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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Jan 10. 2023

미국, 대혹한의 시대-2

천만다행으로 24일에 보일러를 고쳐서 25일은 따스한 겨울을 보냈다. (대혹한의 시대1) 하지만 미나리와 제이가 감기에 걸려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종일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벽난로 켜고 TV로 크리스마스 영화들을 연속으로 보고, 코코아 마시고 그렇게 나름 나쁘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다음날인 26일에는 셋다 컨디션이 좀 나아져서 평소같이 평범하게 저녁을 먹고 있었다.









피자를 한입 베어 물었는데 갑자기 귀가 찢어질 듯한 굉음이 들렸다. 온 건물이 흔들릴 정도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 복도에 있는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있었다.


고민할 것도 없이 건물 밖으로 대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제이가 그 대사를 쳤다.


이럴 때 영화에서

절대 하면 안 되는 대사 3위!


3위: 이제 해치웠나? 살았다! 하하하하! 아악!


2위: 방금 무슨 소리 못 들었어? 방금 뭔가 본 것 같은데? (라고 하면서 찾아 나선다.)


1위: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곧 돌아올게!"라면서 누가 봐도 가지 말아야 할 곳을 간다.

새로운 곳에 가장 먼저 들어간다/먼저 나간다.


이 대사를 치고 행동하는 캐릭터는 사망플래그 오만팔천 퍼센트...


이 중 제이가 친 대사는?









바로 1위, 건물 출구에서 반대인 복도 쪽을 뛰어가며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가서 보고 금방 올게.

“어?! 뭐?”


정신 차리고 가지 말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제이는 없어진 뒤였다. 밥 먹던 차림 그대로 외투도 없이 나갔다. 아니, 가서 자기가 보면 뭘 어쩐다는 말인지....

말릴 틈도 없이 사라진 제이를 보다가 옆에서 많이 놀란 미나리가 있어 정신 차렸다.











그리고 강아지 목줄도 메고 미나리를 챙겨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나와 보니 연기도 불꽃도 없어서 불은 아닌 것 같았다. 날이 너무 추워 오작동인가? 싶을 정도로 사이렌 소리만 빼면 다들 평온했다. 잠시 후 무사히 돌아온 제이도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소방차와 경찰차가 도착했다.















“여기서 꼼짝 말고 미나리랑 있어봐. 내가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올게.”

“뭐!? 가지 마. 애 떨잖아. 차에 다 같이 있자고.”

“아빠~!!! 가지 마!”










 




알고 보니 한파로 건물 옥상에 있는 수도 중 하나가 동파되어 물이 넘쳤다고 한다. 마침 휴가로 집을 비운 사람의 집으로 물이 세는 바람에 건물 경보가 울렸다고 한다. 경보기 아래에 ‘물 넘침’ 글씨가 떴다고 함.

곧 우리는 집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느낌 전달을 위한 그림. 사실과 다릅니다.




경찰들은 돌아갔고 소방대원들은 남아 뒤처리를 하고 건물을 꼼꼼히 점검했다. 우리 집 키도 받아가서 혹시 모를 경우를 전부 점검해 주고 안전하다는 확인을 받은 후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한 입 먹은 저녁밥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들어와서 많이 놀랐을 미나리를 열심히 달랬다.

“많이 놀랐어? 괜찮아, 우리 건물 시스템이 정말 안전하단 뜻이잖아. 물이 좀 흘렀다고 사이렌 울리고 경찰들하고 소방차가 거의 5분도 안 돼서 왔잖아."



추운 날 고생하고 놀랐지만,

이런저런 물난리 소식에 무서웠던 요즘,

좀 오버한다 싶을 정도로 미리미리 대응하는 시스템이 오히려 안심이었다.

실제로 우리는 물 한 방울도 본 적 없을 정도로 다행히 큰일이 아니었다. 옥상 동파된 수도 바로 아랫집 천정으로 물이 약간 흘러서 잠가 놓았다고 한다.


오늘은 별 일 아니었지만 혹시 정말 위급하게 건물 대피를 해야 할 때 가족의 행동요령을 정하기로 했다. 무조건 가족과 함께 신속하게 대피해야 한다는 나의 의견과 혼자 나가서 먼저 상황파악을 위해 살펴보겠다는 제이의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했다.



치열한 논쟁 끝에 결정이 났다.

일단 건물 대피 사이렌이 울리면 건물 밖으로 대피한다. 그 후 가족이 모일 장소를 정했고 아이가 너무 불안해하므로 단독행동하는 사람 없이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미국 소방 지침에서 시키는 대로 하기로 했다.)


덧)

-20도로 내려가다 보니 다른 지인들은 스프링클러가 터져서 아예 며칠 호텔에 머무른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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