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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May 24. 2024

웃는 얼굴 너머로 피에로의 눈물이 보여

@pixbay

"이토록 유쾌한 사람이 그런 아픈 에세이를 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이렇게 밝아서 상상도 못 했어요."


앞서 냈던 나의 양육에세이를 읽은 이들이 모임에서 내게 했던 말이다.

그렇다. 밖에서 사람들 속에 있으면 나는 밝고 유쾌하고 이야기를 이끌어가기를 즐기고 솔선하고 봉사한다. 당연히 사람들은 내게 고마움을 표하고 인정해 주고 칭찬하기 바쁘다. 밖에서처럼 안에서도 똑같으면 좋겠는데 안에서는 조금 다른 방식이다.

물론 헌신, 희생하며 남편과 아이를 돌본다. 그런데 자주 '밑 빠진 독' 같다는 생각이 든다.. 헌신하며 사는 여느 아내, 엄마들도 주로 이런 기분을 느낄까? 아마 많겠지? 당장은 내 친정 엄마도?


결혼 4,5년 차였을 것이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정신의학과를 찾았는데 그때 심리검사를 마치고 몇 차례 상담 후 보호자로 남편을 만나보고 싶어 했다. 그 후 의사는 나에게 했던 말이 십 수년간 잊을 수 없을 만큼 인상적이다.

"내가 본 남편은 걸어 다니는 유리관 같아요. 어쩌면 당신 보다 남편의 치료가 더 급해 보이네요. 지금 힘들다고 해도 그럼에도 둘 중에 더 건강한 사람은 당신이에요. 이럴 때는 누가 이끌어야 되냐 하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사람이 이끌어야 돼요."


그 뒤로 나는 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스스로 돌보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나부터 건강해야...


그런데, (1818181818181818181818) 그 세월이... 그 뒤로도 15년은 더, 나는 지금까지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식구들을 끌고 가고 있다. 황소처럼.

그러다 보니 집에서 종종 우울해질 때가 있다. 내 기대대로 안 되는 남편과 아이는 매번 내가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그럼에도 내 기대와 바람을 포기 못하는 내가 더 고집불통인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가장 큰 문제는 내가 행복하지 않고 우울할 때가 많다는 것. 삶이 힘들고 속상할 때가 많다는 것. 그래서 세수하려다 마주친 거울 속의 얼굴이, 그 얼굴이... 사람들이 밝고 유쾌하다고 말하는 여자의 얼굴이 울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건 어쩌면  그들을 조종하고자 하는 내 안의 열망이 너무 큰 것일 수도 있다.

그들에 대한 나의 시선이 언제나 being의 존재가 아닌 doing의 존재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반대로 그들은 어쩌면 날마다 잔소리해 대는 나를 '소중한 사람인데 매우 귀찮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적어도 오늘은 being의 존재로 그들을 그대로 두어야겠다.

남편이 그리고 아이가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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