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시간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
부둣가에 앉아있었던 날
기억에는 없지만 무의식 어딘가에 새겨진 기억들이
있다.
윤슬의 기억, 눈부시고 찬란한 반짝임 속에
스며들어 있는 짙은 그리움과 깊은 슬픔
매일매일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기다렸다.
기억에 없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기억해 주는 사람에게서 듣는다.
그 섬에는 하루에 한 번 배가 들어온다고 했다.
그 뱃머리에 나가 해가 저물 때까지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는 오지 않았다.
5살 소녀는 무슨 생각으로 매일 그곳에 나갔을까.
그리움 때문이었으리라.
그 소녀 곁에는 외할아버지가 계셨다.
그 시간 어떤 기억들은 소녀의 피부 어딘가,
가슴속 어느 곳에 내려앉아 있지만 말하여지지는 않는다.
소녀 대신 그 기억을 따뜻하게 소환해 주시는
외할아버지
소녀 혼자의 기억 속에는 짙은 그리움과 깊은 슬픔들이
군데군데 남아 순간순간 아프게 떠오른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소녀의 어린 시절은
옛날 옛날 어느 마을에
한 소녀가 살았어
그 소녀는 눈이 크고
말을 잘하는
아주 야무지고 똘똘한
아이였지
옛날이야기처럼 따뜻했다.
소녀였던 시절의 짙은 그리움, 깊은 슬픔의 이야기는
더 이상 아픔이 아니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소녀의 삶은 기특했고 훌륭했다. 대부분이 꿈같은 이야기였다.
그 작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
어찌나 귀하던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었단다
우리 동네 꼬마 박사였지
이제 할아버지는 하늘에 가장 반짝이는 별이 되었다.
그리움은 끝나지 않는 삶의 연속으로 가슴을 가득 메운다. 그 긴 기다림과 짙은 그리움을 함께해 준 외할아버지, 중절모가 참 잘 어울리셨던 외할아버지가 그리운 날이다.
외할아버지의 기억은 소녀의 꿈을 이루게 해 주셨다.
소녀에게 삶의 의미를 품게 해 주셨던 외할아버지
걸음걸음마다 계셨던 것을 알았지만 다시 한번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