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봄 May 19. 2024

나는 내 부모에게 --을 받기 원했다.

결혼 20주년, 꼭 돌아봐야 할 문제

@pixbay


나에게 인생 오십은 정말 많은 것들이 찾아온 해다.

몸의 갱년기, 마음의 번아웃, 일과 능력에 대한 반추, 회의감, 열등감, 좌절감, 무망감.... 십 대에 사춘기 앓이를 제대로 못하고 미루고 미뤄 이제야 하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는지 내 마음에 대한 탐색에 적극적이고 어떻게든 이성적이고 지혜로운 방식으로 나를 돌아보며 다시 나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 만난 커다란 질문.


문장완성 검사지에나 있을 법한 질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커다란 질문이었다.

"나는 내 부모에게................... 을 받기 원했다."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 단순하거나 즉흥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기를 바라며 골몰했다.

'나는...., 나는...., 나는....'

조금씩 선명해지는 나의 대답이 내 안에서 올라온다.

"나는 내 부모에게 세상에 대한 도전과 모험에 적극적 이도록 지지받고 또 지원받기를 바랐다."


이유는 저절로 따라 나왔다. 나는 내 안의 열망과 달리 억눌린 현실을 너무 오래 살아왔다.

우선 나의 아버지는 한마디로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를 언제나 삼켜버릴 듯한 눈빛과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자신의 분노를 우리 남매들에게 쏟아냈던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신체 폭력은 없었다는 것. 그래도 아버지는 자신의 기분에 따라 언제나 4남매를 즉각 호출했고, 말로 다잡곤 했다. 반복된 '주사와 폭압적인 태도' 그것이 내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였다.


그럼, 엄마는? 어릴 적부터 나의 엄마는 공부를 잘해서 할아버지 눈에 들고 이쁨 받고 그래서 내 아버지 대신 나라도 할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기를 원했다. 내 아버지에 대한 할아버지의 분노가 나로 인해 희석되길 바랐던 것 같다. 공부만이 아니라 난 뭐든 잘해야 했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입학해서 졸업할 때까지 한 반에 열다섯 명뿐인 분교 같은 깡촌 학교에서 말이다.

 

나에 관한 소식은 늘 서울 사는 작은집, 고모네들까지 언제나 자랑거리와 뉴스가 되어 친척들 귀에 들어갔고 사촌 형제들 사이에 나는 어느새 공부 잘하는 아이, 똑똑한 아이로 소문이 나 있었다.  그러다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와 현실을 마주했을 때, 나는 세상에 더없을 수치심을 겪어야 했다. 죽도록 노력해도 더 잘하기 위한 방법을 몰랐던 나는 끊임없는 열등감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정말 공부 잘해서 명문대를 간 사촌 형제를 보며 쥐구멍에 숨고 싶었고 그들을 만나기조차 낯뜨거웠다. 잘할 것 같지 않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회피와 도망의 연속이었다.

무슨 일이든 언제나 준비에 준비를 거듭하면서도 마음은 아직 때가 아닌 것 같았다. 보다 못한 남들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반 강제로 등을 떠밀어 줘야 그제야 나아가되 혹여나 내가 잘하지 못하는 느낌이 들면 후다닥 도망치듯 철수하기 바빴다. 스스로는 영 자신이 없어 늘 자신감 넘치는 사람들 주변을 서성이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도 죽어도 먼저 같이 하자는 말을 못 했다.


서성이는 삶. 아주 오래 내가 그래왔다. 마치 발목에 무거운 족쇄라도 채워진 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나아감에 대해 용기와 자신감이 없었다. 도전? 모험? 그런 말은 나에게 놀이공원이나 판타지 소설 속에나 있을 법한 말이다.


다시 돌아와 문장을 다시 본다.

"나는 내 부모에게 [  세상에 대한 도전과 모험에 적극적 이도록 지지받고 또 지원받기를 바랐다  ]

해외 배낭여행이 한참이던 대학시절, 자기가 용돈을 벌어도 그 돈을 어떻게 쓰게 하냐며 부모님이 돈을 주셨다고. 그 돈으로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비행기 안에서 좋은 인연도 만나고 그 인연으로 화려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친구가 30년 가까이 지나도 잊히질 않는다.


지금도 나는 늘 '도전과 모험'이 딴 세상 이야기 같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열망이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이것 좀 해봐라. 괜찮다. 뭐가 걱정이냐, 잘 못 하면 좀 어떠냐' 그렇게 나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심어주었다면 어땠을까. '나대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말은 내게 보이지 않은 무거운 족쇄가 되어 있었다. 내게 그 족쇄가 채워진 걸 모르고 늘 '나는 왜 이렇까?'가 고민이었다.


결혼을 했고, 원가정을 벗어났고, 나는 이미 오래전에 성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족쇄에 묶여 두어 걸음 나가다가도 주춤거리고, 또 나가다가도 주춤거리고....


내 발에 묶인 족쇄는 내가 채우지 않았으나 내가 언제든 스스로 풀 수 있음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


 



새삼 질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아주 커다란 질문이었다.

"나는 내 부모에게................... 을 받기 원했다."


이전 11화 잘 되는 사람의 두 가지 특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