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1)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완전히 가린 채, 내가 서 있는 쪽을 쳐다보려고 하지 않았다. 무서워하는 건가? 하고 지켜보고 있으니 그녀는 얼굴에서 손을 살짝 뗐다가 내가 바라보고 있는 걸 알아채고는 다시 얼굴을 가리며 소리쳤다.
"나...남자!"
뭐지... 이 여성은 남자를 무서워하는 건가? 남자를 왜 무서워하지...? 하지만 무서워서 떨고 있는 모습을 보니 살짝 가엾기도 하고...
그런데 그 여자는 사실 손으로 얼굴을 가렸으면서도, 나를 흘끔흘끔 보는 것 같았다. 일부러 그러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녀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 했던 순간이었다. 그녀는 내 허리에 달린 시커 스톤을 발견했는지 깜짝 놀라며 외쳤다.
"그건.... 시커 스톤?!"
그녀와 순간적으로 두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아주 당황하더니 다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는 벌벌 떨면서 내게 말을 걸었다.
"...그... 설마... 당신은 할머니께서 말씀하시던 링...링..... 그....."
너무 떨리는지 그녀는 말을 심하게 더듬었다. 아마도 할머니라고 칭하는 사람은 임파인 것 같고... 그렇다는 이야긴, 이 여자는 임파의 손녀라는 이야기? 임파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이 아가씨에게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내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건 아닐까?
"흠..."
내가 헛기침을 살짝 하자 그녀는 더욱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했다.
"잊어버린 게 아니라 말이 잘.... 저는....파... 파.... 파야파야..."
그렇게 더듬더니 결국, 숨을 고르던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파야.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 나더니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은 그녀는, 손을 얼굴에서 내리고는 공손한 자세로 (그러나 나를 여전히 보지 못한 채로) 또박또박 말을 했다.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어서 들어가세요. 할머니께서 아주 많이 기다리셨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파야는 자리를 떴다. 다소 황당하다 느꼈지만, 그녀도 내가 나타나 어지간히 놀랐던 거겠지? 그나저나 이 정도의 손녀가 있다니, 임파는 할머니인건가.... 나는 임파가 있다는 그 집의 문을 활짝 열어 젖혀 안을 들여다보았다.
매우 큰 방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처럼 보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빨간 방석을 여러 개 겹쳐 놓은 좌석이 있었다. 그 방석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이상한 모자를 쓰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 모자는 시련의 사당에서 만나는 도사들이 쓰고 있는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고, 그 좌석에 앉아 있는 사람은 혼자였으므로... 저 사람이 임파일 것이었다. 임파는 찬찬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눈을 하고, 내게 말을 걸었다.
"오랜만이구나, 링크...."
"폭삭 늙어 버렸지만, 기억하고 있겠지?"
아.... 기억하느냐고? 정말,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임파의 눈빛을 보니 나를 정말 반가워하는 눈치였고, 마치 오랜 옛 친구를 대하는 듯 편안한 말투였지만... 나는.... 나는....
내가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그냥 서 있자, 임파는 내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음.... 기억을 못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까... 하는데, 임파가 먼저 입을 열었다.
"... 마치 날 처음 보는 듯한 그 눈..."
그녀는 중얼거리더니, 다시 눈웃음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날세, 임파야! 임파라는 이름 정도는 기억하고 있겠지?"
그 목소리에서 자신의 이름이라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전해졌지만... 정말 하이랄 왕에게서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도 낯설기만 했던 이름이라...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임파는 눈을 크게 뜨고는 나를 쳐다보며 가까이 와 달라고 부탁했다.
임파는 이미 예상했다는 투로 다시 말을 시작했다.
"그대.. 역시 기억이... "
기억이 잘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어찌 아는 걸까? 신기했지만, 임파는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이 지금의 내게는 축복일 수 있겠다는 아리송한 말을 했다.
"그래... 지금은 오히려 그게 축복일지도 모르겠군..."
내가 가까이 가자, 그녀는 천천히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하이랄 왕국이 멸망한 100년 전 그때... 젤다님께서는 최후의 희망으로, 쓰러진 그대를 성스러운 수면에 들게 하였지..."
임파는 나와 함께 있었지만, 그녀의 생각은 100년전 과거를 달리고 있는 듯 어딘가 먼 곳을 응시했다. 그녀에게도 과히 좋지 않았던 기억, 하이랄 왕이 원통하다는 듯 이야기했던 그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고 있었다.
"젤다 공주님은 그 후 홀로... 홀로... 재앙 가논에게 향하셨어...."
임파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결심했다는 듯, 내게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그 젤다 공주님께서... 그대에게 전하고픈 어떤 말을 내게 남기셨어. 그 말을... 그대에게 전할 날을...난 100년간... 기다리고 있었다네..."
그 말이 뭐길래, 임파는 내게 직접 그 말을 전해야 했을까...이제 그 말을 하려나? 이 말을 들으라고, 하이랄 왕도 임파를 찾아가라 했을 터....하지만 임파는 바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다시 눈을 감았다.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임파는 눈을 가늘게 뜨고는 힘을 주어 말했다.
"하지만!"
"공주님께서 목숨을 걸고 그대에게 남기신 말... 그 말을 듣는다는 것은... 즉....그대도 목숨을 걸 각오를 다진다는 것...."
목숨을 걸 각오....? 젤다 공주가 남긴 말을 듣는데, 목숨을 걸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인거야? 이야기가 나의 예상과는 너무도 다르게 흘러가서 난감했다. 하지만 임파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렇다곤 하나, 지금의 기억을 잃은 그대에게 강요할 순 없는 일이지.... "
공주님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100년 전의 일도, 임파와의 일도 모두 잊은 내게는 강요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이랄 왕도 기억을 잃은 내게 충격을 주기 싫다고 했는데.... 흠.... 그게 그렇게 안 좋은 기억인걸까…?
임파는 진지한 눈으로 나의 눈을 바로 보며 이렇게 말했다.
"공주님의 전언을 들을 각오가 되면 다시 이곳으로 찾아오게나..."
결국, 그 이야기는 지금 내게 하지 않을 셈이구나... 화가 났다. 어떻게 임파를 찾아왔는데! ... 무슨 죽을 각오를 또 해야 한다는 거지? 이곳에 오면, 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답답함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임파는 더 이상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분노의 감정에 휩싸여 임파 앞을 물러나 집을 나와버렸다. 기억을 잃었으니...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른 채... 있는 게 축복일 수 있다는 임파의 말이 다시 들리는 것 같았다. 계단을 달려 내려가 무작정 앞으로 보이는 산으로 뛰었다. 산 중턱에는 빨갛게 불이 들어온 사당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거칠어진 숨을 몰아쉬며, 발 아래에 내려다보이는 카카리코 마을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밤... 마을 구석구석에는 등이 밝혀졌고, 마을 곳곳 피어난 꽃나무들이 불빛에 아름다웠다. 그러나 내 마음은 그런 풍경을 담을 수 없었다.
잠시 사당 앞에 앉아 차가워진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카카리코 마을에 들어선 이후의 일들을 되짚었다. 용사가 왔다며, 모두들 기다리던 존재라고 환영받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살짝 들떴었나보다. 다른 마을에서는 여행자 정도로, 누구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었지. 여기선 시커 스톤 하나만 들고 있었을 뿐인데 사람들이 놀라고, 정중한 태도로 대하는 모습들은 다시 깨어난 이후 처음 접하는 일들이었으니....
'누군가는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랐던 걸까?'
하지만, 천천히 생각해 보니... 시커 스톤을 들게 된 것이 운명이라 해도 (정확히는 젤다 공주가 정해준 것) 나는 스스로 용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용사라 하기에는 아직 많이 미약하고, 뭐가 뭔지 모르는 나. 그 한계는 내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당에 들어가기만 해도 그들은 날 용사라고 인정해준다. 그래서 그 길을 따라가야 하나 아닌가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만약 내가 기억을 잃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나는 만약.. 이란 상황을 상상해 보다 그만두었다. 그러면서 내 스스로도 용사가 되는 시련을 받을지 어떨지 ...망설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이야 생명력과 스테미너가 부족하니 사당에 가고 있을 뿐...어쩌면 임파는 그런 나를 꿰뚫어 본 셈인지도 몰랐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임파가 내게 목숨을 걸 각오를 보여달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젤다 공주가 남긴 말이 무엇이든간에... 하이랄 왕이 남긴 부탁을 들어주는 길을 간다면, 재앙 가논을 없애는 것이 나의 최종 목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렸다. 목숨을 걸 각오? 그런 것까지는 모르겠다. 시커 스톤이 내게 왔지만, 그걸 계속 들고 있어야 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나는 갑자기 사당에 들어가서 나를 다시 시험해보겠다는 결심이 섰다. 사당이 주는 시련을 극복하는 것은 용사임을 증명하는 길이다. 만약, 계속 사당에서 극복의 증표를 받다 보면 언젠가는 내 스스로 용사라는 자각이 생길까?
시커 스톤을 인증시켜 사당에 들어왔다. 이번 사당을 만든 시련의 도사는 타로.니히. 이 사당은 그간 들어갔었던 사당과는 아주 달랐다. 어떤 퍼즐을 풀어야 하거나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타로.니히는 내게, 자신이 전투의 기술을 가르치겠으니 익히라고 말했다.
전투의 기술을 익혀라? 타로.니히의 목소리가 울려퍼지자마자 넓은 사각의 커다란 공간에 작은 가디언이 나타났다. 전에 보았던 가디언보다는 조금 큰 것이었는데, 무기를 들었다! 잘못 맞으면 뼈 추리기도 어렵겠다는 생각에, 나는 무기를 뽑아 손에 들었다. 타로.니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적의 공격을 옆으로 뛰기로 피하고 그 틈에 공격을 가하라....'
적이 공격할 때 그 공격을 옆으로 뛰면서 피하면, 공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 같다. 가디언이 내게 다가와서 칼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는 공격을 했다. 방패를 들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다가 가디언이 공격을 시작할 때 옆으로 뛰어 공격을 피하려 노력했다. 처음엔 잘 되지 않았지만 서너번 시도하다, 가디언의 내리치는 공격을 피했다! 그 순간 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내가 점프해서 활을 쏠 때 순간적인 집중력이 발휘되는 것처럼, 공격을 피했더니 그 순간 - 적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아주 또렷이 느껴진 것이다. 잠깐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적이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춘 것 같았다. 무기를 쥔 양손에 힘이 들어갔다. 나는 순식간에 연속 공격을 가디언에게 퍼부을 수 있었다.
공격이 성공하자, 타로.니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적의 공격을 뒤로 뛰기로 피하고 그 틈에 공격을 가하라....'
집중해서 가디언의 공격을 주시하고 있으면, 공격을 피하는 기회를 곧잘 찾을 수 있었다. 아까 옆으로 뛰어 공격을 피한 것처럼 뒤로 피하기도 곧 성공했더니 그 다음엔 방패로 적의 공격을 튕겨 내라는 주문이 떨어졌다. 타로.니히가 요구하는 대로 움직이다보니, 조금씩 자신감이 붙었다. 이것이... 혹시... 원래부터 내가 가지고 있었던 능력은 아닐까? 잊고 있었던 전투 기술을 타로.니히가 다시 일깨워주는 것은 아니려나? 생각보다 쉽게 도사가 알려주는 기술을 하나 하나 실행하는 나의 모습...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타로.니히가 가르쳐 준 옆으로 뛰거나 뒤로 뛰면서 공격하는 기술은 '회피 저스트'라는 것이고, 방패를 사용해 적의 공격을 튕겨 내는 것은 '가드 저스트'라고 했다. 마지막에는 예전에 얼떨결에 써먹었던 칼 돌리는 기술인 '회전베기'를 다시 익혔다. 전투 기술을 모두 익히자, 가디언은 파괴되었고 나는 전리품을 얻었으며 극복의 증표도 받았다. 개운한 기분으로 사당을 나섰더니 밖은 한낮이었다. 사당에 들어서기 전 복잡하고 어지러웠던 마음은 사라졌다.
나는 다시 뛰어 마을 아래로 내려왔다. 임파에게는 죽을 결심까지는 아니더라도 용사의 짐을 질 수 있을 뭔가 결심이 서면 다시 찾아가자는 마음을 먹었다. 그러다 기억을 찾을 수도 있을 지도? 그도 아니라면, 시련의 사당을 깨다 보면 해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카카리코 마을을 둘러보며 지나가다, 옷가게를 발견하고 멈추어 섰다. 입구에 서서 사람들을 부르는 아가씨는 '포목점입니다~ 구경하세요~' 하고 밝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옷가게라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데 입구에 서 있던 여자가 나를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 오빠, 내 타입이다~!"
앗.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외치다니... 부끄럽잖아? 쑥쓰러워서 나도 모르게 머리를 긁적...(투구를 쓰고 있는 걸 깜박했다) 거리는데 그녀는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한마디 더 했다.
"게다가, 허리엔 시커 스톤까지 차고 있고!"
그렇지. 시커 스톤을 갖고 있는 것도 이상형에 들어가는 건가?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갑자기 그 여자는 깜짝 놀라더니 어쩔 줄 몰라했다.
"....? 어???? 시커 스톤????!!"
그녀가 너무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덩달아 놀라버렸다. 그녀는 자신이 본 광경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내게 재차 확인하며 이렇게 물었다.
"그거 대단한 사람만 들고 다닌다는 대단한 물건 맞지???"
음.... 그런가..... 난 뭐라고 대답할 말이 없는데.... 시커족들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고.... 내가 그저 우두커니 서 있자, 그녀는 허리를 쭉 펴더니 이렇게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오빠.... 분명 대단한 사람이겠구나. 그렇지? 시커 스톤은... 세상을 구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라고 했거든... 우리 집 할머니가 그랬어! 그 사람이 언젠가는 나타나서.... 이 뒤숭숭한 세상을 구해줄 거라고 말이야..."
"...그래? 세상이 뒤숭숭해...?"
"... 그럼! 오빠~ 마을 안은 안전하지만... 밖은 몬스터가 많아 여행하기 위험해! 아, 사실 오빠니까 알려 주는 건데... 난 사실 다른 마을로 공부하러 가고 싶은 꿈이 있어.. 그런데, 너무 위험하다고 다들 말리는 중이야. 이가단도 다시 활동한다고 하고..."
그녀는 내가 별 반응이 없자, 기운차게 말했다.
"자자~ 특별한 분께는 우리 포목점 옷이 어울릴 거야~ 오빠! 들어가서 구경만이라도 하고 가아~!"
그런가 .... 혹시 모르니 카카리코 마을에는 어떤 옷이 있는지 구경만 해볼까....? 포목점 입구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처음 보는 독특한 옷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하나 하나 구경해 보았다.
포목점에 전시되어 있는 옷은 세트로 구비되어 있는데 고대 기술을 사용한 천으로 만들어서 이 옷을 입고 있으면 잠입이 쉽다고 한다. 오! 솔깃한 설명에 옷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판매원 역시 자신있게 이 은밀 세트를 추천한다고 하기에 더더욱 살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그 때, 판매원이 속으로 중얼거리길 '방어력은 낮은 편이지만..'라고 하는 걸 들었다.
그 말에 잠깐 망설이긴 했으나, 나는 결국 이 세트를 사기로 결정했다. 은밀 재료는 있다가도 없을 수 있고, 요리를 미리 해 두지 않으면 쓸 수 없지만 방어구는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 잠깐 쓸 수 있는 거니까...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다행히도, 가지고 있는 루피로 세트를 살 수 있었다.
옷을 구매한 후에 한번 입어 보았다. 가슴께에 크게 들어가 있는 시커족의 상징 문양이 살짝 거슬리지만, 착용감은 굉장히 좋았다. 몸도 매우 가볍게 느껴지고... 옷자락 스치는 소리도 거의 나지 않는다니 신기했다. 그러나 방어력이 거의... 시작의 대지에서 받은 낡은 셔츠를 입을 때와 다를 게 없는 수준이라(헉) 다시 병사 세트로 옷을 갈아입었다.
포목점을 떠나는 길로 카카리코 마을에서 나갔다. 임파가 말한 대로, 죽을 각오가 생길 때 다시 이 마을에 오게 되겠지... 내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지는 않아 답답했지만, 어쩌면 또 다른 곳에서 실마리를 찾을지도 모르겠다. 하테노 고대 연구소에 갔다가 새로운 사실을 알았던 것처럼...
아. 그러고 보니 시커 스톤의 기능을 복구하려면 그 각오를 해야 한다는 거네?! 아....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 답답해 마을 바깥 길을 내달렸다. 용사로써 다시 목숨을 바칠 각오.... 솔직히 하기 싫다. 난 이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걸.... ? 내가 용사인지 아닌지도 모르는데.... 다시 생각이 복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