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구해준 삼신할머니

현실과 꿈사이

by 오롯이

꿈의 시작은 목욕탕 앞이었다. 우리 세 가족은 목욕탕 앞에서 헤어지며 잠시 후 다시 만나자고 인사를 나눴다.


나는 아직 옹알이도 할 수 없는 아기인 딸을 품에 소중히 안고 여탕으로 들어섰다.

실내 옷장에 옷과 가방을 넣어두고 아기와 함께 목욕탕 안으로 향했다. 따뜻한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느낌,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이라 그런지 기분이 좋았다.


내부는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씻을 수 있는 자리들은 빈틈없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기를 안고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이러다 지치겠네'하고 생각하는 순간, 20대로 보이는 어느 친절한 여성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아기도 있으신데 여기서 씻으세요".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겨우 자리를 잡았다.


그곳은 세숫대야를 앞에 두고 앉거나 서서 씻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세숫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 아기를 잠시 앉혀놓고 샤워기로 머리를 감았다.

벅벅- 손끝에 힘을 줘 두피를 시원하게 씻어냈다. 정말 개운했다. 남은 샴푸를 헹궈내고 눈을 떴는데,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기의 얼굴이 세숫대야 물에 잠겨 있었다.

너무 놀라 화들짝 아기를 건져냈다. 아기가 숨을 쉬지 않았다. 얼굴색마저 거멓게 변해 있었다.

눈이 뒤집힌 나는 곧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실내 카운터 직원에게 119를 불러달라고 절규했다.

있는 힘껏 소리를 지르는 나와 달리 카운터 직원은 너무나 차분했다. 119를 불러달라는 내 요청에도 몹시 굼뜨게 움직였다.


눈이 뒤집힌 나는 화가 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제발, 제발 119 좀 불러달라고요!"

그러던 와중 아기가 괜찮은지 확인하려 품속을 내려다봤는데, 아기가 없었다.

순간 등골 서늘해지면서 엄청난 무서움이 엄습했다. 내 아기가 어디로 간 거지?

사방팔방 뛰어다니며 아기를 찾았다. 알몸이라는 사실조차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얼마를 돌아다녔을까.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지쳐버린 내게 누군가가 말을 건넸다.

"애기 엄마, 아까 어떤 할머니가 아기 보살핀다고 데려갔어요. 할머니 찾아보세요."

어떤 할머니인지, 인상착의가 어떤지, 어디로 갔는지 말해준 이도, 듣는 나도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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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을 빙빙 돌아서 올라야 하는 계단으로 되어 있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등이 굽은 뒷모습에 비단옷차림이었는데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할머니가 오르는 속도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다.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자 별수 없이 나는 소리쳤다.

"할머니! 우리 아기 괜찮아요?"
"할머니! 할머니!!!"
"어떻게 알고 데려가신 거예요?"

목이 아플 정도로 크게 외쳤던 것 같다. 미끄러지듯 계단을 오르던 할머니가 마침내 내게 말했다.

"애기 괜찮아. 너 앞으로 아기 잘 키워야 된다".

묵직한 대답에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무언의 압박으로 더는 따라갈 용기가 나지 않아, 그 자리에서 연거푸 감사하다는 말을 되뇌었다.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둑한 방 안에서 본능적으로 아기를 살폈다. 다행히 아기는 옆에서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제야 숨을 고르고 다시 자리에 누웠다.

그 할머니는 누구였을까? 정말 감사하지만,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무서운 할머니.

아마 산모와 갓난아기의 건강을 지켜주는 삼신할머니는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