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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ul 01. 2024

27. 자식이 부모운명의 종합판?

어느 작명 카페에서 본 말이 생각난다.

'자식은 부모 운명의 종합판이다!'

우리도 그랬다.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는 6년째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빠져나가고 싶은데 제발 튕겨져 나가고 싶은데 좀처럼 그 타이밍을, 방법을 알지 못하고 있다.

어느 정도 다행히 잘 빠져나왔다고 생각하면 그게 아니다. 강약조절만 있었을 뿐, 끊임없이 커다란 패턴 안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아이의 패턴과 속도 조절에 우리가 한 번씩 착각했을 뿐.


그런데, 6년째 수위 조절만 다를 뿐 같은 패턴이라면 이제는 그 아이의 성향, 천성이라고 보아야 할까?

바뀌지 않을 아이를 부모의 기대대로 바꾸려고, 바뀔 것이라고, 바뀌길 기대하며 과도한 희망을 품었던 것일까? 아니면, 수박을 메론이길 바라며 믿고 싶은 대로 믿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왔던 것일까? 아니면 기대하는 메론이 아니란 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그 두려움에 끝까지 버티고 있는 것일까?


삶이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해야 한다'면 우리는 지금 '나도 불행하고 너도 불행하다'

둘 중에 하나라도 온전히 행복하지 않다.


방법은? 


놓아야 한다. 그만 내려놓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이 탯줄을 끊어야 한다. 문제는 건강하게 끊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끊는 그 순간 우리는 남이 되고 그럼에도 미처 떨쳐낼 수 없는 애증으로 인해 되려 남 보다 못한 관계가 되는 것이고 그것은 모두에게 최악이기에 자신이 없어서 도저히 이도 저도 못한 채 버틴다.


얼마 전 아이 방 문에 캘리그래피로 써 붙인 시가 있다.


   기죽지 말고 살아 봐.

   꽃 피워 봐.

   참 좋아.                       - '풀꽃 3' 나태주

                        

  이 시가 진심이 되고 이 시가 이루어지려면 결코 그 옆에 핀 꽃이어서는 안 된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필요하면 물을 주고 필요하면 볕을 주고, 바람을 주는 관찰자, 후원자, 지지자가 되어야 한다. 한번 난 꽃을 직접 옮겨 심는 게 쉽지 않고 그 옮긴 자리가 옳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자식은 세상이란 자연에 난 꽃이니까. 분갈이는 어릴 적 진 자리 마른자리 갈아주는데서 끝난 일이다. 


부모는 강하면서도 자식 앞에 나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 때문일 것이다. 더는 어떻게 강제로 할 수 없고 해줘 봐야 부질없는 일이 되니까. 아버지가 하라는 것의 반대로만 갔다고, 가고 보니 이 길(시인)이었다고 고백하던 나태주 시인이 아들에게 쓴 시는 그래서 내려놓음이 존재하나 보다.


   아들에게


    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은 아니지만

    너의 불행은 분명 나의 불행이란다


   부디 잘 살아야지

   부디 많이 사랑하고 

   부디 많이 부드러워져야지


   내려놓을 것이 있으면 내려놓고

   참을 수 없는 것도 때로는 참아야지

   기다릴 만큼 기다려야지


  세상을 늘 새롭게 바라보고

  작은 일도 감사와 감동으로 받아들여라


  굳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으마

  많이 너를 생각하고 걱정한단다

  이것만은 알아다오


이 시를 나태주 시인은 과연 진실로 아들에게 쓴 것일까? 아니면 본인에게 하는 말이었을까?

부모의 눈으로 보면 후자일 것이다. 자식을 내려놓기 위해 내려놓은 마음으로.


그래서 아버지로서 나태주 시인의 '내가 너를'이란 시는 참으로 쓸쓸하다.

쓴 시는 그래서 내려놓음이 존재하나 보다.


    내가 너를     -나태주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너는 몰라도 된다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로지 나의 것이요

    나의 그림움은

    나 혼자만의 것으로도

    차고 넘치니까


    나는 이제

    너 없이도 너를

    좋아할 수 있다


머리로는 아는 길을 머리와 가슴이 이토록 멀어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도 몸부림을 한다. 지옥의 문은 안에서 잠겨있다는데 

마음의 지옥 속에 갇혀 안에서 잠긴 그 문을 열지 못하고 발버둥 친다.

그만 벗어나고 싶다고.


자식이 부모 운명의 종합판이라고?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이 말을 바꿔보고 싶다.


주어진 자식이 부모에게 숙명이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자식 있는 삶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변화와 바꿀 수 있는 운명이라고.

사람이 사주대로만! 사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날마다 너를 놓는 연습. 내일이면 또 새로 하는 놓는 연습.

내가 다 책임질 수 없고 누구나 자기 몫의 인생이 있다. 

내려놓을 수 있을 때 너도 행복하고 비로소 내가 가벼워질 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 삶을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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