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하면서 도움이 되는 한국인의 강점과 단점
8월 이면 미국 온 지 벌써 일 년이에요.
작년 8월 당시 고민하고 불안했던 것과 실제 겪은 건 많이 달라서 오늘은 그 일 년 동안의 후기를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이 나이에 공부가 가능할까
이 나이에 영어로 외국에 사는 게 가능한가
늙었다고 차별당하면?
아무리 동양인은 어려 보인다 해도 갑자기 제가 20살로 보일 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한두 달은 내 나이에 가능할까 와 내 나이가 어때서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이런 우려도 따지고 보니 오래된 프레임에서 온 거더라고요.
그 테두리를 벗어나면 큰일 나고 정답이 아니면 다들 손가락질할 거라고.
그런데 지나고 보니 다들 자기 살기 바빠서 안 그래요.
이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인 게 십 년 함께 일한 사람들도 서로 몇 살인지 몰라요.
젊은 벼슬, 늙은 벼슬 둘 다 없습니다.
해외에 계신 분들은 아하 하실 거예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은 동양의 작은 나라였어요. 북한과 헷갈리고 전쟁이 있었고 일본 중국 그 어딘가 포지션 애매한 곳이요.
한국인이라 하면 북한 남한 어디서 왔어? 이렇게 물어봤거든요(요즘도 간간이 있긴 합니다)
한국 사람이라고 하면 일단 너무 반가워합니다. 자기들이 저보다 더 신나서 저도 처음 들어보는 가수나 드라마 이야기를 해줘요. 제가 오히려 공부해야 할 판.
저도 잘 안 먹는 한국 음식이나 폭탄주 제조법을 물어봐서 같이 찾아보기도 했어요.
교수님 마저 "K-pop에 관심 있는 사람은 한국에서 어디로 놀러가야돼?"라면서
"고궁이나 유적지는 이미 다 가봤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딜 가든 한국인이라는 걸 당당하게 (당연하지만) 밝히게 됩니다. 매일 5개 이상 한국 관련 질문을 받게 되는 거 같아요. 한국 문화에 대해서 관심이 얼마나 많은지 '눈치'라는 단어까지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뼛속 깊이 새겨진 한국 문화 때문에 힘들었어요.
이건 예전 한국 문화에 길들여진 세대만의 이야기일수 있습니다.
이제는 많이 바뀌어서 Gen Z 세대는 뭔 소리야 하길 바랍니다.
질문하면 선생님들은 수업 흐름 방해한다고 좋아하지도 않고 친구들은 눈치 주고 그러니 질문해 봤자 욕 안 먹으면 다행이었죠.
정답이면 본전이에요. 지금 배우고 있는 내용임에도 대답했다가 틀리면 맞거나 뒤에 서있으라는 둥 벌을 받았으니까요. 그러니 수업 시간에는 그저 수동적으로 가만히 있는 게 혼나지 않고 중간은 가는 방법이었죠.
회사도 마찬가지였어요.
초반에 다니던 회사에서 회의 시간에 한마디 했다가 줄줄이 불려가서 혼났어요
니 연차 주제에 감히. 이 연차는 아직 회의 시간에 입 뗄 연차가 안된다는 거죠.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 누가 물어봤나 했을 거예요. 그래서 “현재 안드로이드 버전은 ㅇㅇ 입니다”
이거 말했어요.
그랬더니 부장이 과장 혼내고 과장이 대리 혼내고 대리가 절 혼내더라고요
그래서 절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이거예요.
발표 안 하는 문화. 질문하면 눈치 주는 문화. 남 시산 의식하는 문화. 의견 피력해 봤자 본전 건지기 힘들고 잘하면 본전 잘못하면 피해가 너무 크고. 경쟁하고 비교하고 눈치주고 눈치주는 문화요.
개인 성향도 있겠죠.
하지만 전 E이고 회사에서 발표할 때가 가장 신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한 학기 동안 깨달은 건 질문을 많이 해야 적극적으로 찍힌다는 것.
왜냐면 대화의 흐름이 내 질문 위주로 돌아가고 내가 중심에 서기 때문이죠. 대답하는 사람들은 나를 내가 가진 의문을 둘러싼 주변인이 되는 느낌이요.
웃긴 게 깊게 세뇌된 한국인이라 이 질문조차도 맞는 질문이 아니라 틀린 질문일까 고민하다 수업 끝나고 했어요.
그래서 첫 학기 동안 수업 시간에 한마디도 못하겠더라고요
그 수업 관련해서 질문 한두 개 준비합니다.
대단할 거 없고 기본적이거나 개인적인 것도 OK!
그리고 시작하자마자 던졌어요.
그럼 아주 좋아합니다. 교수님들이요.
첫 스타트는 누구나 힘들고 수업내용이 자연스럽게 시작되거든요.
학생들도 자기가 대답하겠다고 교수 말을 막을 정도니 자연스럽게 집중하는 수업 분위기가 연출되죠.
남이 한 대답을 반복하고 살짝 자기 의견을 덧붙이기도 많이 해요. 중요한 건 틀린 대답했다고 망신 당하거나 욕먹는 일은 절대 절대 없으니까요.
특히 저에게 좋았던 점은 수업 흐름 끊지도 않고 내용과 상관없는 질문이 되지도 않는다는 거죠. 혹여나 이미 한 질문을 또 던지는 상황도 절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수업마다 질문 한 개 무조건 하기를 목표로 삼고 어렵지 않게 달성하고 있어요.
다음에 또 황당하고 재밌는 에피소드 있으면 돌아오겠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