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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해야 하는 이유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2)

by 김엘리


카카리코 마을에서 나온 나는 무작정 걷고 뛰었다. 패러세일을 펼쳐 날다가 잘못 착지해서 구르고, 그 와중에 갑자기 튀어나온 몬스터와 싸우고... 내리는 비를 흠뻑 맞고, 진흙탕에서 굴렀다. 그러면서 며칠을 돌아다녔더니 카카리코 마을에서 보낸 시간이 거짓말 같이 느껴졌다.


시커 스톤 하나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모두들 나를 용사로 여겼지... 진짜 내가 용사의 능력을 가진 자인지, 어떤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쳇. 따스하게 대해주고 인정해주니 기분이 좋았지만 비가 주룩주룩 퍼붓고 천둥 번개가 요란하게 치는 밤을 밖에서 보내고, 처량한 기분으로 앉아 있다 보니 그런 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다.


마을 밖으로 나왔더니 나무들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 외에는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상인이나 여행자의 모습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들은 나를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고 보더라도 쓱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몬스터들은 하도 자주 마주치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어쩔 땐, 하루 종일 인간을 만난 적이 없을 정도로 동하테노 지역은 인적이 드물었다. 그래서 길에서 갑자기 사람을 만나면 깜짝 놀랐던 적도 있었다.


야생마를 잡아타고 가다가, 길에서 만난 어떤 남자는 넬드래곤이라는 용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기도 했다. 사실 말을 걸지 않으려고 했는데, 새로 잡은 야생마가 내 말을 듣지 않아 잘못 달리다 보니 이 사람이 타고 다니는 말과 부딪힐 뻔 했다.



사과를 했지만, 이 사람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넬드래곤이라는 용 전설만 이야기하더니 쓱 가버렸다. 참 이상했다. 언제는 사람이 그리웠는데, 이제는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고, 사람을 마주치는 게 불편할 때도 있다니.


그리고 최근 느끼는 큰 변화는 아무래도 이것이다. 가는 길에 몬스터를 만나면, 이제 망설임없이 무기를 꺼내들고 먼저 싸움을 걸게 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는 보이는 대로 피하거나 일부러 피하려고 길을 돌아가기도 했는데....그렇게 했던 것들이 아주 무색해졌다. 전투가 자주 일어나니 몬스터들의 특징을 더 많이 파악하게 되었고, 그들과의 전투 패턴을 익히게 되어 어떤 전투들은 굳이 생각하지 않고 몸이 먼저 움직인 경우도 있었다. 100년전의 나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몬스터들은 그저 해치워야 하는 상대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며칠간 그렇게 목표하는 곳 없이 여기 저기 유랑하듯 떠돌다 보니 마침내, 나는 쌍둥이산에 다다랐다. 산 가운데가 크게 갈라져 독특하게 생긴 지형.... 지도를 보지 않고도 한 눈에 쌍둥이산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렇게 가려고 했지만 길을 헤매 찾지 못했던 쌍둥이산 ... 이렇게 우연히 오게 되는구나...


멀리서 봐도 신기한 산이긴 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꽤나 높이가 되는 산이었다. 쌍둥이산 주변에는 강이 흐르고 한쪽 구석엔 열리지 않은 탑도 있었다. 지도를 얻어야 하므로 탑부터 오르는 게 순서였다. 탑 주변으로 일단 뛰어갔다가, 근처에서 말을 타며 놀고 있는 보코블린 무리들을 마주쳤다. 말을 탄 녀석들을 하나 둘 화살로 맞추고, 모리블린을 피해 탑이 있는 쪽으로 날았다. 곧 비가 온다는 시커 스톤의 알림에, 얼른 탑에 올라야 해서 마음이 급했다.



다행히 탑에 오르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휴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탑을 열자, 주변의 지도가 시커 스톤에 입력되었다. 쌍둥이산 주변부터 카카리코 마을 주변부까지 지도에 담겼다.

시커 스톤을 챙겨 넣고 돌아서는데, 시련의 사당이 근처에 있다는 알람이 떴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사당이 근처에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높은 곳에서 살펴봤지만 - 탑 위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산으로 가려진 부분에 사당이 있는 것 같아 탑에서 뛰어내리기로 했다.



쌍둥이산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많았는데, 중간에 좁기는 해도 산을 통과할 수 있는 풀밭길도 있었다. 비가 내려서 등산은 아무래도 힘들었기 때문에, 나는 산과 산 사이의 길을 찾아 달렸다. 가다 보니 반대편 산 절벽 아래 사당이 숨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사당은 리.다히의 사당이라고 하는데, 경사로를 따라 떨어지는 보주를 잘 튕겨내서 넣어야 하는 홈에 구슬을 넣으면 통과할 수 있는 곳이었다.


큰 어려움 없이 리.다히의 사당에서 극복의 증표를 획득하고, 클라이밍 두건이라는 방어구도 얻었다. 다시 나와서 더 낮은 절벽 아랫길로 달렸다. 쌍둥이산의 갈라진 틈으로 냇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주변에도 몬스터들이 수영을 하거나 모닥불을 피워서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한 무리의 몬스터가 보물 상자를 가지고 있기에 위에서 습격! 폭탄 화살 하나를 날려서 몬스터들을 비교적 쉽게 처치했다.


용신이 지나갔다는 쌍둥이산의 계곡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니, 왼편에 또 다른 사당이 있었다. 이 사당은 '하유.다마의 사당'으로, 사당 주변에 장애물이 있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약간 높은 언덕길을 찾아서 올라간 후, 패러세일로 입구에 도착했다.


사당 안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는데, 아이스메이커 기능을 이용해서 물을 건너는 퍼즐을 푸는 곳이었다. 이곳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통과하여 극복의 증표를 얻었다. 밖으로 나오니 비가 그치고 다시 날씨가 온화해졌다. 사당에서 바라보니, 너른 평원이 눈 앞에 펼쳐져 있고 - 오랜만에 마구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쌍둥이 마구간은 은근 재미있는 곳이었다. 먼저 이 곳을 운영하는 형제는 정말 똑같이 닮았다. 쌍둥이들이란 만나기 쉽지 않은 법인데... 나는 오다가 잡았던 야생마를 그냥 놓아주고 왔으므로 이곳에서는 새 말을 등록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에 두고 온 나의 말 'Marine'을 이곳에 맡겼다.



쌍둥이 마구간 주변을 살펴보다,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 '히나바'라는 사람도 만났다. 그는 갑자기 하늘이 붉어지며 핏빛의 달이 뜨는 현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하였다. 그는 나름 그 붉은 달을 '피의 보름달'이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그는 어째서 사라진 몬스터가 그 밤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지를 매우 궁금해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기만 하고 젤다 공주가 알려준 비밀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괜한 이야기를 했다가 이상한 소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



마구간 주변을 보다가 마방간 앞에서 말 먹이를 주고 있는 꼬마들이 귀여워 가까이 가 보았다. 그런데 이 꼬마들 역시나 쌍둥이 (ㅋㅋㅋ)였다! 둘이서 뭔가 중얼대길래 옆에서 살짝 엿들었는데... 나에 대한 이야길 하고 있었다.



"이봐, 저 형 말이야! 말 좋아하는 거 같지?"

"응... 말을 타고 싶어서 어쩔 줄 모르는 눈을 하고 있네..."

"그치? 말이 너무 신경 쓰여서 다른 건 중요하지 않다는 눈이야..."


둘은 소근소근 뭔가 더 이야기하더니 갑자기 나를 동시에 보았다. 둘 다 어찌나 반짝거리는 눈을 하고 있는지... 내가 보기엔 너희들이 더 말을 신경쓰는 눈치인데...?



그러더니 두 녀석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쌍둥이 마구간에 어서 오시라는 인사를 했다. 히힝~ 귀여운 말소리를 흉내내면서... 후훗. 꼬마들 정말 귀엽다.



둘은 이 마구간을 운영하는 형제의 아들들인데, 이름은 다트와 시보우라 했다. 두 아이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말에 대해 배워서 어려도, 말에 관해서만큼은 다 알려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말을 사랑하는 만큼, 말을 좋아하고 아끼는 사람도 알아볼 수 있다면서... 나에게 바로 묻는 질문은 말을 좋아하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냥 보통 좋아하는 게 아니라, 늘 하루종일 말을 생각하는... 말 덕후쯤 되는 사람이냐고 내게 물었다. 머릿속이 말로 꽉 차 있고, 밥 때 아니면 말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글쎄, 아이들이 기대하는 것 만큼은 아닐 수 있지만... 녀석들이 너무나 초롱한 눈으로 물어보니 아니라고 할 수도 없어서, 고개를 살짝 끄덕여 줬더니 두 아이는 신이 났다. 나의 눈을 보면 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말을 잘 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며 서로서로 먼저 말하기에 바빴다. 말 타는 법... 물론 나도 알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만, 이 당돌한 말 전문가들에게 내가 알고 있는 걸 확인해 보기로 했다.



사실 야생마를 잡아보면서 감으로 느낀 것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꼬마들에게 물어보니, 얼룩말이나 엉덩이에 점박이 무늬가 있는 말이 순한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 색깔로 이루어진 단색종은 힘도 쎄고 빠르기도 좋은 경우가 많지만 성격이 까다로워 길들이기는 어렵다고....


왠지 그럴 것 같았는데, 아이들의 말로 알고 있던 걸 확인하니 좋았다. 아, 꼬마들과의 대화로 한가지 더 알게 된 것은 말을 달랠 때 아무때나 쓰다듬으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이 말을 잘 들으면 쓰다듬어 주는 것이 포인트라고 계속 강조했다. 그건 미처 몰랐던 점이었으므로,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했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솥 옆에는 사게사라는 여자가 앉아서 불을 쬐고 있기에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물약 의 효능을 굳게 믿고 있는 사람으로, 내게 물약을 하나 나누어 주었다.



그녀가 준 물약은 고고물약이었다. 자기는 빨리 움직여 몬스터에게서 도망갈 수 있기 때문에 이 물약을 10개씩 만들어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많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몬스터가 워낙 자주 나타나므로 10개로도 부족할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


쌍둥이 마구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나는 다시 길을 떠났다. 다행히도 마구간에서 도끼를 발견했는데, 그 때 볼슨 사장이 생각났다. 하테노 마을에서 찾지 못한 도끼를 이제서야 찾다니! 볼슨 사장에게 가져다 줄 장작을 아직 마련하지 못했으므로 나는 도끼를 챙긴 후 주변의 숲을 찾았다.


쌍둥이 마구간 주변은 너른 평원이었고, 풀밭이 대부분이었지만 멀리 보이는 돌산 아래, 일부 나무들이 모여 자라는 작은 숲이 있었다. 숲쪽으로 방향을 옮기는데, 거대한 가디언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이 쉽게 눈에 띄었다.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가까이 다가가면 움직이는 것이 있을 수 있으므로 가디언을 대할 땐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도 평원에 흩어져 있는 가디언들 중에는 움직이는 것이 없어서 고대 소재를 열심히 모으고 다녔다.

다만, 생각지도 못했던 점은 이 평원에 자라는 수풀이 길다 보니 그 사이에 몬스터들이 숨어 있다는 것! 갑자기 풀숲 뒤에서 나타나 공격해오는 녀석들 때문에 한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나무를 베러 가다가, 한 무리의 몬스터들과 싸웠는데 그들 무리 안에 보물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걸 발견했다. 상자를 열어보니 달인의 도끼가 들어있었다. 오! 달인의 도끼는 도끼 치고 꽤나 공격력이 높아 나무 베는 용도 뿐 아니라 무기로도 쓰기 좋게 생겼다. 좀 무거운 것이 단점이긴 하지만, 몇 번 연습해 보면 적당한 타이밍을 익힐 수 있을 것 같았다.



가디언의 잔해 사이를 지나가서 숲에 도착했다. 좀 굵은 나무기둥이라 하더라도 달인의 도끼는 한 번 휘두르면 바로 기둥을 찍어 넘어뜨릴 수 있어 편했다. 모두 30개의 장작을 만들어야 하므로, 최대한 한 번 휘둘러 여러 장작을 만들 수 있는 나무를 골라 베었다.


한참 나무를 베고 나니 달인의 도끼에 금이 가 부서졌다. 그래도, 다행인 게 30개 이상의 장작을 모았다. 장작을 모으고 가디언의 잔해를 뒤지며 고대 소재를 몇 개 더 모았다. 그런데 그 때....



가디언 잔해를 따라 성곽의 벽으로 보이는 곳까지 들어갔을 때였다. 시커 스톤에 '하테노 요새'란 알림이 뜨고, 여기가 요새란 말인가..하고 돌아보려는 찰나, 내 뒤편에 서 있던 가디언 잔해에서 붉은 등이 켜졌다. 앗!


그 오래된 세월 동안 어찌 멈춰 있었나 신기할 정도로, 나를 정확히 겨냥하는 붉은 불빛.... 오랜만에 느끼는 살기였다. 시작의 대지 이후로 처음인가?


나는 방패를 들어 방어를 하려다가, 생각보다 가디언의 반응이 좀 느리기에 화살을 장전하고 가디언의 눈처럼 보이는 부분을 맞추었다. 한 번 맞을 때 마다 공격의 방향을 잃어버리는 가디언을 확인했지만 화살로는 이 무시무시한 기계의 에너지를 뺏을 수 없었다. 창으로 몇 번 공격해보았지만 큰 타격이 없어, 가지고 있던 무기 중에서 고대 소재로 제작했다는 가디언 랜스를 들었다. 철 무기의 공격으로 소용이 없다면, 이거라도 하는 마음뿐이었다.


화살로 눈을 한번 더 맞추고 랜스를 들어 돌격했다. 쾅, 쾅, 콰쾅! 경쾌한 소리와 함께 딜이 들어가고 가디언은 맥을 추지 못했다. 그래, 이거지! 가디언 랜스가 공격력이 좀 더 강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곧 부서지고 말았다. 다행히도 가디언 나이프가 하나 남아 있어 그것으로 마무리를 했다.


마지막 일격을 날렸을 때, 가디언 내부에서 폭발하는 빛이 사방으로 퍼지더니 굉음을 내며 폭파되었다. 아.... 가디언과 싸워서 드디어 처음으로 이겼다!!! 아, 이 짜릿함이란!!!



나는 전투 상황을 다시 한번 되짚어 보았다. 분명히 가디언에게는 고대 소재를 사용해서 공격하는 것이 효율적이었으니 잊지 말아야겠다. 무기를 잡았던 손에는, 가디언을 무찔렀을 때의 통쾌함과 무기의 타격감을 느꼈던 흥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숨 돌린 후, 바닥에 떨어져 흩어진 고대 소재를 챙겼다. 역시 전투로 얻는 전리품은 수집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가디언이 또 발동해도 두렵지 않은 기분을 만끽하며 하테노 요새 주변을 더 돌아보았다.


하테노 요새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성벽은 성한 곳이 별로 없고, 대부분이 부서져 있었다. 여기가 요새라는 걸 알고 나서야, 왜 가디언의 잔해가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아마도 100년 전에 여기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요새의 문으로 들어섰는데, 안에 요리를 할 수 있는 솥이 있고 불이 지펴져 있었다. 불을 쬐러 다가갔다가, 요새를 여기 저기 둘러보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의 이름은 프리토스라고 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하테노 요새를 보러 왔냐고 물었다. 그는 꽤 흥분해 있었다. 뭐, 이걸 보러 일부러 여기 온 건 아니긴 하지만 지금은 둘러보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니 그는 남자라면 꼭 봐둬야 할 장소라면서 - 여기가 대재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장소라고 알려 주었다.



"이 하테노 요새는 대재앙으로부터 하테노 마을을 지킨 마지막 요새야!"

"... 아 그래요?"

"여기 가디언들의 잔해만 봐도 대단한 전투가 벌어졌을 것 같지 않아? 어마어마하잖아..."



내가 맞다고 맞장구를 쳐 주자 프리토스는 한 가지 이야기를 더 꺼냈다.

"그거 알아? 이 하테노 요새에서 싸운 검사님 얘기?"

"몰라요."

하테노 요새에서 싸운 검사가 있다? 프리토스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100년 전에는 영걸이라 불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었대. 여기서 싸운 검사님도 그 영걸 중 한사람이었다더군."

그렇지. 나는 프리토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하이랄 왕에게서 영걸들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잠깐 들은 적이 있지. 그런데 그 검사가 영걸 중 한 사람이라는 건 처음 알았다. 영걸은 모두 4명이 아니었나? 흠.... 어쨌거나 프리토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다른 영걸들은 모두 대재앙으로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검사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소문으로 돌고 있어! 이곳 하테노 요새를 사수하면서 검사님도 여기서 돌아가셨다는 설과, 다가올 중요한 때를 대비하여 어디론가 옮겨져 잠들었다는 설이야."



"만약, 잠들었다는 게 사실이면 아직 살아있다는 거지?"

프리토스는 내게 그렇게 물었다. 아...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다 보니, 그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싸웠다는 검사는 바로 나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 그... 그렇겠죠..."



그러자 프리토스는 아주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검사님이 이 시대에 깨어나주면 좋겠다. 그럼 반드시 만나러 갈 텐데!"

"...그래요? 왜요?"



프리토스는 나의 질문에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대재앙 말야...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어.. 100년전의 일이고... 그저 역사일 뿐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목숨 걸고 싸워 준 사람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지금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거겠지."

프리토스는 잠시 턱에 손을 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검사님을 만날 수 있다면, 목숨 걸고 싸워줘서 고맙다고 말할 거야. 당신같은 검사가 있어서,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는 거라고. 사람들에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정말 고맙다고...."


잠시 그와 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니...의외였고 놀랄 일이었다. 지금의 시대 사람들은 절대 알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100년전, 나와 영걸들이 싸웠던 이야기는 무용담처럼 남아 이 시대를 돌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존재에 고마워하고 있다는 것....


마음 한 구석이 어딘가 뭉클해졌다. 프리토스는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너무 심각해졌나' 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고 다시 말했다.


"아,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 그 검사님은 진짜 무지막지한 몬스터나 가디언들과 혼자 싸웠다고 하더라고... 특히 혼자서, 방패 하나만 가지고도 가디언의 공격을 막는 동시에 역공격했다고 하지...?"

"오... 방패 하나로요? 사실이라면 대단했겠네요..."

"그렇겠지? 어떻게 막으면서 공격하는지 안다면, 가디언을 쳐부술 수 있을 거야. 그렇다면 하이랄 성 근처로도 여행할 수 있을 텐데..."


나는 프리토스의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하이랄 성 근처에도 가디언이 있나요?"

프리토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사래를 쳤다.

"워낙 위험하니까 다들 안 가려고 하지만, 나는 한번 가 봤거든. 근데, 어휴.. 지금도 활동하는 가디언이 있더라고. 겨우 도망쳤어."


그렇구나… 하이랄 성은 재앙 가논이 미약하나마 활동하고 있으니, 가디언도 있나 보군…. 하이랄 성에 간다면 고대 소재로 만든 무기를 많이 챙겨야 하는 건가…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프리토스가 작별 인사를 건넸다. 자신은 그 검사를 생각하며 하테노 요새를 좀 더 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와 작별한 후 나는 프리토스가 요새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계속 지켜봤다.


내가 바로 프리토스가 말한 그 검사라고 밝힐 수는 없었지만... 프리토스가 전해준 말에 용기가 생겼다. 내가 비록 방패 하나로 가디언을 역공격하는 기술을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지만.... 이전에 할 줄 알았다면, 시도해 보면 기억이 날지도 모른다!


프리토스와의 대화를 생각하며 나는 하테노 요새를 벗어났다. 4명의 영걸들이 누구인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지만, 그들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사람들이었다. 생각해보면, 4명의 영걸들과 내가 가논에게 맞서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단순히, 왕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만은 아닐 지 모른다.


그리고 이 곳이 검사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는 것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었다.... 하이랄 성에서 많이 떨어져 있는 이 곳... 100년 전에 나는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확실한 건 아니지만 나는, 어떻게든 고향인 하테노 마을을 지켜야겠다는 절박함이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나는 시커 스톤을 다시 열어서 지도를 확인했다. 카카리코 마을로 가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던 거다. 아직 내게는 임파가 말하는 '목숨을 걸 각오'가 서지 않았지만, 그렇게 한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까짓꺼, 한 번 사라졌던 목숨을 다시 받았으니 도전할 수 밖에. 나는 내가 이곳에서 왜 최후로 싸우게 되었는지... 그 열쇠를 꼭 풀고 싶었다.


가자, 다시 카카리코 마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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