벽난로. 이제 제법 불을 잘 붙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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