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웬들보와 오페라하우스, 크리스마스마켓
어제는 집으로 돌아와서 시차를 조금 맞추고자 밤 9-10시가 되어 잠들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7시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잠을 깨우려고 티브이 만화를 보여줘 봤지만 잠을 이겨내지 는 못했다. 결국 모두가 8시도 안돼서 잠이 들었다. 그래도 어제 많이 걸어서 구경을 다녔던지라 잠을 설치지 않고 모두 꿀잠을 자고 일어났다. 하늘이 깜깜해서 아직 밤인가 하는 걱정에 커튼을 열어보았지만 시계를 보니 다행히 새벽 6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오늘은 너무 강행군은 하지 말고 1-2군데만 들렀다 오자라는 마음으로 갈 곳을 찾아보았다.
오슬로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곳이지만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이라고 불리는 사람의 카페가 있었다.
우리가 묵는 숙소에서 30분 정도 트램을 타고 가면 나오는 구시가지 같은 동네 그뤼네뢰카 지구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였다. 그뤼네뢰카 지역은 오슬로의 홍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인데 주말 분위기가 엄청 핫하단다. 트램은 넓고 평평한 도로도 다녔지만 좁고 오르막이 있는 길도 다닐 수 있었다. 카페가 있는 동네는 좁은 오르막길을 트램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트램에서 내려 걷다 보니 동네에는 고등학교도 보였고 대학생들도 많이 살고 있는 동네 같았다. 대부분 주거지로 여느 유럽 아파트들처럼 사이사이 공간 없이 붙어 있는 건물들로 거의 이루어져 있었다. 한적한 동네를 걷다 보니 멀리서 KAFFE라는 간판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입구를 확인해 보니 TIM WENDELBOE라는 이름이 있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우드프레임 유리문으로 사람들로 북적이는 카페 내부가 보였다.
내부에 들어섰을 때 앉아서 커피를 마실 자리가 없었다. 기념품과 커피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하나둘 씩 자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팀원들보로 보이는 사람은 카페에 없었고 다른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다. 덩치가 꽤나 큰 금발여자가 뭘 시키겠냐고 물었다. 생소한 단어들이 적힌 종이를 보고 우물쭈물하는 우리가 답답했는지 시그니쳐 메뉴와 오늘의 커피 같은 것을 안내해 주었다. 드립으로 바로 내려주는 카페이기에 아이스커피도 없었다. 로스팅부터 그라인딩, 드립까지 모두 가게에서 이루어져서 그런지 내부가 커피 향으로 가득했다. 어렵긴 했지만 주문한 메뉴를 받아서 자리에 앉았다. 손잡이가 없는 작은 도자기 컵에 담겨 나온 커피 한잔과 미지근한 물 한잔과 빈 도자기 컵, 따뜻한 커피가 저그에 담겨 나왔다.
창밖으로 눈놀이를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며 커피를 마셔보았다. 한 모금 맛본 커피는 생소한 맛이었다. 한약 같은 향이 있는 연한 드립커피 같았다. 우리 입맛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따뜻함에 취해 계속 마시다 보니 맛있다고 느껴졌다. 스타벅스 커피와 뭔가 다른 순수한 느낌이었다. 두 가지 종류의 원두를 사 와서 한국에서 직접 드립으로 마셔보았는데 그날의 맛은 느낄 수 없었다. 오슬로의 날씨와 카페의 분위기 그리고 전문가의 손길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커피로 몸을 녹이고 카페보다는 스케일이 큰 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웬만한 나라의 관광지에는 하나쯤 있는 자연사 박물관이 오슬로에도 있었다. 자연을 더 아끼는 나라라서 그런지 뭔가 조금 더 볼거리가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유인원부터 우주까지 폭넓은 분야의 소장품들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코스로 들르긴 했지만 에너지 컨디션 조절 실패로 1시간 남짓 구경만 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박물관을 나섰다. 아침에 시간에 많이 걸어서 그런지 일단 숙소로 다시 돌아가 쉬기로 했다.
오슬로 센트럴 앞에서 트램을 갈아타면서 쇼핑몰에 들러 점심을 사서 들어가기로 했다. 수요일 낮시간이었지만 쇼핑몰에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만만해 보이는 스시와 롤을 파는 집이 보였다. 태국사람 같은 직원이 주문을 받아 주었다. 초밥과 롤 그리고 샐러드를 사고 바로 옆에 있던 슈퍼에서 작은 컵라면 몇 개를 사서 숙소에서 함께 먹었다. 맛집을 찾아다니지 않았어도 우리가 오슬로에서 먹었던 음식들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많이 배가 고파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점심식사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점심을 먹고 몸이 나른해졌다. 각자 잠시 휴식을 취했다. 3시 정도 되니 또 해가 지기 시작했다.
점심도 먹고 조금 쉬고 나니 다시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긴 듯했다. 멀리 가지 않고 숙소 근처의 오페라 하우스에 가보기로 했다. 걸어가면 10분도 남짓한 거리에 오페라 하우스가 있어서 산책처럼 걸어가기 좋았다. 숙소 아파트 주변은 새로 지어진 건물들이라 볼거리가 많았는데 우리 옆 아파트 1층에는 레스토랑이 개업을 준비 중이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금발머리 멋진 남자들이 의자와 가구들을 배치하고 레스토랑 부엌 설비를 손보고 있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라까슈 부엌 가구와 설비들이 오픈할 공간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략 봐도 3-5억 이상은 되어 보이는 라깡슈 제품들이었다.
작은 카페와 샵들 그리고 바코드 프로젝트 건물들을 구경하며 오슬로 오페라&발레 하우스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정도나 되었을까, 우리는 오페라 하우스의 야경을 보고 있었다. 야경이라는 단어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둡고 반짝였다. 오페라 하우스 내부에는 그날 공연이 있었는지 꽤나 차려입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로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유럽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오페라 하우스 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원형 램프로 이루어져 있었다. 난간 겸 벽으로 이루어진 나무 루버가 공간을 휘감았다. 공연 중이라 극장 내부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램프를 걸으며 돌아 나오는 동안 공간을 느끼기에는 충분했다.
발레슈즈를 쌓아서 만들어 놓은 크리스마스트리가 인상적이었다. 공연중간에 잠시 쉴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과 깜깜한 오후 하늘을 오롯이 내부로 받아들이는 로비 공간도 좋았다. 빠질 수 없는 기념품샵에서 책도 구경하고 내부 공간을 적당히 둘러보고 외부로 나와 보았다.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의 건축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건물 외부에서 옥상까지 이어지는 램프를 따라 올라가 보았다. 낮은 경사로로 옥상까지 이어지는 램프에 눈이 쌓여 설산을 걷는 기분이었다. 오페라 하우스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면 오슬로 시내 전경을 볼 수 있는 장관이 펼쳐진다. 해가 있는 이른 낮에 다이크만 도서관과 뭉크미술관에서 보던 전경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았다. 고요하게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눈 밟는 소리만이 오페라하우스 꼭대기에서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오슬로 시티와 작은 피요르드들, 그리고 반짝이는 건물들과 거리, 선착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멍했지만 그때 그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쾌하고 기분 좋은 고요함이었다. 옆에서는 아이들이 눈 덮인 램프를 따라 데굴데굴 구르며 놀고 있었다. 아무런 꺼림 없이 온몸을 넓은 램프와 하얀 눈에 맡기며 자유롭게 놀고 있었다. 누구 하나 위험하다, 옷이 더러워진다, 감기 걸린다 라는 잔소리 없이 자유롭웠다.
오페라 하우스는 다이크만 도서관과 함께 비요르비카 지역에 지어진 문화공간의 요지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공연을 올리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아닌 오슬로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도심 속의 큰 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 가까이 이렇게 좋은 놀이터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오페라 하우스에서의 감흥을 깊이 마음에 안고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아이들은 그저 눈에서 노는 것이 신이 나서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했다.
오슬로 첫날에 가보았던 크리스마스 마켓을 해가 진 풍경을 보고 싶어 다시 가보기로 했다.
역시 크리스마스 마켓은 반짝이는 조명과 깜깜한 하늘의 조화, 그리고 따뜻한 길거리 음식에서 솔솔 풍기는 냄새와 연기가 있어야 분위기가 제대로 나는 법이었다. 밝은 하늘 아래에서 볼 때 보다 더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껏 달아오르는 듯했다. 보들보들한 털이 가득한 겨울 용품들을 파는 가게도 구경하고, 너무 달아서 혀가 얼얼한 애플 캔디도 사 먹었다. 핫초코와 뱅쇼도 빠질 수 없는 크리스마켓 스트리트 푸드였기에 우리는 그것들로 따뜻하게 몸을 녹이며 크리스마스 마켓을 구경했다.
크리스마스 마켓 구경을 하고 근처를 걷다가 서점을 발견하고는 들어가 보았다.
알록달록한 책들과 소품들로 가득한 서점이었다. 우리나라 서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알록달록하고 귀여운 소품들에 눈이 갔다. 페파 동화책들,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오슬로 말이 적혀 있어도 사고 싶었던 다양한 동화책들도 구경거리로 아주 좋았다. 아이들은 약간은 어이없게도 한국에도 있는 축구카드와 영국에서 온 토끼 인형을 사달라고 했다. 그래도 귀여운 것들이니 흔쾌히 사주고 오늘의 쇼핑을 마무리했다.
이 날 마무리는 맥스버거였다. 맥스버거는 오슬로 도심에 있는 햄버거 브랜드 체인이었는데 어제저녁으로 사 먹은 곳이었다. 그런데 래은이가 가게 앞에 있던 자선냄비를 기억하고는 오늘 아침부터 남은 오슬로 동전을 그곳에 넣어보고 싶어 했다. 숙소로 바로 가려고 했지만 무조건 동전을 기부하고 가야 한다는 의지가 강해서 결국 트램을 타고 중간에 내려 맥스버거를 다시 찾아갔다. 빨리 퇴근해 버리는 오슬로 스타일에 혹시나 또 자선냄비가 없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우리가 찾아간 그때까지 있어주었다. 래은이와 이은이는 수줍게 얼마 남지 않은 동전을 넣고는 뿌듯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