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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봄 Jan 11. 2024

4. 내 인생의 멘토

그런 멘토가 나에게도 있었다면?

아주 오랜만에 영화 <굿 윌 헌팅(구스 반 산트 감독, 맷 데이먼 & 로빈 윌리엄스 주연/1998)>을 다시 봤다. 참 좋은 세상이긴 하다. DVD가 없어도 OTT(영화, TV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인터넷을 통해 제공)를 통해 오래된 영화를 손쉽게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자주 밤잠을 설치는터라 영화를 보면서 졸지 않으려고 소파 위에 올라앉은 나는 무릎을 세워 안고 집중해 봤다.  어린 시절 아주 심한 학대,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윌 헌팅. 아동기 부정적 경험이 켜켜이 쌓여 복합트라우마를 가진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커다란 결핍의 구멍을 가진 채 살아왔기에 자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이 삐딱하다. 좋아해도 자기 진심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방법을 모른다. 아무렇지도 않게 거짓말로 둘러대고 분노조절을 못해 걸핏하면 주먹이 나가고 감정을 폭발한다.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는 자신의 속내를 들킬까 봐 방어하고 거짓으로 돌려 막다가 떠나보낼지언정 결코 자신의 경계를 허물지 않는다. 또 수학뿐 아니라 과학, 역사, 법 등 온갖 지식으로 중무장하고 사람들을 대한다. 철저히 자기 본연의 모습을 가린 채. 윌은 가난한 동네에 살면서 일은 강 건너 금수저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간다. 보스턴의 강 건너엔 하버드와 MIT공대가 있는데 윌은 MIT공대에서 미화원으로 일 한다. 반전인 건 그가 대단히 특별한 천재라는 것.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수상한 교수가 증명해 내는데 2년이 걸린 문제도 윌은 그 자리에서 척척 풀어낸다. 수학교수가 강의실 복도 칠판에 문제를 내놓으면 윌은 몰래 다가가 조용히 풀어놓고 사라지곤 한다. 가장 똑똑하고 잘났다는 금수저들. 그들을 향한 윌의 도발이자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그만의 표현 방법이다. 이런 윌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수학교수는 윌을 찾아내지만 알고 보니 윌은 잦은 폭력과 절도 등으로 보호관찰 중인 청년. 윌의 재능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수학교수는 윌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윌이 상담치료를 받게 하고 매주 윌과 수학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수학교수의 목표는 어떻게든 윌을 수학계로 끌어들여 윌이 그 천재성을 발휘하며 살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는 그런 윌을 발굴해 낸 사람이 되고 싶다. 물론 이것도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내 눈에 수학교수는 윌에게서 수학천재로서의 '유용성'에만 집착하는 것 같다. 반대로 윌의 심리상담을 도왔던 숀(심리상담 교수로 수학교수와는 대학시절 경쟁의 라이벌 관계)은 비슷한 아픔의 결로 윌에게 다가간다. 윌의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고 단단한 매듭으로 뭉친 윌의 아픔을 보듬어 준다. '지금까지의 모든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 주며 윌의 '유용성' 보다 있는 그대로의 '존엄성'으로 대한다. 결국 숀 교수의 도움으로 윌은 스스로를 가둔 그 과거의 터널에서 벗어나 자기를 찾아 떠난다.  숀 교수는 사랑하는 아내를 2년 전에 잃고 애도를 다하지 못해 여전히 그 상실감 속에 있었지만 윌을 통해 회복의 길로 나아간다.          


졸지 않고 한 편의 영화를 성공적으로 감상했다는 기쁨 끝에 가슴속에서 뭔가 애잔한 울림이 올라왔다.

'나에게도 저런 멘토가 있었다면...'

누구보다 성실하고 조금만 인정해 줘도 충성을 다하며 아낌없이 쏟아붓는 사람, 바로 나다. 그런데 뒤돌아본 시간에 나는 주로 충성과 헌신을 하되 솔직한 속내를 제대로 표현할 몰랐다. 주로 혼자서 서운함을 쌓아가다가 결국 뒤돌아 서고 떠나왔다. 혼자 패배감에 젖을 때가 많았다. 그럴 때마다 언제나 못난 나 자신을 탓하고 수치심으로 몸부림쳤다. 서운함과 속상함 끝에 분노의 대상은 언제나 나였다. 

 

나에게도 숀과 같은 멘토가 있었다면 내 삶의 흐름이 진작에 좀 달라졌을까? 나의 10대는 덜 불안하고 나의 20대는 보다 도전적이었으며 나의 30대는 안정적이고 나의 40대는 비굴하지 않은 채 영예롭고 그래서 마침내 맞이한 내 나이 50엔 허탈하지 않은 충만한 삶! 그럴 수 있었을까? 


이제와 이런 서글픈 생각을 한들!

다만, 나이 오십에 찾은 건 있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해 후회되고 한스럽던 그 모든 아쉬움을 채워줄 멘토가 나에게도 있다는 것. 상처의 결이 같아서 누구 보다 나를 잘 알아주고 공감해 줄 멘토. 아픈 만큼 성숙하고 지혜로운 멘토. 때론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나에게 요구하겠지만 그럼에도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를 품어줄 멘토. 경험치만큼이나 훌륭하고 나에게 가장 적절한 최상의 멘토로 50 이후의 내 삶을 엄호해 줄 든든한 멘토. 그런 멘토가 나에게도 있다. 이젠 곁에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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