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중 지인이 밥을 먹자고 불렀다. 외출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나가기가 귀찮아진다. 너무 그래도 안 되겠다 싶을 때 마침 불러내 준다.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동안 문득 떠오르는 생각!
'내 삶에 신의 한 수였던 순간이 언제였을까?'
밑도 끝도 없이 나는 왜 이 생각을 했을까? 되뇌어 보면 만나기로 한 사람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나와 성향이 무척 다르고 다른 만큼 나와는 상호보완이 잘 되는 편이다. 그리고 다소 찌그러져 있는 나와는 달리 그녀는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름 잘 나가는 사람 중에 하나다. 10년 가까이 알고 지내는 동안 그녀의 삶과 인생곡선에 대해서도 조금 이해할 수 있는 사이다. 그녀의 인생 곡선 위의 변곡점 몇 개를 떠올려 보는데 정작 나의 인생변곡점은? 내가 그다지 나에 대해서는 의식하지 않고 살았나? 싶었다. 그 무의식에서 올라온 질문이 바로 '내 삶에 신의 한 수였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였다.
무료하고도 특별할 것 없는 내 인생에 그나마 내가 반짝일 수 있었던 때는? 있었다. 스스로 위축되고 보잘것없는 처지라고 생각했을 때 누군가 나에게 큰 일을 맡겼다. 그런데 나는 그 큰 일을 맡긴 것이 신의 한 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제안을 '내가 수락한 것!' 그것이 바로 내 인생에는 신의 한 수였다. 나는 살면서 지나치게 신중하고 생각이 많고, 불안이 높아 두려움도 많다. 그리고 책임감과 성실은 도를 넘는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제안도 쉽게 수락을 못하고 도망가기 바쁜 삶을 살았다. 그런데 그런 내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것. 그래서 스스로 도장을 찍고 엄청난 모험과 도전을 자발적으로 시작했다는 것. 수동적이던 내가 능동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신의 한 수였다. 내 성향의 단점만큼이나 장점도 있을 터. 철저한 준비와 계획, 점검으로 나는 그 일을 나름 잘 수행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돌아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반짝이던 순간이다. 그때 그 일마저 없었다면 지금쯤 내가 너무 슬플 것 같다. 살면서 한 번도 제대로 반짝여 본 적이 없다면 말이다. 더구나 나처럼 자존심 강하고 팽창된 자아에 허덕이는 내가 아닌가.
또 생각해 봤다.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신의 한 수는 그때 딱 한 번뿐이었을까? 그렇다면 신은 내게 너무 인색한 게 아닐까? 그래서 또 생각해 보니 내겐 격렬한 사춘기로 아이가 반항의 절정에 있을 때 각고의 노력으로 인내하며 엄마의 자리를 지켜낸 시간이 있다. 돌아보건대 인간의 인내 이상을 '엄마'이기에 견뎌낸 것 같다. 그럼 내가 그럴 수 있었던 나의 시간이 신의 한 수였을까? 아니다. 잘 버티고 견디어 낸 시간이 아니라 늘 나를 따라다니며 힘들게 했던 내 자존심, 팽창된 자아였다. 나는 왜 이 모양이냐고, 왜 이렇게 생겨먹었냐고 힘들어하며 신을 원망하던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내 자존심과 사회적 체면, 강한 자아, 그런 것이 있었기에 내가 그것을 걸고 견딜 수 있었다. 죽기보다 싫었으니까.
세수를 마친 말끔한 얼굴로 그녀를 만났다. 옛날 시골집 사랑방 같은 작은 골방에서 우리는 시골밥상 같은 한정식을 먹으며 내 인생의 신의 한 수에 대해 이야기를 이어갔다. 더러 버겁고 고되고 때로 지치고 서글프고 힘들었지만, 우리들 인생 곡선 위에 한 번씩 신의 한 수가 찍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