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레브 Jul 31. 2020

남의 집 귀한(?) 며느리

본인의 며느리 대하듯 대해 주세요. = 인신공격을 마음껏 해주세요?


알바생들의 티셔츠에 종종 '저도 집에 가면 귀한 딸, 아들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집에 있는 당신의 딸, 아들 대하듯이 아르바이트생들을 대해 달라는 의미로 붙어 있는 문구이다.



출처: YTN Youtube




저도 누군가의 며느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결혼한 여자로 보이면 (아이를 안고 있다거나) 전국의 시어머니들 눈에는 '며느리' 사인이라도 보이나 보다. 아이를 안고 나가 확실한 '누군가의 며느리' 임이 상기되면 세상의 모든 시어머니들은 그 여자들을 자기 며느리 대하듯이 대한다.


아이를 안고 나갔을 때와 혼자 나갔을 때 사람들이 날 대하는 태도가 극명하게 다르다. 혼자 있을 때 낯선 이들은 나에게 길도 잘 묻지 않는다. 반면에 나에게 '며느리' 딱지가 보이면 갑자기 나의 나이, 국적, 직업에 상관없다.


그날도 오랜만에 휴가를 내고 미나리와 처음으로 지하철을 탔다.

옆에 앉은 할머니가 아기가 예쁘다며 지나가는 말을 하길래 나도 응당 익숙한 감사 인사를 하고는 난생처음 탄 지하철이 마냥 신기한 미나리와 놀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결에 스치듯 옆에서 뭔가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애 코를 보니까 엄마 코가 자연산이 아닌갑다..


뭐? 뭔 헛소리야

게다가 말을 하려면 하고 말라면 말지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을 투명인간 취급하듯이 속닥대는 건 무슨 예의인가?!


가뜩이나 한 성질 하는 데다 할 말이 있으면 입에서 거르지 않고 나오는 편인데 (참조: 유부녀가 날씨 좋아서 뭐하게) 하필 자식새끼를 건드려서 이때 나는 화가 많이 났다.


반대쪽으로 돌아 앉아 요즘 것들은 수술해서 얼굴이 다 똑같다느니 TV꼴 보기 싫다느니 중얼대는 할머니의 팔뚝을 움켜잡고 내 얼굴을 할머니 얼굴 앞으로 들이밀면서 할머니의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이 꽉 물고.

"자. 연. 산.이에요."

"뭐?"

"수술 안 했다고요. 그리고 애기들 코가 다 이렇지 그럼!"

그랬더니 오는 대답이 가관이다.

그럼 술을 마신 건가...(중얼) 우리 아들은 코가 오똑한데 우리 며느리가 큰 애 낳았을 때 애 코가 납-짝하길래 아, 임신했을 때 얘가 술 마셨구나~ 했는데....


급기야 나는 다다다 쏘아붙이게 되었다.


"의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데 그런 게 어딨어~? 임신 중 술 많이 마시면 기형 확률이 올라간다고는 해도, 언제부터 코 낮은 게 기형이래요? 원래 엄마 아빠 말고 건너 건너 닮기도 하잖아요. 그리고 얘 코는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덧붙였다.

"큰 손주 코는 할머니 닮은 거 아니에요?!"

가만 보니 할머니 코가 낮다. 굉장히.


"큰손 주가 나를 많이 닮았다고는 하던데.. (중얼중얼)"

할머니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깨달음이 왔다.
'아, 이 분은 본인 며느리를 이런 식으로 대하겠구나...'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억측으로 생사람 잡았겠구나.. 얼굴도 본 적 없는 그 며느리분 정말 답답하겠다.

난 5분도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그 집 며느리분을 생각하니 정말 안타까웠다.

차라리 본인 며느리에게 '너 임신 중에 술 마셔서 얘 코가 이렇게 낮은 거니?'라고 말했기를 빌었다. 그래야 며느리가 반론이라도 했을 것 아닌가.

 






#시월드 #며느리에세이 #남의집며느리 #내집며느리 #남의집귀한딸 #애기코가어때서 #갑질 #그림에세이 #일러스트에세이 #에세이 #공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