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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리 May 24. 2022

[뮤지컬 팬레터] 뮤즈에게 보내는 편지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뮤지컬을 좋아한다. 무대에서 오는 현장감, 같은 배역을 다른 사람이 연기하며 생기는 디테일의 차이, 사전 지식이 되는 다른 분야도 공부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 등 다 말하려면 입 아플 정도로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나도 뮤지컬을 연례행사로만 바라보던 때가 있었다. 아무래도 가격이라는 진입장벽 때문에 1년에 1~2번 보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산산이 조각내 준 작품이 바로 뮤지컬 <팬레터>다.



뮤지컬 <팬레터>는 1930년 경성을 배경으로 하며 일제강점기에도 우리의 순수문학을 지키기 위해 힘썼던 문학가들의 이야기이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소설가 이상과 김유정, 김기림, 이태준 등이 소속된 경성 문인들 모임 ‘구인회’에서 모티브를 얻어 <팬레터>에서는 ‘칠인회’가 등장한다. 칠인회에 작가 지망생 정세훈이 급사(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부리는 사람)로 들어오고, 천재 소설가 김해진도 합류하면서 극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둘과 함께 해진의 팬이자 작가인 히카루가 극을 이끌어 나간다.


   

일제강점기 배경에 문학인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내가 좋아할 확신이 들었다. 하지만 이래저래 바빠서 미루던 어느 날, 갑자기 충동적으로 표를 예매해서 급하게 시놉시스만 읽고 보게 됐다. 사실 <팬레터>를 작품 설명과 시놉시스만 읽고 가면 문인들의 숨겨진 이야기와 애환쯤으로 생각할 법하다. 물론 당시 작가들이 가졌던 고민들, 창작의 어려움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극의 주요 메시지는 그게 아니다. 따라서 상상하는 전개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또, 사람에 따라 싫어할 부분도 명확하다. 지금 이렇게 좋아하는 나조차도 처음에는 그랬으니.



그만큼 해석의 여지가 많은 뮤지컬이다. 내가 생각하는 <팬레터>의 가장 큰 매력은 여기에 있다. 주인공 3명인 김해진, 정세훈, 히카루가 참 입체적인 인물이라 마냥 미워하기만 힘들다. 셋 다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모두 이해가 된다. ”글“을 매개로 김해진과 정세훈의 관계, 정세훈과 히카루의 관계, 히카루와 김해진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모습을 보며 극에 점점 빠져든다. 또한, <팬레터>는 실제 작가를 모티브로 했기에 중간중간 해당 작가의 문학을 인용하기도 하고, 다른 문학의 구절도 인용한다. 이뿐만 아니라 창작한 대사와 가사도 서정적이고, 표현이 예뻐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연출도 뮤지컬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극을 다 보고 나니 기본 정보만 알고 본 내가 기특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 느끼고, 흐름을 파악해 나갔기에 더 크게 와닿았다. 주인공들이 이해되지 않아 몰입이 떨어질 무렵, 머지않아 하나둘 이해되기 시작하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그리고 내가 느낀 감정과 주인공의 대사가 맞닿을 때, 그 감동은 배가 되어 돌아왔다. 두 번 더 봤지만, 처음 봤을 때만큼의 감동이 밀려오진 않았으니 스포일러를 보지 않고 가는 게 좋을 듯하다.



한편, 소설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나도 이런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이야기를 창작하는 건 나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으므로. 하지만 <팬레터>를 관람한 후, 대본집을 읽고 필사하면서는 ”어떻게 이런 내용과 표현을 썼을까“, ”나도 이런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특히, 이전 시즌에서 친일 관련 논란됐던 부분을 수정해서 불편함 없이 집중할 수 있었다. <팬레터>가 막이 내린 지 두 달이 됐지만, 다른 공연을 봐도 항상 끝은 <팬레터>를 향한다. 이런 느낌은 처음이라 생소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좋은 작품을 만난다는 건 매우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이므로 이 감정을 원 없이 즐겨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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