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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an 11. 2024

2. 누구를 위해 사는가

갱년기, 내가 시들어 가고 있는데...

오십 년을 살아왔는데 이걸 두고 나는 '반평생'이라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50년이 내 인생의 절반이라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집안 내력으로 이미 나는 고혈압약을 몇 년째 먹어왔고 고지혈증 약도 먹어야 할 판이다. 몇 년 전부터 이런 게 갱년기인가 싶게 몸의 변화도 찾아왔다. 건강한 몸으로 내가 과연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지금 같아선 욕심내어 딱 15년만 일상과 사회활동(종교, 사회적 교류)에 무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설마 내가 벌써? 싶었지만 그렇게 서서히 찾아오는 갱년기가 그간 아이의 사춘기 위세에 눌려 진짜 몸의 변화인지 자식에 대한 스트레스인지, 아니면 남들도 흔히 겪는 중년의 위기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봇물 터지듯 갱년기에 나타나는 모든 증상이 온몸에서 다양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무릎, 어깨도 아프고 혼자 5분 10분 간격으로 더웠다가 추웠다는 반복하고, 수시로 상반신 전체에 식은땀이 쫙 올라오곤 했다. 제일 힘든 건 밤에 시간마다 눈이 떠지고 갑갑한 느낌에 자꾸만 일어나 앉곤 했다. 


한밤중에 일어나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낯설고 처량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제야 비로소 친정 엄마 생각이 났다. 나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처럼 갱년기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영양제 한번 챙겨드린 적이 없다. 한 번도 그 시절 엄마가 어땠는지 살펴드린 적이 없다. 우리 엄마도 고스란히 혼자 그 시간을 견뎠을 것이다. 


한의원, 통증의학과를 드나들다가 내 몸 하나가 감당이 안되어 산부인과를 찾았다. 피검사로 호르몬 수치를 알아보니, 예상은 했지만 이제 정말 완경임을 숫자가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호르몬치료를 시작하며 비로소 내 몸 상태가 온전히 보이고 받아들여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가 아니라 '이제 그럴 때가 됐다'라고.


지금부터 내가 먹고 마시는 것들이 나를 만들어 줄 것이다. 그 생각에 온전히 나를 위해 나의 식단을 위해 장을 봤다. 두부와 채소, 나또, 고구마, 죽어도 끊지 못할 것 같았던 커피를 이제 하루 1잔만 마시기로 하고 대신 다양한 티백의 차를 사 왔다. 조금 더 일찍 이렇게 나를 돌봐줄걸.


내가 있어야 남편도 아이도 안정을 이어갈 수 있다. 가족이라도 내 입안의 혀처럼 나를 챙겨주지는 못한다. 일단 내 몸의 상태와 내 기분을 나처럼 잘 아는 이가 없다. 알 수도 없다. 전에 없이 한밤중에 갈증이 너무 심해서 머리맡에 텀블러를 놔준다. 뒤척이는 남편 때문에 안 그래도 설치는 잠을 더 자주 설칠까 봐 서재 방에 이부자리 하나를 더 봐둔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가서 몸을 누일 수 있도록.


세수를 하는 중에 어느덧 빼곡히 차오른 기미에 칙칙해질 대로 칙칙해진 피부, 또 눈가 피부가 이렇게나 처져있는 줄 몰랐다. 정수리 위로는 삐죽삐죽 솟아오른 새하얀 새치. 그래도 올라오는 게 있어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잠시 고민해 본다.


"애 안 큰다고, 언제 크냐고 너무 한탄 마라. 애가 크면 너도 그만큼 늙는다."


친정 엄마의 말이 기억 속에서 스쳐간다.


갱년기. 온몸으로 발산하며 보내오는 이 신호가 없었다면 그나마도 내가 늙어가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시간이 가는 줄만 알았지 내가 그렇게 시들어가는 줄을 몰랐을 것이다.


이제라도 내가 나를 돌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지금까지 아이와 남편, 가족의 희로애락에 종종거리며 용쓰고 살아왔다. 사회활동을 하면서도 내 자리 하나 만들고 지켜보겠다고 자존감과 바닥을 뒹굴며 얼마나 애쓰며 살아왔던가. 


나에 대한 연민, 가련한 마음으로 나를 끌어안고 보듬어줄 시간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결코 더 많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위해 살 것인가.  내가 시들어가고 있는데. 나는 지금 나를 돌봐야 한다. 그것도 응급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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