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이 화근이다.
니가 의사냐, 판검사냐?!
지인 A씨가 오래 전 시어머니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로 들은 말이라고 했다.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똑부러진 일처리와 누가봐도 화려한 스펙과 경력. 그야말로 거의 모든 것이(성질이 굉장히 불같은 점만 빼고) 멋진 분이 집에서는 그런 말을 듣다니.
당시 A씨의 회사에서 8-5부제 (8시 출근, 5시 퇴근)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남편의 아침을 챙겨주기 어렵게 되자 시어머니의 호출이 있었다. A씨를 무릎꿇린 시어머니는 한참을 옆으로 돌아앉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분노를 온 몸으로 표출했다.
어렵게 "어머니" 하고 입을 떼자, 시어머니는 눈에 불을 튀기며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꼴랑 그 직장 나간답시고 애 아침을 굶겨? 그러려고 내가 얘 결혼시킨줄 아냐?!"
옆에 있던 시아버지도 한마디 거들었다.
거 몇 푼 번다고. 집안일 똑바로 못할거면 거 일 그만둬라.
"그런데 제가 더 벌어요, 아버님." 이라고 말했다. 아닌건 아니니까. 그리고 A씨는 평소 글래디에이터 같은 성질을 곱게 접고 말을 이어갔다.
"저희 집 대출도 있고 이자에 원금상환에, 혼자 벌어서는 절대 감당이 안돼요. 돈 때문이라면 더더욱 제가 계속 일을 해야죠." 조곤조곤한 A씨 대답에 시어머님이 말을 끊고 삿대질을 했다.
"니가 의사냐?! 판검사냐?"
시댁의 반대에도 A씨는 일을 계속 했지만 복병은 따로 있었다. 몇년뒤 아이를 출산하자 육아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은퇴 후 지방에 내려가 이제 겨우 당신들 삶을 시작하신 친정부모님을 희생하는 건 도저히 못하겠어서 이모님을 구했으나 마음에 든다 싶은 사람은 구하기 어려웠고 하루아침에 그만두거나 아이가 갑자기 아프면 회사에 연차를 쓰고 아이를 돌보는 것은 모두 A씨의 몫이었다. 둘째가 태어나고 A씨는 결국 일을 그만두었다.
아이들이 어느정도 크고 나서 A씨는 다시 직장을 구했다. 아무리 화려한 스펙에 경력이 있어도 경단녀로서 일을 다시 구하기에 굉장히 고생스러웠지만 너무 좋다고 했다. 일이 체질이라 매일 좀이 쑤시고 미칠뻔해 다시 나왔다고 했다. 나이차가 많이 나 은퇴를 코앞에 둔 남편에게 대학과 결혼이 줄줄이 남은 아이들을 핑계로 설득했다고 했다.
"이번에는 시댁에서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라고 묻자,
"당연히 뭐라 했지."
또 남편 아침밥이 화근이었다.
"10살짜리 막둥이도 아침을 혼자 알아서 먹는데 애들아빠는 그 나이 되도록 사다놓은 빵 하나 못 찾아 먹을까요?" 그랬더니 손주들 아침도 안 차려준다고 난리났다. 빵 먹이고 차가운 시리얼 먹인다고 뭐라 했다. 애엄마가 되서 자식새끼, 서방 건강도 안 챙긴다고.
솔직히 A씨 평소 성격이라면 "그럼 어머니 아들 반납할테니 그 귀한 아들 평생 아침 잘 챙겨주세요."라고 하고도 남았기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내내 당황했었다. 하지만 A씨는 나와 세대가 다르고 그 시어머니는 더 옛날 분이니까.
코로나때문에 갇혀 일을 하다말고 세탁기가 뿜빠뿜빠하고 울려대 한숨을 쉬며 빨래를 널다 문득 A씨 생각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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