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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랄과 재앙 가논의 악연

젤다의 전설 -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23)

by 김엘리


생각해보니, 지도를 보고 카카리코 마을을 찾아갈 필요는 없었다. 워프라는 편리한 기능을 그간 잊고 있었다! 나는 바로 카카리코 마을의 사당으로 워프했다.


다시 어두워진 밤. 임파의 집을 찾아가 계단을 단숨에 올랐다. 헉헉거리며 문을 왈칵 열고 들어가자, 임파는 내가 떠났던 이후 그 자리에서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듯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임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임파는 단호한 자세로 내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공주님께서 목숨을 걸고 그대에게 남기신 말.... 어설픈 각오를 한 이에겐 전할 수 없다네."

다시 마음을 다잡으라는 이야기겠지? 내가 임파를 바로 쳐다보자, 임파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 그대... 목숨을 걸 각오는 되었는가?"


임파가 나를 바라보는 눈길이 매서웠다. 그녀의 관록있는 눈을 바라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러자 임파는 그 무섭게 노려보던 시선을 바로 거두더니 활짝 웃었다. 기대하지 못한 반응이었지만, 임파도 나와 마찬가지로 나의 대답이 의외인 모양이었다.

"이거 놀랍군!"



그리고는 흐뭇한 눈빛으로 더 없이 다정하게 말했다.

"기억을 잃었어도... 그댄... 변하지 않았어... 하나도... "



"정의감 하나로 돌진하는 그 성실함은 옛날 그대로야.. 암... 그대의 결단력과 성실함은 늘 존경스러웠다네..."

임파가 그렇게 말하는 걸 바로 앞에서 보자니 ... 사실이었다 하더라도 낯부끄러웠다.


임파는 자신도 결심이 선 듯, 이제 이야기를 전할 때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내가 기억을 잃었으므로, 하이랄에 전해 내려오는 아주 오래 전 이야기부터 순서대로 알려 주겠다고 했다.



임파의 이야기를 요약하면, 하이랄 왕이 내게 해준 과거 이야기보다 좀 더 상세한 버전의 이야기였다.



하이랄 왕국은 대대로 가논이라는 재앙이 나타나 평화를 위협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용사의 혼을 가진 자와 하일리아 여신의 피를 이은, 성스러운 공주의 활약에 의해 평화를 되찾아 왔다고 했다.


재앙 가논이 세상에 등장할 때가 되면, 용사의 혼을 가진 자도 나타난다는 것... 재앙 가논이 나타나면 용사는 퇴마의 검으로 가논을 퇴치한다. 그리고 성스러운 봉인의 힘을 지닌 왕가의 공주가 가논을 봉인하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다 만년 전, 하이랄에 시커족이 꽃피운 문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왔다.



만년 전의 하이랄은 지금보다도 고도의 문명을 발전시킨 상태여서, 다양한 기술을 사용해 몬스터를 물리칠 줄 알았다고 했다. 그 기술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들은 바로 시커족들이었다고....보가드가 내게 말했던 것과 일치하는 이야기였다.



그 기술을 가진 자들은 하이랄의 용사와 공주를 도와 가논을 물리치기로 했다 한다. 그것은 미래에 대비하는 것으로써, 재앙이 부활하더라도 확실하게 봉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게 된 것이 4개의 신수였다. 신수는 거대한 짐승을 닮은 모습으로 만든 기계로 사람이 직접 조종할 수 있었다. 또 그들은 신수 외에도 가디언이라는 이름의 '자기 의지로 적과 싸우는' 기계 병사를 만들어냈다.



자기 의지로 적과 싸운다니... 만약, 재앙 가논이 가디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 아군에게 있어선 정말 든든한 존재였을 것이다. 하나 하나, 상당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병기니 말이다.


신수는 사람이 조종할 수 있었지만, 아무나 그 조종사가 될 수는 없었다고 한다. 특수한 능력을 타고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특별히 그러한 능력을 지닌 자를 찾아 선발하였고...



이렇게 재앙 가논에게 대항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갖추어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이후 재앙 가논은 예언처럼 부활하였고, 그 때마다 4개의 신수와 가디언은 용사와 공주를 도와 가논에게 대항했다고 한다.



가디언은 크기가 작았지만 많은 수로 용사 일행을 지켰고, 신수는 그 거대한 몸집으로 직접 재앙 가논을 공격하여 녀석의 힘을 빼앗았다. 그 다음엔 퇴마의 검을 지닌 용사가 재앙 가논에게 일격을 가했고, 성스러운 힘을 이어받은 왕가의 공주가 재앙 가논을 봉인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반복되었던 역사가, 100년 전 재앙 가논이 출현했을 때는 전설과 다르게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졌으니....



100년 전에도, 재앙 가논이 부활한다는 예언이 있었다. (이건 하이랄 왕에게서 들었던 것과 같고) 그래서 하이랄 왕가와 시커족은 이에 대비하여 만 년 전의 전설을 따라 준비를 서둘렀다. 4개 신수와 가디언을 발굴하였고, 이를 조종할 수 있는 사람도 하이랄의 각 지역을 대표하는 부족에서 한명씩 선발하였다. 모든 것이 만년 전처럼 준비되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재앙 가논이 깨어나자 상황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준비한다고 했지만, 재앙 가논을 얕본 결과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임파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리는 그놈을 얕보았어... 그런 결과가 올 줄은.... "


재앙 가논은 4신수와 가디언을 먼저 점령해버려, 조종자가 되었던 영걸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고.... 가디언도 사람들을 공격하기에 이르렀으니...



이러한 잘못이 다시는 반복되면 안 되리라... 그래서 젤다 공주는 재앙 가논에게 가기 전, 임파를 만나 이 말을 전하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 말은....



"네 신수를 해방하라" 라는 것이라고......

뭔가 목숨을 걸어야 들을 수 있는 말 치고, 간단하잖아? 과거의 오판을 뒤집을 수 있는 싸움의 수가 4신수라는 것인가? 약간 이해가 되지 않아서 네 신수를 해방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를 임파에게 물었다.



"사신수... 그것은 재앙 가논이 쓰러뜨린 네 명의 영걸이 조종한 고대 시커의 병기..."


임파는 4신수에 대해 설명해 주면서, 재앙 가논의 힘이 대단하기 때문에 4신수를 다시 되찾아 활용할 수 있어야 최종적으로 내가 재앙 가논과 맞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4신수의 도움이 없다는 건 생각할 수 없다며 한숨을 쉬는 임파의 목소리는 꽤 잠겨 있었다.



"신수들의 힘 없이 가논에게 맞서기란 더없이 어려운 일... "

나는 영걸들이 목숨을 잃은 후 신수들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임파에게 질문을 했다.

"지금 신수는 어떤 상태인가요?"

"지금까지 가논에 점령당한 채로 있다네...그것 때문에, 각 부족에서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곳도 있는 모양이야... "



그리고 임파는 굳은 표정으로 다시 강조했다.

"100년 전 가논에게 빼앗긴 신수에 다시 올라타야 해.. 능력이 되는 자만이 신수를 조종할 수 있어... 아무나 신수에 탈 수 없으니 링크, 그걸 그대가 해내야 할 걸세... "



그제서야 나는 왜 목숨을 각오하고 젤다 공주의 전언을 들어야 하는지 깨달았다. 신수를 가논에게 빼았긴 상태라면, 그 안에는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일 거다. 즉 그 말은 신수에 타는 것 조차도 위험한 일... 그 위험을 무릅쓰고 신수에게 가야 하는 것이었다. 임파는 시커 스톤의 지도를 보여달라 하더니, 각 신수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신수에 타기 위해서는 단서를 얻어야 할 거네... 각 신수들의 단서는 하이랄 각지에 사는 네 부족에게 있을 터..."



지도를 열어보자, 아직 지도가 밝혀지지 않은 4곳에 목표 표기가 빛나고 있었다.

"여기 4 지점이 각 부족이 있는 곳인가요...?"

"그렇다네.. 링크. 시커 스톤의 빛이 그대를 이끌어 줄 게야.. 그곳에 있는 부족장을 만나고 오게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커 스톤을 다시 허리에 찼다. 나의 그런 모습을 바라본 임파는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음... 하지만... 그 시커 스톤은 아직 완전하지 못해... 젤다님이 남기신 그것은 길잡이가 되고... 그리고 그대의 기억 그 자체이니... 활용하려면 시커 스톤을 손봐야 할 터인데...."

"... 이것이 나의 기억 그 자체라고요?"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내가 묻자, 임파는 나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일러 주었다.

"그대는 젤다님의 호위 기사... 젤다님은 시커 스톤을 가지고 다니며 연구를 하셨다네... 그 때 젤다님이 어디를 가시든, 그대도 함께 하였지. 그러니 젤다님과 함께 한 그 기록이 시커 스톤 어딘가에 남아 있을 텐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시커 스톤이 손상된 것이야... "



뭐라고? 이 시커 스톤은 젤다 공주가 썼던 것이고, 시커 스톤 안에 그 자취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을 지도 모른다고? 뭔가 망치같은 것으로 머리를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그럼 이 시커 스톤을 잘 살피면 내 기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임파의 설명에 따르면, 시커 스톤에 내재된 기능 중 많은 정보는, 이전에 공주님과 함께하면서 공주님이 기록했거나 혹은 내가 관여하여 기록된 것일 수 있다 하였다. 예를 들어 새로 보는 식물이나 소재에 대한 정보는 젤다 공주님이 열심히 연구하고 조사해서 알아낸 내용이며, 무기에 대한 정보는 아무래도 각종 무기를 손쉽게 다루던 내가 파악한 정보일 것이라는 거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이기를, 하테노 마을의 고대 연구소라면 힘이 되어 줄 거라고 했다.



임파의 말을 듣고 보니, 고대 연구소 소장이 했던 말이 기억났다. 시커 스톤을 고치려면 임파님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했었지. 그 말은, 신수에 올라탈 것인지 나의 각오를 확인했어야 한다는 이야기와도 통하는 것...


"서둘러 하테노 마을의 고대 연구소로 향하게나."

임파는 내게 서둘러 하테노 마을로 가라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바로 뒤돌아 문을 나서려는데, 집으로 들어오려는 파야와 딱 마주쳤다.



파야는 여전히 수줍어하고 있었지만, 지난번처럼 얼굴을 가리진 않았다. 두번째 보는 거라고 조금 익숙해졌을까? 잘 있었냐고 내가 묻자 그녀는 깜짝 놀라며 '네...' 하고 작게 대답했다. 내가 나가려고 하자 밤인데 가시냐며, 위험하니 조심하라는 말을 해 주었다.



결심한 대로 임파에게 말하고 나니 뭔가 그 다음에 열릴 문이 내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보다 시커 스톤이 내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는 걸 실감했고, 이것이 결국 젤다 공주와, 예전의 영걸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알게 해 주는 열쇠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다시 하테노 마을로 가자! 나는 휘적휘적, 힘차게 걸음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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