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봄 Apr 05. 2024

14.내뱉지 말고 싸물어야 할 마음의 소리

몸으로 각인되는 존재에 대한 정의

벚꽃이 한창인 4월 초, 어느 지역 보호관찰소 준법지원센터를 찾았다. 천주교 교정사목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멘토 봉사자들의 모임에서 청소년 정서케어 프로그램을 요청해 왔기 때문이다. 


"법정의무교육이 아니라 참석 여부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이라며 말 끝을 흐렸던 담당자. 충분히 예상되고 당일 현장의 풍경과 자세 하나하나 머릿속으로 그려졌다. 사춘기 방황의 절정기, 인생 뭐 있냐며 삐딱해질 대로 삐딱해진 상태, 동서남북 빗장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할 때. 그때는 몰랐겠지. 책임의 시간이 이토록 길고 피곤하고 짜증 나는 일일줄.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돌아오는 길이 있다고, 되돌아 올 길이 있음을 알려줄 찐 어른이 없다. 믿고 말하고 믿고 따를 안전한 어른이 없다. 부모는 같이 그 시궁창에서 뒹구느라 똑같이 심신이 지친 상태, 죽지 못해 사는 지경일 것이다. 부모 스스로 자신의 심신을 주체하지 못해 일어서지도 못하는데 자식을 일으켜 세울 힘이 남았을 리 만무하다. 주변의 어른들은 위해주는 척, 생각해 주는 척하면서 하는 말이 하나같이 Ctrl+C , Ctrl+V.


"오늘 학교 갔어?""오늘은 지각 안 했어?" "요새 담배는 좀 줄이고 있지?"

애정 가득 담아 건네는 말이겠지만, 어쩌면 그 또한 어른들이 정해놓은 규정에만 해당하는 질문들이다. 얼마나 벗어났는지 급급한 질문들. 첫 질문이 이러면 아무리 애정 가득한 표정으로 다가가도 물러날 것이다.

"오우~ 오늘 머리끝 살아있네!" "야~, 진짜 왔네! 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진짜 나타나니까 설렜다. 너무 좋잖아! (내일도 설레게 해 줄거지?라는 말은 입틀막!)"

어쩌면 그냥 오늘, 지금, 그리고 그 아이에 대해 집중해 주는 게 상대 입장에선 진짜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금 상처 투성이에요.'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그 특유의 얼굴 화장법. 아이라이너와 마스카라로 한껏 포장한 눈매 속에서도 눈동자만은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여리디 여린 마음과 두려움, 따돌림인지 자발적 고립인지 모를 외로움. 어디가 안이고 밖인지조차 모른 채 갇혀버린 눈동자. 그리고 돌아서서 또래들에게만 보였을 180도 달라진 자세와 표정, 말투는 감춘 채 침묵으로 앉아있는 열여섯 살의 아이.

열 개의 손가락에 모두 힘주어 네일 아트를 한 아이는 손톱에 연장팁을 붙여 온통 반짝이는 큐빅으로 뒤덮은 채 행복해하고 있었다. 네일아트로 꾸민 10개의 손톱 그 자체로 이미 그 아이는 자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도 이렇게 반짝이고 싶다고...'

한 아이는 문 밖에서 봉사자 둘의 설득에도 불구하고지 남자친구를 만나러 갔다. '분명히 연락을 했고 강사님도 와 있고, 멘토도 오고 있는데 이러면 어떡하냐'는 봉사자들과 '분명히 연락받은 바 없다. 남친과 약속 있고 지금도 늦었는데 왜 이러냐.'는 여자 아이. 결국 눈물바람에 아이를 보내줘야 했다. 그래서 모두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이 아이들의 멘토를 자처하고 서둘러 퇴근 후 달려온 봉사자들까지 총 12명.


멘토와 멘티 간의 마음의 교류를 돕는 시간을 갖고 마무리했는데 이날 인상적이었던 게 두 가지다.


하나는 "겉으로 보면 나는 ~한데 알고 보면 나는 ~한 사람이다."라는 문장 채우기로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모두가 돌아가면서 하는데, 두 아이가 "나는.. 나는..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그 말의 어투와 어조가 정말 모르겠다는 느낌이어서 퍽 인상적이었다. 정말 모를 수 있는 시기, 상태일 테니까. 사실 그걸 알려면 나에 대해 알려주고 반응해 주는 상대가 있어야 하는데, 이 아이들은 아직 그런 상대, 그런 역할을 해줄 어른이 없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들은 어른의 말, 맞는 말이긴 한데 정말 기분 나쁘게 하는 말'이었다.

 

"네가 그럼 그렇지, 너만 없었으면 우리 가족은 행복했어."

"안 맞은 지 오래됐지? 빨리 들어와, 다시 시설 보내기 전에."


'어떻게 이런 말을!'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할 것이다. 누가 봐도. 하지만 부모에게도 맥락은 있었을테다. 한 마디로 오죽하면 저런 말을 했을까 그 마음은 더듬어 헤아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성숙한 어른이라면 마음의 소리로 가둬 두어야 했다. 입틀막! 요즘 아이들 말로는 '싸물어!(입을 꽁꽁 싸매어서 앙다물어)' 


하등 도움이 되지도 않는 말일뿐더러 거리감만 벌리고 상처만 남기는 말이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못할까.

'어쩌다 저런 자식이 나한테 왔는가부터 나는 왜 자식복이 이리 박복한가, 저거는 나가 죽지도 않는구나. 차라리 없는 게 속 편하고 좋겠다.' 자식에 대한 기대감의 상실은 곧 자식의 상실과도 같을 때가 있다. 그래서 그 상실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은 분명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을 것이고, 뻔한 소리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그 심정을 깊이 헤아릴 수 없다. 아무리 가늠해 본다고 한들.


그럼에도!

그럼에도 좋은 말은 당연해서인지 흘려듣고 아픈 말은 골라서 뼈에 새기는 아이들이다. 부정의 말과 표현, 감정에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기의 아이들. 자기 행동과 상태는 생각지도 못하고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가시 하나는 대못으로 가져가 박는 아이들이다. 돌아오려던 마음조차 돌아서게 만드는 말. 자신에 대해 새로이 알아보려다가도 '역시, 내가 그렇지 뭐. 어른들이 저렇지 뭐.'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참고 참고 또 참아야 한다. 쌍욕을 하더라도 아홉 번 참고 한 번을 저렇게 폭발해도 안된다. 그 어떤 거칠고 험한 쌍욕이어도 마음으로만 폭발해야 한다. 차라리 대성통곡을 할지언정 참아야 한다.


나도 사춘기 아이의 방황에 분노하던 시간이 있었다. 그때 아이에게도 들은 말이 나를 바꾸게 했는데 그 결정타의 한 마디는 "이럴 거면 나를 왜 낳았어?"가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말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정말 아팠던 말은 이 말이다.

"엄마, 내가 엄마 아빠한테 잘못 온 것 같아. 나 때문에 엄마도 아빠도 자꾸 힘들잖아."


  

   



     

작가의 이전글 13. 잘 되는 사람의 두 가지 특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