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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레브 Jul 22. 2020

왜 엄마는 초대받지 못했을까

5살의 되바라진 항변


쪼그만 게 되바라졌다니까,
대체 누굴 닮았나 몰라


또 시작이다. 안 들리는 척 얼굴을 책 사이에 처박고 단어들을 노려본 채로 아무리 불러도 안 들리는 척했더니 고모가 이번에는 집중력이 좋은 게 역시 자기 집안 핏줄이랜다.

방금 전에는 어린애가 못하는 말이 없다며 엄마더러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운다고 뭐라 하더니.




처음 '되바라지다' 라는 말을 들은 그날도 명절이라 큰집에 모두 모여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 남자들은 죄다 나가고 여자들만 남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뽀얀 빛을 내는 꽃이 그려진 접시에 금색으로 칠해진 조그만 과일포크가 너무 예뻐 혼자 공주님의 티 파티 놀이를 신나게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엄마가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달콤한 멜론을 깎고 있었는데 어디 갔을까? 이 사과 엄마가 좋아하는데? 이제 몇 개 없는데? 하고 뽈뽈뽈 엄마를 찾아다녔더니 엄마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내 등 뒤에서는 여전히 고모, 사촌 언니들, 큰엄마, 할머니가 다 같이 수다를 떨며 큰 소리로 웃는 게 들리는데 엄마는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뒤를 휙 돌아 쿵쿵쿵. 방금 전까지 내가 공주님 놀이를 하던 그 티파티가 열리는 곳으로 걸어갔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 주변이 뜨근해지면서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니, 우리 엄마가 제일 공주님 같은데 왜 하녀같이 일만 해?’

쿵쿵쿵.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해야 나의 분노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 생각했다.


드디어 도착.


테이블 앞에 내가 가만히 서자 어른들이 말을 끊고 날 바라봤다. 주먹을 꼭 쥐고 크게 들이 마신 숨을 배에 가득 넣고 힘을 꽉 줬다.

배에 들어찬 숨을 가슴으로 올려보내며 내내 속으로 연습한 말을 있는 힘껏 빼액! 질렀다.


우리 엄마 파출소 아니야!

“?.....”

“뭐?”


아씨.. 망했다.


“뭐 파출소? 그게 뭐고?”

“파출소? 경찰?”

그러다 사촌언니가 “어머, 어머, 파출부~ 파출부 말하나 봐"


“으잉? 하이고, 막내야, 이리 와라~ 얘가 지 엄마 부려먹는다고 우리 혼낸다~”

“오고, 속상했어~~ 엄마 일 시킨다고~”

“애 말하는 거 봐. 누굴 닮아 저렇게 되바라졌나 몰라"

“아이고 함무니가 잘못했다~ 엄마 이제 일 안 킬게~응? 울지 마라~~”


야심 찬 나의 항변은 혀가 꼬이는 바람에 그저 5살짜리의 귀여운 짓거리로 전략해버렸다.

결국 엄마는 자리에 앉고 날 달래줬지만 난 울음을 멈출 수가 없어 그냥 대놓고 한참을 펑펑 울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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