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67)
O월 OO일
고론 시티를 뒤로 하고, 데스마운틴을 돌아 내려오면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광물을 캤다. 반짝반짝 다양한 색깔로 빛나는 돌을 보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광물은 직접적인 루피벌이의 수단이 되니까... 그런 것도 있겠지만, 뭐든 캐고 보면 뭐라도 나오는 재미가 있어서 대체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다다르기 힘든 곳에 광물 바위가 많이 모여 있기 때문에, 나는 아예 등산 복장으로 갈아입고 본격적으로 채굴을 시작했다. 화산탄이 떨어질 일이 없는 안전한 광부 생활! 우연히 구했던 착암봉까지 갖추고 여기저기 쿵쿵 부수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더니, 대체 몇 밤이나 지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산 위에서 나를 멈추지 못하게 만든 것은 또 있었다. 그건 바로 코로그 찾기. 코로그를 발견해서 얻는 코로그 열매는 언젠가 보쿠린을 만난다면, 무기 주머니나 활, 방패 주머니를 늘리기에 소중히 쓰이기 때문에 코로그 열매 얻기도 대충 지나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코로그 찾기를 하다가 기억의 장소를 우연히 마주쳤다. 데스마운틴 중턱 이상을 올라, 어느 평평한 구릉에 코로그 돌 놓기 퍼즐이 있기에 신이 나서 바위를 집어 들고 놓으려 하는데, 코로그 퍼즐 뒤편에 기억의 빛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바위를 놓아 코로그 열매를 하나 받은 뒤, 나는 바로 기억의 빛이 있는 장소로 뛰어갔다. 이 높은 데스마운틴에도 기억의 빛이 있다니... 젤다 공주와 나, 대체 안 가본 곳이 없었던 거구나?
기억의 빛이 있는 자리는 경치 감상을 하기에 아주 좋은 장소였다. 산중턱 위 편인지라 그런지 하이랄 성도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알 수 없는 삼림에 꽃이 핀 어마어마한 나무도 있는 것 같고...
주변 경치를 둘러보다 나는 시커 스톤을 켰다. 시커 스톤 안에 있는 사진을 열어 실제 장소와 대조해 보기 위해서였다.
사진에도 지금의 장소와 비슷한 풍경이 담겼다. 사진을 찍은 때는 저녁 즈음인 건지 노을이 슬쩍 지려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아침이니 빛이 조금 다르다.
하지만 멀리 내려다보이는 늪과 오른쪽의 숲, 왼쪽의 하이랄 성... 위치가 똑같으니 이 장소가 맞았다. 지금 늪에는 시커 타워가 우뚝 서 있다는 점이 다른 점이랄까... 100년 전에도 저 늪에는 뭔가... 무너져 있는 폐허가 자리 잡았던 것 같기도 하고...
사진과 장소를 대조하다가, 그래... 이곳에서 전투를 했었다는 기억이 퍼뜩 떠올랐다. 다르케르를 만나기 위해 데스마운틴에 왔다가... 너무 뜨거운 지역을 피해 산을 오르던 우리 앞에... 어마어마한... 수의 몬스터가 나타났었지...
떠오르는 기억을 위해 나는 눈을 감았다.
내 눈앞에 보이는 기억은, 그 전투가 끝난 뒤였던 것 같다. 첫눈에 보이는 모습이... 헉... 라이넬이 입을 벌리고 뻗어 있는 모습... 그 뒤에는 보코블린이.... 깜짝 놀라고 있는데 젤다 공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심각한 상처는... 아닌 것 같지만...."
몬스터의 시체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끝에, 젤다 공주가 나를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이 보였다. 젤다 공주의 다정한 목소리... 그녀, 이렇게 나를 부드럽게 대한 적도 있었구나....
젤다 공주는 상처가 있을 지 모르는 곳을 찾아내겠다는 듯, 내 앞 머리카락을 살짝 어루만졌다가, 이리저리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조금은 안심했다는 듯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내 얼굴에 스쳐지나가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젤다 공주와 나의 모습이 멀리 보여서 … 확실히 알 수 없지만 지금의 나라면… 돌처럼 굳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 젤다 공주를 여자로 느끼는 걸 티 낼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래도 오열하던 젤다 공주를 안아주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젤다 공주를 생각하면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다행이라고 긴장을 풀었던 젤다 공주는 이내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요즘 너무 무리를 많이 하고 계세요."
응? 무리를 한다고? 누가?.... 내가?
젤다 공주는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아무리.. 당신이라도 불사신은 아니라고요."
젤다 공주는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다. 이전 기억에서는 알 수 없었던 젤다 공주의 부드럽고 다정한 태도… 나를 걱정해주다니!
걱정은 고맙고 기뻤다… 100년 전의 내 감정은 어땠을까? 보통은 기억을 이렇게 떠올리게 되면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면서 감정도 떠올릴 수 있었는데… 이번 기억은 낯설었다. 내 기억이 아닌 걸까….? 아닌데… 분명 이 곳에서 몬스터와 싸웠던 기억은 나는데…
어쨌든, 젤다 공주의 말에 왠지 위로받은 기분이었다. 퇴마의 검을 든 영웅…그래서 한 치의 실수도 스스로 허용하기 힘들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나를 바라보던 따가웠던 시선들…
그런 모든 외부의 소리없는 공격을, 젤다 공주의 단 한마디가 막아주는 느낌이었다…불사신이 아니라는 말이, 참 고마웠다.
그나저나... 젤다 공주와 내가 내려다보고 있는 풍경은... 실로 오싹했다. 우리 주변에 다른 군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데... 설마... 이 수많은 몬스터를 나 혼자 상대했다는 거야??? 헉.... 100년 전의 나는... 진짜 장난이 아닌 실력자였나 보네.... 아… 언제쯤 저 수준에 도달하지?
젤다 공주는 내가 쓰러뜨렸던 몬스터의 모습을 보며 말을 이었다.
"최근,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가 늘고 있어요. 저런 강력한 종족까지 섞여 있다고......"
강력한 종족... 그래. 대체 우리 앞에 쓰러져 있는 하얀 갈기의 라이넬이 몇 마리 인 것인지...
나는 젤다 공주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역시 이건 재앙 부활의 징조라고 생각해야 할까요......"
젤다 공주의 깊은 초록 눈이 떨리는 것이 보였다. 젤다 공주는 주변의 기대만큼 능력이 나타나지 않아 무능하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을 터지만, 지금 이 기억을 보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징조를 이렇게나 섬세하게 느끼다니. 그것도 분명, 젤다 공주의 능력이었을 터.
100년 전, 젤다 공주는 컴플렉스로 나를 멀리했지만 이번 기억으로 나는 알 수 있었다. 이전의 나도 젤다 공주가 각성하지 못했다고 해서 무능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을 것이다.
젤다 공주는 언제나 노력하고 있었다… 자신의 의무에 대한 무게를 버리려고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밤늦게까지 책을 읽어 항상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던, 젤다 공주의 방… 하이랄 성도 생각났다…!
젤다 공주는 이내 무언가를 결심한 듯, 주먹을 쥐더니 바지에 묻은 흙을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자, 서둘러요."
젤다 공주는 이렇게 있을 수는 없다며 나를 재촉하고는 자신의 결심을 이야기했다.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해요."
나는 그녀의 말에 몸을 일으켜 젤다 공주를 따라 내려갔다. 그것이 이번 기억의 끝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데스마운틴 아래로 펼쳐진 하이랄 왕국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젤다 공주는 재앙에 대비한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었지. 그 만반의 준비란 무엇이었을까? 프루아의 말에 따르면 아무리 유물을 조사하고 알아보아도 시커 스톤의 기능을 당시에 깨울 수는 없었다고 했었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와 땀에 젖은 내 두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이랄을 비추는 태양이 다시 떠올라 긴 그림자를 만들고 있었다. 젤다 공주의 눈빛과 목소리가 어른거렸다. 처음에 나를 경계하고, 따라오지 말라며 소리치던 모습... 그리고 고민을 털어놓고 슬퍼하거나 침울해하던 공주의 표정... 기도를 해도 끝이 없다며 힘들어하던 공주... 눈물을 흘리며 내게 안겼던 공주... 그리고 내 상처를 살피며 다정히 나를 챙겼던 젤다...
우리 사이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구나. 젤다 공주가 내게 열등감을 느끼고 멀리할 때... 그리고 지금의 다정한 모습을 보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내게 다정해지는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정말 궁금했지만, 결과가 나오는 소설책장을 넘기는 게 아니니, 나는 그저 다음의 기억을 찾을 수 밖에… (하지만 진짜 궁금하다!! )
그리고 하얀 갈기의 라이넬을 세 마리나 쓰러뜨린 건 어떻게 한 건지도 참 궁금하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아! 무릎을 쳤다. 설마, 퇴마의 검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땀에 젖은 두건을 벗고, 다시 후드로 복장을 바꾸었다. 오늘은 우연히 이렇게 기억을 찾았지만, 다음 기억은 어떻게 될까… 마지막 마을을 찾기 위해선 어디로 가야 할까 생각했다. 이제 이 산을 내려가면 다시 하이랄 성 방향이다. 아직 하이랄 성으로 갈 수는 없으니, 하이랄 성 북쪽의 길을 따라 반대편으로 가야 하려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 발은 공중을 향해 도약했고, 자연스럽게 내 손과 팔은 패러세일을 펼쳐 들었다. 하이랄 왕국을 발 아래 내려다보며 활강하는 기분… 젤다 공주는 알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 안착했는데... 고도가 낮아지니 안개로 둘러싸인 섬 위에 어마어마하게 핀 벚꽃이 눈에 들어왔다. 저렇게 큰 벚꽃 군락지가 있다는 것은... 뭘까?
시커 스톤의 지도를 켜서 보니, 삼림의 탑 바로 위편에 '미로숲'이라는 지명이 보였다. 앗? 설마... 브루도가 말한 미로숲이 바로 저긴가?
브루도가 퇴마의 검이 있다고 했던 미로숲이 저곳이라면... 저 숲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운명과도 같은 마스터 소드… 반드시 찾아야 한다. 반드시....! 나는 다시 패러세일을 펼쳐 미로숲 방면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