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났네, 일룸스볼리후스
흑야시즌이라 그런지 유난히 하루가 짧고 우리가 오슬로에 머물 수 있는 시간도 더 짧게 느껴졌다. 무언가를 많이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이제 하루를 풀로 구경할 수 있는 날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라도 더 보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트램을 타고 오슬로 센트럴로 향했다.
오슬로 센트럴 앞에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트램들을 거의 모두 다 탈 수 있었는데 4일째가 되니 이제 한국의 우리 동네 버스처럼 트램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자주 타고 다니던 노선은 외워지기도 했다.
오슬로에서의 트램은 하얀 눈 다음으로 우리에게 고마운 존재였다. 아이들과 함께 여행하는 동안 아이들이 지루하지 않도록 도와준 친구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걷다가 조금 힘들면 목적지는 생각하지 않고 지나가는 트램에 올라타 잠시 앉아 쉴 수 있었고 바퀴가 달린 버스가 아닌 트램이라는 존재 자체를 아이들은 신기하고 재미있어했다. 색상이나 디자인도 조금씩 다 달랐기에 보고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있었다. 고단한 뚜벅이 여행의 힘듦을 사라지게 만들어 주는 묘미라고 해도 될 것 같았다. 아무튼 4일째 되는 날도 우리는 이야기가 가득 담긴 트램을 타고 목적지로 향했다.
오늘은 오래된 목조건물인 아스트럽미술관에 가보기로 했다. 이탈리아 건축가가 지은 미술관으로 작은 피요르드 바로 앞에 지어져 있는 건물이었다. 바닷바람과 파도가 거의 맞닿아 있는 곳에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미술관이었다. 목조건물이라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아스트루프 미술관은 오슬로 시내에서 유일하게 기업의 후원으로만 운영되는 개인 현대미술관이라고 한다. 아침 일찍 도착해서 아직 문을 열기 전이였다. 현대미술과 신진작가들 중심으로 전시가 이루어진 곳이기에 내부 구경은 미술관 입구까지만 하기로 하고 바다와 맞닿아있는 미술과 외부를 많이 둘러보았다. 그리고 또 빠지지 않는 기념품샵에 가서 포스터와 아이들 퍼즐과 스티커를 몇 개 샀다. 따뜻한 계절이었다면 미술관 앞뜰이나 광장 계단에 앉아 날씨를 만끽할 수 있었겠지만 12월의 오슬로였으니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술관을 떠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슬로에서 처음으로 일룸스 볼리후스 매장을 발견하고 신이 나서 매장을 구경했다. 패션부터 인테리어 관련 상품까지 너무 다양해서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랐다. 너무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각양각색의 북유럽 가구와 조명들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여행에서 기대 이상의 이득을 보는 것 같았다.
일룸스 볼리후스를 나와 조금만 걷다 보면 오슬로 콘서트홀도 보인다. 묵직한 존재감을 나타나는 회색빛의 콘서트홀은 바로 옆블록에 있는 내셔널 뮤지엄과도 잘 어울린다. 흐리고 어두운 북유럽 날씨와 너무 잘 어울리는 색감이었다.
미술관을 다녀와 나 혼자 잠시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아이들과 남편은 먼저 숙소 근처로 가서 엘리베이터 같은 재미난 기구가 있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고 나는 오슬로 센트럴 스테이션 역 근처를 구경하기로 했다. 매일 지나다녔지만 눈여겨보지 못했던 센트럴 광장 사진도 찍어보고 센트럴 스테이션 역 내부도 이곳저곳 구경해 보았다. 한국의 올리브영과 비슷한 잡화매장도 구경해 보고 혼자 약국에도 들러보았다. 역 내부에도 많은 매장들이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1시간 남짓의 오슬로 자유시간은 흥미로웠다. 남편과 아이들은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잠시 쉬고 있다고 연락을 받았다. 차가운 눈이 덮인 놀이터에서 놀다가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니 대단한 아이들이다. 민트계열로 꾸며진 귀여운 아이스크림 가게에 세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엄마가 자유시간을 갖는 동안 뭘 하면서 놀았는지 재잘재잘 이야기를 들으며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와서 오늘 구매한 기념품들을 펼쳐보고 오늘까지의 오슬로에 대해서 서로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보았다. 그날은 저녁 7시에도 졸리지 않았다. 오슬로의 마지막 저녁에 이제는 제대로 시차를 적응했구나 생각하며 내일 오슬로를 떠날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