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68)
ㅁ월 ㅁㅁ일
근처 마굿간에서 좀 쉬었다 미로숲으로 출발했다. 숲에 점점 가까워지니 물기를 머금은 바람이 어디선가 불어와 온몸에 한기가 돌았다.
숲길 안으로 조금씩 들어설 때 마다 안개가 조금씩 끼기 시작했는데, 커다란 바위가 서 있는 협곡으로 들어가자 안개가 더 짙어졌다. 안개가 점점 끼니 이 길이 아닌가 싶었다. 이리저리 고민하다 나는 협곡의 오른쪽 바위 언덕으로 올라갔다. 숲의 위쪽에서 보면 길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인데, 영락없는 헛수고였다.
안개는 미로숲 입구 주변을 마치 커튼처럼 둘러싸고 있어서, 가까이 다가갈수록 바로 앞의 시야를 겹겹이 차단시키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나의 움직임을 감지하고서, 모습을 숨기려고 장막을 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디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탐색하는데, 시커 스톤의 알림이 떴다. '미로숲'...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는 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눈 앞의 안개 구름 아래로 뛰었다. 하지만…
갑자기 눈 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다리에 힘이 풀려버렸다. 기분나쁘게도, 누군가 엄청 비웃는 것 같은 히죽거리는 웃음소리가 울려퍼졌다. 기분나쁜 웃음소리만 제외하면, 이건 탑이나 사당으로 워프할 때 느껴지는 감각과 비슷했다.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것 같으면서도 눈앞의 풍경이 하얗게 변하며 모든 것이 없어져버리는 것 같은... 세상에서 내가 지워지는 것 같은 느낌? 워프 지점이 있나?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어리둥절했던 내 눈 앞에 새로운 풍경이 나타났다. 그건 지도상,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지점... 오래된 돌 성벽의 잔해가 마치 문처럼 서 있는 곳이었다.
일단 앞에 있는 아치형 문을 통과하여 숲 안으로 더 들어갔다. 안개는 겹겹이 쳐져 있어 시야가 한정된 가운데, 잎이 모두 떨어진 나무들이 기괴하게 서 있어 길을 특정하기 어려웠다. 지도를 보면서, 숲의 중심 쪽으로 조금씩 나아가는데 어느 순간, 그 기분나쁜 웃음소리가 들리고 다시 다리에 힘이 풀리며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
정신이 다시 들고 보니 아까 숲 입구였던 돌문 앞에 서 있는 나...
그제서야 왜 이 숲을 미로숲이라 하는지 깨달았다. 미로처럼 복잡해서가 아니라, 안개가 이 숲을 보호하고 있어 제대로 된 길을 찾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으므로 미로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다시 돌문 안으로 들어가 아까와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으나, 시야가 하얗게 변하며 숲 입구로 돌려보내졌다. 이쯤되니 약간 짜증도 나면서 초조해졌다. 대체 어떻게 이 숲을 통과해야 하는 거지? 분명 방법은 있을 터인데...
뭔가 이 숲을 지나가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 숲 입구의 문 주변을 뒤져보았다. 특별한 지도가 들어있는 보물 상자가 숨겨져 있을지도 몰라! 그런 생각에 시커 스톤의 자석 기능을 켜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다 돌문 너머에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횃대에 눈길이 멈추었다.
'가만... 이 불은 누가 붙여 놓은 거지?'
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바람이 이리저리 부는 것 같은데... 불길은 일정하게 한쪽으로만 올라가고 있었다. 불꽃이 올라가는 방향을 쳐다보니 그 쪽 방향에 또 다른 횃대가 있었다. 횃대는 왼쪽엔 없고 오른쪽에만 쭉 늘어서 있다. 혹시? 횃불이 놓여 있는 쪽으로 들어가야 하나?
조심조심... 또 안개가 시야를 가리는 건 아닐까 긴장하면서 횃불이 타고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시커 스톤의 지도를 확인해보니 횃불이 놓인 쪽으로 갈 수록 숲 중심부로 이동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횃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 게 정답이다 싶어 발걸음을 빨리 재촉해 다음 횃대로 갔다. 몇 개의 횃대를 지나치고 나니, 다음 횃불이 보이지 않는 지점에 왔다. 어디에 있는 거지? 앞, 옆, 뒤를 한바퀴 제자리돌기를 하니, 전혀 다른 방향에 떨어진 곳에서 횃불이 타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횃불을 찾아 숲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주 커다란 고목이 오른쪽에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 나무는 몸통이 푹 파여 있었는데, 파인 모양을 좀 멀리서 바라보니 기분나쁘게 웃는 입모양 같기도 했다. 그리고 특이하게 이 지점에는 횃대가 2개 있었다. 둘 다 일정한 방향으로 불꽃이 날리고 있어 그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횃불을 바라보면서 주변에 또 다른 횃대가 없는지 조심스레 살폈다. 하지만 그 2개 외에 또 다른 횃대는 발견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방향에 있을까... 생각하면서 지도를 신경쓰고, 앞으로 나아갔지만 안개가 갑자기 내 몸을 감싸듯 덤비는 기분이 들어 섬뜩했다! 다시 횃불이 있는 쪽으로 돌아오자 안개가 물러났다. 정말... 음습한 숲이다.
다음 길을 어떻게 찾아야 하지? 방법이 있겠지? 천천히 걸어 횃대 주변을 돌아보는데, 불을 붙일 수 있는 횃불 막대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 혹시, 이 막대에 불을 붙여서 가야 하는 걸까?
무기 주머니에 무기가 가득 차서 횃대를 줏을 수 없었기에, 가장 쓸모 없어 보이는 무기를 버리고 막대에 불을 붙여 들었다. 2개의 서 있는 횃대의 불꽃 방향과 똑같이 불꽃이 일어 오르는 것을 확인하고, 그대로 불꽃이 흩어지는 방향을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숲은 아까보다 훨씬 음산하고 기괴한 나무들로 가득찼다. 굵은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짙게 덤벼든다. 헉, 이 방향이 아닌가?
왔던 길로 다시 돌아 물러나 멈춰 서서 횃불의 불꽃 방향을 확인했더니, 내가 들어갔던 쪽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불꽃이 흩어지고 있었다. 이거, 그냥 막 뛰어갈 게 아니라 불꽃 방향을 계속 확인하면서 천천히 가야겠구나...
한기가 바짝 올라 숲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한번의 실수로 다시 숲 입구로 돌려보내지는 건 싫었기에 인내심을 갖고 조금씩 움직였다.
그렇게 조금씩 이동해서 나무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지역을 벗어나자 숲 입구처럼 보이는 바위 사이의 길이 눈에 들어왔다. 불꽃의 방향은 그 길로 들어가라고 속삭이는 듯 했다. 속도를 내어서 바위 사이 길로 들어서자 또 다른 숲길이 나왔는데, 햇살이 조금씩 비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속이 텅 빈 나무가 쓰러져 있는 길이 보였다. 그 방향으로 이동하니 갑자기 안개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횃불에 붙은 불을 끄고, 횃대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후 햇살이 비치는 쪽으로 뛰어갔다.
따사로운 햇살이 나무 사이사이로 비쳐 들어와 나무 위쪽을 바라보았다. 방금까지도 나뭇잎이라곤 하나 달려 있지 않던 고목들과는 다르게, 나무들은 빽빽한 잎을 달고 서로 자랑하듯이 촘촘이 서 있었다.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웠던 아까와는 정 반대로 부드러운 바람과 햇빛이 내 후드를 간질였다. 시커 스톤에는 '코로그의 숲' 이라는 알림이 떴다.
아, 코로그의 숲? 여기... 보쿠린이 돌아가야 한다고 했던 그곳 아냐?
그러고 보니, 무성한 수풀 사이에 뭔가 움직이는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코로그들이었다. 모두들 말없이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아 가까이 다가갔더니 쏙 숨어버렸다. 가만히 서서 바라보고 바라보니,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면서도 나를 흘끔흘끔 보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돌아보면 숨어버렸다. 하지만 숲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 마주친 코로그들은 내가 바라본다고 모습을 숨기지는 않았다. 굵은 나무들이 뻗어 있는 숲길 사이에는 콩깍지 모양의 전등도 켜져 있었다. 온화하고 아름다운 숲이었다. 한참을 감탄하며 조금씩 걸어 숲 안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보쿠린의 모습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보쿠린에게 뛰어갔다. 보쿠린은 멍하니 서 있는 것 같다가, 내가 인기척을 내자 나를 바라보고는 빨간 마라카스를 번쩍 들어 보였다.
"뀨웅~ 왜 말이 없어? 나 기억 안 나? 코로그의 숲 음악가 보쿠린!"
"기억 나... 안녕?"
기억 안 나냐고 호들갑을 떨기에 인사를 건넸더니 감탄을 내뱉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나저나 용케 미로숲을 빠져나와 여기까지 왔구나..."
그리고 기대했던 대로, 코로그 열매를 모아왔느냐 물어왔다.
"그때 한 약속대로 코로그 열매를 모아 갖고 와 주었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보쿠린은 매우 신나서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 코로그 열매를 주면 보답으로 주머니를 크게 해 줄게, 어때?"
"좋아. 무기 주머니를 크게 해 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코로그 열매를 40개 모았는데, 보쿠린에게 주면서 무기 주머니, 활 주머니 등등을 늘렸더니 40개는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보쿠린은 처음에 1개씩만 요구하더니 점점 코로그 열매를 더 많이 달라고 했다. 코로그가 있을 것 같은 곳을 보면, 되도록 코로그를 찾으려고 애쓰긴 했지만 가끔은 귀찮아서 내버려 둔 적도 있는데...무기와 활, 방패를 원활히 수급하려면 코로그 찾기도 대충 하면 안 되겠구나... 깨달음이 왔다.
주머니를 최대한 늘릴 수 있는 데까지 늘리고 나자 보쿠린은 또 와 달라고 귀엽게 인사했다. 보쿠린과 헤어지고 다시 숲을 돌아보는데, 커다란 비석 같은 것이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눈부신 햇살이 유난히 많이 비쳐 들어오는 장소가 바로 그 큰 비석 옆에 있었는데, 가운데에 무언가 반짝하고 빛났다. 뭐지....?
좀 더 그 지점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거기에는... 내가 찾던 것이 바로 있었다. 평평하고 널찍한 삼각 모양의 바닥 위에, 역삼각형의 돌이 솟아 있고, 그 가운데에 검이 하나 꽂혀 있었다. 그것은 100년 전... 내가 항상 지니고 다녔다는 그 퇴마의 검이 틀림없었다. 햇살을 가득 받아 더욱 반짝거리는 듯한, 지금까지 내가 찾아내고 발견한 그 어떤 무기보다도 월등한 기량을 지닌 것이 한 눈에 들어오는...
나는 어느 새 검 앞에 다가가 칼자루의 손잡이에 손을 대었다. 그런데... 갑자기 .... 걷잡을 수 없는 기억들이 떠올랐다.
젤다 공주가 내 눈앞에서 시커 스톤을 들고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의 금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 햇살이 가득한 가운데 고요한 공주 꽃이 피어 있는 걸 지켜보던 순간에 겹쳐 의식장 옛터에서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기사 임명의 말을 듣던 내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어딘가를 바라보며 저녁 노을 아래 서 있던 젤다 공주...를 바라보던 ...나... 그 기억들 사이 젤다 공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링크...... 뒤를 부탁합니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재앙 가논이 하이랄 성을 휘감으며 떠오르는데 폭주한 가디언이 붉은 빛을 내며 시내를 파괴하던 순간이 겹쳤다. 그리고 젤다 공주를 뒤에 보호하면서 일어서지 못하는... 내 모습도... 이건... 뭐지? 무슨 기억인거지?
"당신만이 마지막 희망...... 부디 ......"
두려웠다. 무서웠다. 칼의 손잡이를 더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손잡이에서 두 손이 떨어지자 그 기억들은 ...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 이 검도... 시커 스톤의 사진들처럼... 나의 과거 기억과 연결되는 걸까? 숨이 막혀와 나는 다시 심호흡했다. 젤다 공주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귀에 다시 들리는 듯 했다. 처음 시커 타워가 기동할 때, 그 위에서 들었던 그녀의 목소리...
그 때, 내 앞에 있는 거대한 나무에서 소리가 났다. 마치 잠을 깨는 노인의 목소리 같달까....
그리고 놀랍게도, 그 나무의 일부분이 움직이더니 말을 시작했다!
"... 잠깐 졸았던 모양이구먼"
왠지 나무에 눈이 있다면, 왠지 그쪽이 움직일 것 같은 부분이 씰룩거리더니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자네는......"
이 나무, 나를 알고 있는 건가?
잠시 사이를 두고, 그 고목은 탄식했다.
"드디어 나타났는가......"
세월이 얼마나 흘러야 이렇게 큰 나무가 되는 걸까. 내가 나무를 다시 올려다보자, 그 고목은 이어서 말을 시작했다.
"100년의 세월 동안 자네가 이곳에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네. 기다리다가 적잖이 지쳤네만......"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그 고목은 잠시 사이를 두더니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역시 기억하지 못하나 보군그래."
"나는 이 하이랄을 지켜보고 있는 자, 다른 이로부터 데크나무라 불리고 있는 노목이라네......"
그 고목이 자기 소개를 이어가자, 갑자기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다. 데크나무... 데크나무! 그래... 데크나무가 있는 코로그의 숲! 이곳에서 처음 ... 마스터 소드를 뽑았던 그 옛날이 생각났다. 고론 시티에서 들었던 대로, 이 검은 미로숲 안에 있었구나... 그런데 어째서 이 검이 이 숲에 있는 것일까? 내가 마지막으로 쓰러진 곳이 혹시 여기인가?
데크나무는 이어서 마스터 소드에 대해 내게 말해 주었다.
"그것은 태고의 여신이 만들어낸 무기...... 선택받은 기사만이 지닐 수 있으며 재앙을 물리칠 수 있다는 퇴마의 검..."
"그리고 100년 전, 그것을 지니고 있던 자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네였네..."
데크나무의 이야기에 어느 새 코로그들이 내가 서 있는 주위에 모여들었다. 데크나무의 이야기를 듣게 되니 그동안 퇴마의 검이라는 걸 내가 들고 다녔었다는 사실조차 의심스러웠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그가 확인을 해 주다니... 놀랍기도 하고 얼떨떨하기도 했다.
그러나 데크나무는, 뒤이어 의외의 말을 했다.
"하지만 조심하게나...."
"그 검을 가지려는 자는 검에게 시험당할 걸세...... 지금의 자네가 과연 그것을 뽑을 수 있을지 어쩔지......"
뭐라고? 나는 귀를 의심했다. 100년 전에는 이 검이 나를 선택했다면,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야?
데크나무의 설명은 계속 이어졌다.
"만일 자네가 아직 쇠약한 몸으로 뽑으려 한다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네..."
데크나무의 이야기에, 주변에 모여든 코로그들은 몸으로 연기를 해 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나를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데크나무는 나를 내려다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
"조심하도록 하게나......"
갑자기 주변이 조용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멎은 것 같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코로그들이 더 몰려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칼 손잡이에 다시 손을 댈 것인가를 기대하는 눈치였다.
나는 데크나무를 다시 올려다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한마디 운을 뗐다.
"이 검을 뽑고 싶다면 자네의 진정한 체력으로 도전해야만 하네. 과연 지금의 자네가 뽑을 수 있을지 내 지켜보도록 하겠네."
'나의... 진정한 체력....?'
가짜 체력도 있나? 수수께끼같은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는 내 앞에 꽂혀 있는 퇴마의 검을 다시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검은 도전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잡이를 양 손을 꽉 잡고 다시 뽑아올리는 건 어려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이 나를 시험한다니... 긴장이 되었다. 아직 내가 쇠약한 상태라면, 이 검을 뽑다가는 젤다 공주를 구하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
그러자 아직 사신수를 다 탈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사신수는 다 찾고 검을 뽑으라는 소리가 아닐까? 쇠약하지 않은 정도는 대체 어느 정도인 것일까?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직은 아닌 것 같았다. 나의 기사로써의 능력에 내가 만족한 경우가 있었던가? ...아라이소 해변의 전투? 떠올려 보면 그 정도인 것 같다. 신수를 탈환하면서 커스 가논들과 싸웠지만, 돌이켜보면 매번 우위를 점하면서 싸운 건 아니었다. 아직도 체력은 부족하고 - 충분히 공격을 감행하기에 스테미나는 턱없이 부족하다 - 100년 전의 나는 하얀 갈기의 라이넬 세 마리를 혼자서 상대했건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이곳에 오기 전, 데스마운틴에서 젤다 공주와의 기억을 되찾았던 일을 상기해보니 분명해졌다. 아직 나는 100년 전, 마스터 소드가 나를 인정했던 그 수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
왠지 씁쓸하고, 뭔가 패배한 기분이 들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마지막 네 번째 신수를 탈환한다면 그때는... 그때는 당당하게 뽑을 수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마음먹고 검이 꽂혀 있는 장소에서 물러났다. 데크나무는 그런 나를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데크나무 앞에서 물러나 숲을 돌아보는데, 특이하게도 다른 코로그보다 몸이 크고 머리에는 버섯이 솟아있는 코로그가 눈에 띄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코로그가 조그맣게 속삭이고 있었다.
'시련을 받으치오~~'
"시련?"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밖으로 나왔는데, 그 코로그가 갑자기 깜짝 놀라며 내게 되물었다.
"치오...? 그대...... 설마..............!"
그러더니 펄쩍 뛰며 신나서 말을 했다.
"용사님이치오! 용사님이 왔치오! 갑자기 머리의 버섯이 자라 무슨 일인가 싶었치오... 그대가 와서 그랬치오!"
용사님이라니... 사람을 앞에 두고 바로 용사님이라 불러버리다니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자, 이 코로그는 대뜸 엉뚱한 말을 했다.
"......거짓말이치오."
용사라고 부른 게 거짓말이라는 건지, 갑자기 머리에 버섯이 솟은 것이 거짓말이라는 건지... 헷갈리지만, 이 코로그의 말장난 같은 말에 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 코로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이랄의 용사님인 그대에게 모두가 시련을 준비했치오! 우리가 준비한 엄격~~~~~~한 시련을 극복한다면! 마스터 소드 따위 식은 죽 먹기처럼 쉽게 뽑아 낼 수 있게 될...지도 모르치오!"
아하... 코로그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나의 생명력과 체력이 부족하다면 이곳 숲에 있는 시련(아마도 사당 정복이겠지)을 통과하여 생명력이나 체력을 늘리란 이야기.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자신을 간단히 소개하며 비장의 시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코로그의 숲 장로인 나는 비장의 시련을 낼 것이치오! 그 이름도 코로그 시련! 어떠치오? 도전하겠치오?"
하지만 지금 이곳의 시련을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나는 검을 나중에 뽑을 것이니. 그래서 '지금은 좀...' 이라고 대답하자, 그 장로라는 코로그는 이렇게 말했다.
"경솔히 떠맡지 않는 그대... 신중하치오!"
그리고는 코로그의 시련에 대해 더 설명해 주었다.
"코로그 시련이란! 코로그의 숲에 잠든 사당을 순회하면 제 몫을 해내게 된다는 수행이치오! 전설의 용사님을 따라 코로그의 모두가 함께하는 의식이치오!"
그리고는 모두 재패해 훌륭한 용사가 되기 위함이라며, 사명에 불타올라도 좋지만 욕망에 물들어도 좋다며 모두 끝내면 호화 상품이 기다리고 있다는 미끼를 던졌다.
"모두가... 함께 하는 의식?"
"나도 보쿠린도 이놈도 저놈도 데크나무님도 했치오!"
"에, 정말?"
조금 놀라서 물었더니 제 발이 저렸는지, 장로는 솔직히 대답했다.
".... 마지막에 한 말은 거짓말이치오"
웃음이 터졌다. 말끝마다 거짓말을 하는 이 코로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하지만 사당의 시련이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것이었다. 지도로 봐서도 꽤 넓은 코로그의 숲에 사당 하나 없다면 말이 되지는 않을 테니까.
자신을 치오라 소개하며 너스레를 떠는 이 코로그 장로에게, 나는 다시 말을 걸어 시련에 도전해보겠다고 했다. 어차피 사당을 정복해야 한다면 지금 와서 하나 나중에 도전하나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았기에.
그렇게 코로그 시련에 도전하게 된 나는, 총 3개의 사당을 찾아 코로그들이 제시하는 시련의 조건을 달성했다. 그러니까 사당에서 극복의 증표를 얻으려면 치오가 설명했던 것 처럼, 코로그들의 준비한 시련의 방법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첫번째 시련은 '남서쪽에 있는 [조종하는 힘의 시련]', 두번째 시련은 '북서쪽에 있는 [시작의 시련]', 세번째는 '동쪽에 있는 [타지 않는 시련]' 이었다. 시련 이름을 들었을 때는 아리송했지만, 각각의 사당을 찾으면서 시련을 돌파해야 하는 조건을 생각해 보면 나름 이유가 있는 이름들이었다.
조종하는 시련에서는 시커 스톤의 능력을 활용해서 길을 찾아가야 했다. 시작의 시련에서는 소리를 내지 않고 코로그를 미행해야 했다. 세 개의 사당 찾기 중에서 '타지 않는 시련'이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다. 제한된 무기만 써야 하는데 너무 많이 쓰다가는 내구도가 닳아 무기가 파괴되고, 그러면 시련을 다시 도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세 개의 사당을 모두 찾고 나서 돌아와 치오에게 말을 걸었다.
"호우~! 굉장하치오~! 멋있치오~! 그대가 마스터 소드를 뽑는 것도 시간 문제겠치오. 뽑는 모습을 얼른 보여 주치오!"
세 시련이 그렇게 어려웠냐고 한다면, 할만 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치오의 입장에서는 대단한 건지, 어쨌든 쓸데 없는 호들갑을 떨긴 해도 멋있다 해 주니 기분은 좋았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냥 서 있으려니 치오가 내 얼굴의 표정을 읽었다며 한마디 건넨다.
"전부 순회하고 왔으니 뭐라도 달라는 것이치오?"
뭐... 왠지 나를 들킨 것 같아 쑥쓰러웠다. 코로그들이 의외로 나를 너무 잘 파악하고 있는 것 아냐? 치오가 비장의 물건을 준다며 뭔가 불쑥 건네기에 받았더니, 맥스트러플 3개였다.
맥스트러플... 좋긴 한데, 조금 아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내 생각이 또 표정에 나타났는지 치오는 '사실...' 이라 운을 떼며 숨겨진 시련이 더 있다고 했다. 그러더니 데크나무님의 꼭대기에 올라가 보라고 했다. 거기에 뭔가 보물이 있나?
"그럼 데크나무님의 정상에 올라 보는 게 좋을 테치오.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궁극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치오!"
데크나무님의 꼭대기라... 치오의 말을 다 믿을 건 아니지만, 올라 보면 뭐가 좋은 게 있겠지 싶어 열심히 데크나무의 몸을 올라갔다. 그랬더니, 정상 부근에는 많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가운데, 데크나무님의 옥상(?)이라 부를 수 있는 공터가 나타났다. 나는 여기 저기 둘러보다 작은 꼬마 코로그와 마주치게 되었다.
"음냐께끼...."
중얼거리고 있는 코로그에게 가서 말을 걸었더니, 이 코로그는 내게 수수께끼를 내겠다고 했다. 나모민이라고 하는 이 코로그는 궁극의 시련을 주겠다면서 으름장을 놓더니 내게 문제를 냈다. 문제의 정답은 아이템이나 물건인데, 그것을 나모민 앞에 있는 잎사귀 위에 올려놓으면 보상을 준다는 것이었다.
첫번째 문제는 쉽게 풀었는데 두번째 문제는 '카카리코 마을 특산품, 튼튼한 야채는 뭐~께끼?' 였다. 정답이야 뻔하게 알 수 있었는데, 문제는 주머니에 그 갑옷호박이 없었다는 것. 나는 갑옷호박을 가지러 카카리코 마을로 워프했다. 갑옷호박을 사서 다시 돌아와 문제를 맞추고 보니 모든 문제는 5개였다. 마지막 문제는... 정말 어이가 없긴 했지만, 다행히도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 한번에 문제를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다 맞추고 나서 크게 보상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코로그들의 시련으로는 그렇게 공격력이 높은 무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고, 대단한 상품이라 해도 맥스트러플 정도를 주는 것이니 말이다. 그저 치오의 말이 재미있었고, 나모민의 춤이 귀엽게 느껴질 뿐이었다.
내가 문제를 다 맞추자 나모민은 상을 준다며 반짝거리는 것을 불쑥 내밀었다.
"역시 용사님께끼! 자, 상을 줄께끼!"
'앗... 이것은?'
그건 바로 다이아몬드! 와! 치오의 말이 맞을 때도 있다니! 다이아몬드 정도면 고생한 보람이 있다. 좋은 기분으로 다이아몬드를 챙겨 넣고, 다시 데크나무에서 내려와 치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잘 있으라 말하는 내게 치오는 얼른 돌아와 마스터 소드를 후딱 뽑으라고 했다.
"얼른 단련한 뒤 후딱 뽑아서 데크나무님과 날 안심시켜 주치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내 스스로 인정할 만큼이 되어, 다시 와 퇴마의 검을 되찾고 싶었다. 그게 언제쯤이 될런지는 모르겠지만... 네 번째 신수에 도전하고 난 뒤에는 가능할까? 아닐까? 어쨌든 다음 번 이 숲을 찾을 때는 꼭! 마스터 소드를 뽑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시커 스톤을 다시 열어 지도를 확인한 나는 코로그의 숲을 나가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