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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an 11. 2024

3. 화양연화? 무엇으로 꽃 피울까?

내가 좋아하고 행복한 일은 뭘까?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아르바이트 구인 소식이 수시로 울렸다. 대부분 한 달이고 석 달이고 맘먹고 해야 할 일자리다. 그런데 흥미로운 소식이 올라왔다. 오일파스텔로 그림을 그리는 공방이었다. 일이라는 게 1일 수업 참여 후 블로그에 수업 스케치 사진과 작품 사진, 수업 후기를 올리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시급 11,000 원을 준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말로 이런 개꿀 알바가 어딨 으랴, 진짜 개꿀딱이었다. 


이미지출처: pixabay

게다가 미술학원 한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다 보니 왠지 붓과 물감보다는 크레파스 같은 재료가 맘이 편하다. 딸을 통해 알게 된 오일 파스텔은 특히 그 선명한 색감과 부드러운 터치감이 좋았다. 그래서 배워보고 싶었지만 막상 수업 프로그램에 등록하자는 시작이 망설여져 미뤄왔다. 집에 오일 파스텔을 다양하게 구비해 놓고도 활용을 못하던 차에 올타쿠나 싶었다. sns를 하는지 묻는 항목이 있어서 어떻게든 어필해 보려고 블로그와 sns주소도 같이 올려두었다. 하루 이틀 설레고 떨리는 맘으로 기다리는데 왠지, 정말 왠지 불러줄 것 같아서 이미 반은 행복한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클래스 리뷰어를 구합니다>에서 지원자님을 모시지 못하게 되었어요."라는 피드백이 왔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단박에 든 생각은 '또 젊은 애들을 찾았던가?' 싶었다. 식당 주방 업무와 여성복 매장 그리고 건물 청소 외에 나이 오십의 중년을 반기는 곳은 없는 듯하다. 또 나이에 밀렸나? 싶었다. 어쩌면 공방에서 애초에 2030 그룹 수업을 준비하며 2030을 대상으로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요즘은 이런 자투리 알바 자리도 나이와 성별 등을 지정해서 올리면 아예 등록조차 안된다고 하니 나름의 사정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절에 대한 피드백 앞에 또 확 쪼그라드는 내 모습을 확인했다. 상황에 대한 거절일 수도 있지만, 오십이란 나이 앞에 나라는 사람이, 내가 거절당한 기분이 들어 저절로 위축이 되었다. 그러면서 뭔가 한번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 생각이 또 저만치 용기를 끌고 도망을 갔다. 


내가 잘하는 게 뭘까? 나는 뭘 할 때 행복한가? 이 나이를 먹고도 나에 대해 그 기본적인 것조차 모르겠어서 서글프다. 오늘 만난 M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독서모임에 다녀와 들떠 있었고, 언제나 말을 차분하게 하는 B는  식물 가꾸기와 DIY인테리어로 사부작사부작 바쁘다. Y는 친구들과 틈만 나면 골프 치러 다니거나 기회만 생기면 좋아하는 크로스오버 그룹의 공연을 보려 다닌다. 또 J는 '내 배우! 내 배우!' 하면서 뮤지컬을 보러 다니기 바쁘고, 강사 일을 하는 L은 뒤늦게 트롯 가수와 소위 덕질에 빠져 모든 공연장을 다 찾아다니느라 얼굴 보기가 어렵다. 똑같이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인데 그들에겐 뭔가 빠져들 일이 있다. 나와 다르게.


저마다 자기만의 도화지를 화려하게 채우며 중년의 삶을 꽃피우고 있는데, 나는 무엇으로 이 빈 도화지를 채우면 좋을까? 하고 싶었는데 못 했던 일, 막연히라도 해 보고 싶었던 일, 하고 있으면 다른 일들이 생각 안 나고 어느새 몰입해 있을 만한 일, 내 영혼이 즐거운 일. 


생각만 해보고 한 번도 해보지 못해서 막상 하면 좋을지 어떨지도 모를 일들부터 하나하나 메모해 놓고 도전해 봐야겠다. 아이들의 체험 학습처럼, 일일 체험처럼. 아이를 위한 체험 학습에는 기꺼이 신청을 하고 입금을 해줬어도 나를 위한 체험학습엔 늘 생각에만 머물다 그쳤다. 그걸 못해봐서 이 나이에도 나는 아직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나 보다. 

 

#생애전환기 #중년의취미 #자기돌봄 #자기친절 #마음챙김 #오티움 #취미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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