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66)
가이드 스톤에 시커 스톤을 인증시키자마자, 기대한 대로 다르케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묵직하지만 정겨운 그 목소리 그대로......
"오호, 오랜만이야 친구... 너는 반드시 이곳에 올 거라고 믿고 있었다구!"
다르케르에 대한 기억을 좀 더 빨리 찾았다면... 다른 마을보다 이 지역에 먼저 왔을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를 오래 기다렸겠지?
"가논에게 빼앗겨 버린 이 루다니아를 되찾으러 온 거겠지?"
나는 다르케르가 어디선가 나를 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고개를 힘차게 끄덕여 보였다.
다른 신수 입장 때도 그렇듯이, 다르케르 역시 시커 스톤의 영상 화면을 통해 신수의 지도 정보가 담긴 또 다른 가이드 맵이 있는 장소를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먼저 내부 구조가 담긴 맵을 손에 넣도록 해야겠지. 저게 바로 맵 정보가 담긴 가이드 스톤이야. 저기를 향하도록 해!"
다르케르의 음성을 들으며 시커 스톤을 바라보고 나서, 나는 루다니아의 몸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갔다. 그런데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주위가 점점 어두워지더니 이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실내가 깜깜해졌다. 내 눈 앞에는 원념의 눈 2개가 깜박거리는 것이 또렷이 보일 뿐, 바닥이고 벽이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이렇게 칠흑같은 어둠을 펼칠 수가 있지? 이것도 가논의 힘인가?
하지만 망설일 시간은 없다. 나는 화살로 원념의 눈을 모조리 맞추었다. 원념의 눈이 사라져 끈적한 물질이 사라진 자리에는 보물 상자가 하나씩 나타났다. 보물 상자에서는 여러 도구나 무기가 나왔는데, 그 중 하나 횃불을 붙일 수 있는 횃대가 나왔다. 어째서 횃대가 보물 상자에 있을까...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벽 한쪽에 고대의 불꽃이 타고 있는 화로대가 서 있었다. 저 불꽃을 옮겨야 하는구나 - 직감적으로 알아차린 나는 다른 무기를 조심스레 집어 넣고, 횃대에 불을 붙였다.
어두컴컴한 방의 벽에 바싹 붙어 더듬거리며 불을 붙이는 곳에 고대의 불꽃을 모두 옮기자, 가이드 스톤이 있는 방의 문이 열렸다.
가이드 스톤에 시커 스톤을 인증하고 나자, 이전 신수에 들어갔었던 것과 같이 지도가 입력되어 나타났다. 바.루다니아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고, '신수 조작이 가능해졌습니다' 라는 알림이 떴다.
지도 등록과 조작 가능 알림이 뜨자마자, 다시 다르케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신수 맵을 구했구나... 너만 믿겠어, 친구!"
시커 스톤을 다시 꺼내들자, 어두웠던 신수 내부가 점점 환해지며 밝아졌다. 커스 가논과 이렇게 캄캄한 곳에서 싸워야 하는 것인가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는데, 다행이란 생각에 한숨이 나왔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나는 다르케르가 자주 하던 포즈처럼 양 주먹을 불끈 쥐어 주먹을 서로 부딪혀 보았다. 다르케르, 지켜봐줘! 그리고 시커 스톤을 다시 꺼내서 입체 지도를 보았다. 붉게 빛나는 지점이 바로 제어 단말기가 있는 곳. 가장 가까운 곳부터 제어 단말을 찾아내 시커 스톤을 갖다 대었다.
첫 번째로 찾아낸 제어 단말은 역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 루다니아를 잘 회전시켜서 제어 단말의 위치를 찾아 올라가면 끝! 두 번째 단말도 어렵지 않게 찾았다. 두 번째 단말은 커다란 쇠문 너머에 있었는데, 그 문이 아주 길고 굵은 빗장으로 막혀 있어 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열까 고민하다가 빗장 위로 벽에 매달린 마른 나뭇잎들이 늘어져 있었던 것이 수상해서, 푸른 불꽃을 화살촉에 옮긴 후 빗장 위에 걸린 잎 위로 쏘았다. 잘 마른 잎은 금방 활활 타올라 문에 가로질러 걸쳐진 굵은 나무 기둥을 순식간에 없애버렸다. 가로막이 없는 굳게 닫힌 철문은 시커 스톤의 기능으로 쉽게 열 수 있었고, 그렇게 두 번째의 제어 단말을 기동시켰다.
2개의 제어 단말은 쉽게 찾았기에, 별거 아니겠지 생각하며 시커 스톤을 열어 다시 신수 내부의 지도를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다음부터는 제어 단말의 위치를 알 수 있다 하더라도, 실제로 제어 단말이 잘 보이지 않았기에 제어 단말로 접근하는 방법을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다.
뭔가 쇠공이 굴러다닐 것 같은 길 위로 올라갔다가, 바. 루다니아를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공을 찾아내 굴리고, 공을 이용해 퍼즐을 풀어야 열리는 단말도 있었고 불기둥을 피해 제어 단말이 있는 방으로 들어가야 하는 퍼즐도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고심하고 생각을 한 끝에 이리저리 움직였던 나는, 마지막 단말을 찾았을 때는 조금 지쳐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낸 제어 단말은, 바. 루다니아의 바깥쪽, 루다니아의 등 부분에 솟아 있던 장식 사이에 있었기에 활활 타는 열기 가운데 있다 보니 입 안이 바짝 타들어가 몹시 목이 말랐다. 방염의 돌갑옷 없이는 이 곳에 1초라도 머물러 있기 어려울 터... 나는 마지막 제어 단말을 기동시키기 전, 츄츄젤리를 꺼내 무기로 터뜨렸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츄츄젤리도 불폭탄으로 변해버릴만한 열기이기에, 재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라도 물을 끼얹고 났더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시커 스톤을 꺼내 단말기에 인식시키자, 다르케르의 힘찬 목소리가 울렸다.
"좋아! 제어 단말은 이걸로 끝이야! 메인 제어 장치를 기동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맵을 잘 봐... 새롭게 빛나고 있는 커다란 표시가 있을 거야... 그리로 가!"
이제 바.루다니아의 중심에 있는 단말기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커스 가논이 튀어나올 것이기에, 나는 시커 스톤을 열어서 무기를 재정렬했다. 분명히 불 공격을 하는 가논이 나올테니, 얼음의 기운이 있는 무기를 먼저 배치하고 싶었다. 하지만 찾을 때는 꼭 없는 무기. 찾는 게 없다면 일단 공격력이 우선이다. 가지고 있는 무기 중 가장 공격력이 높은 왕가의 대검을 꺼냈다. 그런 나에게 다르케르가 한 마디 던졌다.
"... 하지만 방심하지는 마, 친구!"
방심이라니. 그런 마음은 전혀 가진 적이 없다. 여기까지 한 걸음, 한 걸음 헛되게 쓴 여정이 없었다. 이제 겨우 몬스터들과의 전투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전투의 상황을 보며 판단이 조금은 빨라졌다는 생각은 들지만 아직 멀었다는 생각 뿐이다. 대체 100년전의 나라는 영걸은 어떠한 존재였을까... 그도 두려움이라는 걸 알았을까? 다르케르가 이렇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라는 사람... 지금의 나와 같은 존재일 리가 없다.
세 번째 맞는 커스 가논. 그는 이번에 어떤 무기로 나에게 맞설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해결을 할 수 있을지 막막했지만 나의 몸은 중앙 단말기를 향했고, 그 앞에 도착하자마자 손은 내 생각과 다르게 시커 스톤을 꺼내 단말기에 갖다 대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나가는 사람. 그게 나, 링크라는 녀석인가보다.
이보다 더 뜨거울 수는 없을 열기에, 매캐한 기운이 더해지니 눈 앞에 뭐가 나오는지도 판단이 어려울 정도로 어지러웠다. 붉은 기운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더니, 재앙은 하나의 둥그런 공처럼 뭉쳐 있다가 세 번째 커스 가논의 모습을 빚어냈다.
화염의 커스 가논...역시, 한 손에는 불을 들고, 다른 손에는 기괴한 무기가 달려 있다. 저 무기는... 도끼날의 형태를 닮았나? 적을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관찰하는데, 다르케르의 외침이 울렸다.
"그 녀석은 가논이 만든 괴물이야! 100년 전, 나는 낭패를 봤지만 너라면 반드시......"
엄청난 방어력을 지니고 있던 다르케르마저 보내버렸다는 괴물. 화염의 커스 가논...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 걸까? 저 고대 에너지를 품은 도끼를 커스 가논이 어떻게 휘두르는지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찰나, 다르케르가 크게 외쳤다.
"자, 해치워 버려, 친구!"
그래... 어쨌든 해치울 수 밖에 없겠지. 나는 등 뒤에 걸려 있던 왕가의 대검을 꺼내 양손에 들었다. 커스 가논은 나를 이리저리 보는 것 같더니, 불을 던지려다 말고 도끼를 크게 휘둘러 가로베기 형태로 접근해 왔다. 나는 일단 공격 사정거리 밖으로 이동했다. 가로베기라면, 뒤로 뛰어 피해야겠군?
자신이 취한 공격이 들어가지 않으면, 다른 공격 형태를 취했던 다른 커스 가논과 달리, 화염의 커스 가논은 한번 더 그 커다란 도끼날을 휘둘렀다. 지금이야! 왠지 서늘한 기운에 뒤로 돌아 뛰었더니 커스 가논의 동작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려지는 것처럼 보였다. 공격이다!
러시 공격을 할 수 있는 건 좋지만, 대검의 단점은 공격의 범위가 넓어 한 번에 세 번 정도 휘두르면 더 이상 공격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공격 패턴을 한번 더 봐둘걸, 너무 성급히 공격했나 하는 생각도 했는데, 다르케르가 응원의 목소리를 냈다.
"친구! 역시 훌륭해!"
하지만, 그 순간 화염의 커스 가논이 도끼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쳤다. 나는 피하지 못하고 공격을 받아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조심해! 친구..."
크윽... 도끼 자체의 공격도 세지만, 열기가 너무 뜨겁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일어서 보니 생명력이 절반밖에 안 남았다. 얼른 체력을 채워야겠다 싶어 맥스 요리를 입에 쑤셔넣고, 대비를 위해 마련해 두었던 방어력 음식도 먹어치웠다.
커스 가논은 자신의 공격이 먹혀서 그런지 계속 도끼를 휘둘렀다. 연속으로 두 번 도끼를 휘두를 때는 자칫 큰일날 뻔 했다. 겨우 피한 뒤 잠깐 틈이 생겼을 때, 나는 가논에게 접근해 왕가의 대검을 휘둘렀다. 커스 가논은 몇 대 맞더니 바닥에 쓰러졌다.
"바로 그거야!"
내가 커스 가논을 바닥에 눕히자 다르케르가 신난 듯 외쳤다. 그런데 쓰러진 커스 가논은 바로 일어나는 듯 싶더니 어디론가 흩어졌다 다시 뭉쳤다. 새로운 공격을 준비하는건가! 싶어 나는 커스 가논이 움직이는 대로 따라갔다.
화염의 커스 가논은 중앙 단말기 위쪽, 더 높은 공중에 올라 한 손에 불꽃을 일으키더니, 자신의 도끼날에 그 불꽃을 갖다대어 무기를 빨갛게 달구었다. 열기가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까지 훅 끼쳤다.
뒤이어 화염의 커스 가논은 자신 주변을 불덩이로 에워싸 방어 태세를 취했다. 공격을 하는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는데 다르케르의 낮은 목소리가 다시 귓가에 울렸다.
"불덩이를 조심해! 저건 상당히 위험해!"
음... 위험하다고? 어떻게 하길래 그러지? 나는 일단 공격의 형태를 보기 위해 얼음 화살을 장전해 화염의 커스 가논에게 쏘아 보았다. 하지만 얼음의 화살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둥그런 불덩이 방어막을 뚫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화살이 날아갈 때 보니, 전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것 같았다.
화염의 커스 가논은 갑자기 모습을 바꾸어 다른 장소로 위치를 옮기더니, 다시 화염 덩이로 자신을 에워쌌다. 그러자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순간, 윤돌과 함께 데스마운틴을 오를 때, 바람을 타고 움직이던 공중 가디언들의 움직임이 떠올랐다. 바람을 타고 리모컨 폭탄을 터뜨린다면.....!
나는 시커 스톤으로 둥근 리모컨 폭탄을 꺼내 던졌다. 예상대로 화염의 커스 가논의 화염구 안으로 폭탄이 빨려들어갔다. 기폭 장치를 눌러 폭탄을 터뜨리니, 화염의 커스 가논의 방어막이 깨지고 가논이 땅에 곤두박질쳤다. 지금이야!
커스 가논에게 뛰어가 열심히 칼을 휘둘렀으나 안타깝게도, 왕가의 대검이 부서지고 말았다. 다른 무기를 꺼내려는데 커스 가논이 다시 정신을 차리더니 중앙 단말기 앞 공중으로 올라갔다. 붉게 달아오른 대검을 휘두르려고 자세를 취하기에 얼음 화살을 하나 날렸다. 다행히도 커스 가논의 눈처럼 생긴 중앙 인식 장치에 맞아 커스 가논이 비틀거렸다.
나는 화살을 몇번 더 맞추다 창을 꺼내 커스 가논을 마구 찔렀다. 커스 가논은 크게 저항하지 못했고, 그대로 최후를 맞았다.
비틀거리며 매캐한 재앙의 기운을 쏟아내던 화염의 커스 가논은 모든 나쁜 기운을 소진하며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어디선가 생명의 그릇이 반짝거리며 날아와 빛났다.
생명의 그릇을 받은 후, 나는 이제 파란 빛으로 가득 채워진 중앙 단말기로 다가갔다. 고대의 에너지가 가득차 있는 중앙 제어 장치를 바라보며 한숨 돌리는데,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어느 새 다르케르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영혼이 되어도 다르케르의 모습은 여전했고, 그 따뜻한 눈빛 역시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르케르는 나를 향해 양 팔을 옆으로 쭉 벌려 환영한다는 듯한 몸짓을 보여주었다. 가까이 가서 악수라도 하고 싶었으나, 이상하게도 발을 내 맘대로 뗄 수가 없었다. 내 발을 누가 붙들고 있는 것처럼, 묵직한 힘이 느껴졌다. 내 마음대로 영혼의 바로 옆으로는... 다가갈 수 없는 건가?
다르케르는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큰 두 손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네 덕에 내 영혼도 해방됐어......고마워."
하지만 곤란하다는 듯, 그는 머리를 긁적이는 제스처를 취하며,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난 하이랄을 지키지도 못하고 당해 버렸어......"
다르케르는 나를 바로 쳐다보고는 멋쩍게 웃었다.
"결과적으로 너에게 고생만 시키고 말이야......"
그러나 다시 가슴을 편 그는 당당하게 평소의 말투로 내게 주먹을 쥐어 보였다.
"하지만 루다니아를 이렇게 되찾았으니, 이걸로 100년 전의 임무만큼은 확실히 해낼 수 있겠어."
100년 전에 우리가 하기로 했던 일... 내가 하이랄 성의 재앙 가논에게 가면, 바. 루다니아를 조종하여 재앙 가논에게 주포를 쏘는 그 일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지금부터 이 녀석을 움직여서 가논 녀석을 조준하러 갈 거야. 네가 그 성에서 녀석과 싸울 때 멋진 한 방을 먹여 줄게!"
다르케르는 조금 더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한마디 더 덧붙였다.
"그리고 나의 힘...... 다르케르의 수호를 너에게 주지."
"영혼의 된 지금의 나에겐 쓸모가 없으니 말이야."
다른 영걸들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들에겐 쓸모가 없으니 그 힘을 내게 주겠다고.... 미파도, 리발도, 그리고 다르케르도... 리발이 리발의 용맹을 내게 건넬 때는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다르케르가 내게 그런 말을 하니 왠지 콧날이 시큰해졌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던 그 큰 바위를 막아준, 든든하고 따뜻했던 방어의 힘... 다르케르의 수호를....!
그렇게 말하던 다르케르는 자신의 큰 두 바위손 사이에서 힘을 이끌어 내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보내버렸다. 순식간에 날아온 다르케르의 에너지는 나의 몸을 싸고 돌더니 내 몸 안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한순간 뜨거운 열기가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기분이 들었는데, 나도 모르게 다르케르가 방어 자세를 취하던 그 모습대로 주먹을 모아 몸을 낮추고 굽히는 자세를 하게 되었다.
'이... 이게 다르케르의 수호?'
내가 방어 자세를 취하자, 내 몸 주변에 뜨거운 기운이 피어올라 나를 감쌌다. 나를 중심으로 다면체 모양의 둥근 형태를 이루는 다르케르의 수호... 어떤 공격에서든지 나를 보호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잊지 마...... 앞으로 너에겐 내 수호의 힘이 함께한다는 걸!"
나는 다르케르에게 눈빛으로 인사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돌갑옷 투구를 쓴 상태라 잘 보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는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말했다.
"그럼 가 봐, 친구....."
다르케르가 가보라고 운을 떼자 마자, 내 몸 주변에 반짝거리는 빛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그의 앞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겠지.... 조금만 더 다르케르의 옆에서 고마웠다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이별의 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
다르케르의 모습이 흐려지는데, 그는 잊었던 것 같은 한 마디를 내게 꺼내 던졌다.
"공주님을 부탁해......"
다르케르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는 데스마운틴의 분화구에서 치솟는 연기를 보았다. 다르케르가 바. 루다니아를 움직이는지 엄청난 진동이 느껴지기도 했다.
데스마운틴의 분화구에서 밖으로 나와 모습을 드러낸 루다니아는, 하늘을 한 번 쳐다보았다. 아마도 루다니아 위쪽에 다르케르가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루다니아 아래에 윤돌이 서 있었다. 어라? 윤돌은 어째서 내려가지 않고 여기 있었던 거지? 나와 헤어지고 나서 계속 여기 있었다는 건가? 윤돌은 루다니아를 보고도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루다니아는 데스마운틴 분화구 위편 어딘가에 자리를 잡더니, 도마뱀 얼굴처럼 생긴 앞 부분을 열어 붉은 빛으로 하이랄 성을 조준하기 시작했다. 준비를 마치자, 다르케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좋아, 이제 됐어......."
루다니아의 어깨 쪽에 서 있던 다르케르는 하이랄 성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서 있었다.
"언제든 가논 녀석에게 한 방 먹일 수 있겠군."
"링크가 녀석과 싸울 때, 이 루다니아의 큼직한 일격을 가논에게 퍼부을 생각이야..."
이제 하이랄 성을 조준한 붉은 빛이 3개가 된 것이 내 눈에도 들어왔다.
다르케르는 스스로 아름답다고,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맹세했던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렇게 중얼거렸다.
"100년만의 하이랄이라...... 나쁘지 않은 경치야......"
붉게 타오르는 용암 지대를 내려다보는 다르케르는, 다들 무사히 잘 있다면 좋겠다며 중얼거렸다.
그 때, 다르케르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는지 그는 잠깐 둘러보던 것을 멈추었다. 바. 루다니아 아래 서 있던 윤돌을 발견한 것이다.
다르케르는 기쁜 듯 크게 씩 웃더니, 갑자기 주먹을 높이 치켜들었다.
윤돌에게 보내는 메시지였을까? 다르케르의 오른손은 그의 얼굴보다도 더 커 보였다.
바. 루다니아 아래 서 있었던 윤돌이었지만, 다르케르의 그 손인사를 발견했다. 깜짝 놀랐던 윤돌은 이내 환하게 웃더니 자신의 오른손을 들어 크게 흔들었다. 윤돌의 눈에 다르케르가 보일 수 있다니.... 역시 후손이라서 가능한 걸까?
정신이 다시 들었을 때, 주변은 더 이상 열기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땅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고론 시티 입구 즈음이었다. 시커 스톤의 알림이 울리기에 시커 스톤을 꺼내 보았다. 내가 새로 사용할 수 있는 힘이 늘었다는 표시가 떴다.
'영걸 다르케르의 수호, 영걸 다르케르의 수호가 깃든 가호의 힘. zl을 누르고 있는 동안 적의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튕겨 낸다.'
그 메시지에 다르케르와의 만남이 다시 떠올랐다. 푸근했던, 그리운 미소를 봐서 다행이었다. 그를 구해낼 수 있었던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이제 남은 건.... 한 명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고론 시티 안으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날은 어느 새 깊어 새벽이었다. 하지만 고론 시티 안에는 인기척이 있었다. 그 때, 내 앞을 가로막은 것은 바로 윤돌이었다.
윤돌은 나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말했다.
"와아! 너! 루다니아를 달래 줘서 고마워고로!"
아까 데스마운틴의 정상 즈음에 있었던 것 아니었나? 벌써 고론시티로 내려와 있다니.... 윤돌...생각보다 빠른데? 이런 생각을 하는데, 윤돌은 내게 계속 말을 이어갔다.
"네가 루다니아의 안에서 뭘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 녀석...... 몰라보게 얌전해졌어고로."
나는 윤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윤돌은 활짝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있지, 방금 나 루다니아 위에 선 다르케르님을 봤어!"
아? 나야 다르케를 떠나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윤돌이 이런 것도 알려주다니... 의외였다. 하지만 다르케르의 후손이라 했으니 선조를 본 것은 그에게 있어 정말 기쁜 일이었을 거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알려 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윤돌은 갸웃거리더니, 환상은 아니었을까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건... 환상이었을까? 하지만 어쩐지 조금 용기가 솟아고로!"
윤돌을 따라 나도 웃었다. 다르케르의 그 주먹을 치켜든 모습을 떠올린다면, 정말 용기가 솟는 기분이 드니까.
그러다 윤돌은 잊었던 것을 떠올린 듯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앗, 그렇지! 반장에게 네 얘길 했더니 [데리고 와]라고 했어고로! 반장의 명령은 절대적이야고로! 얼른 와고로!"
윤돌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몸을 굴려 반장 옆으로 갔다. 나는 복장을 다르게 갖춰 입었다. 돌갑옷 투구가 너무 무거워서, 전투가 끝났으니 더 이상 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머리 장식을 후드로 바꿔 쓰고는, 반장 옆에 서 있는 윤돌에게 다가갔다.
반장은 나를 보더니 무척 기뻐하는 눈빛으로, 굵직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내어 말을 시작했다.
"오오! 형씨! 윤돌한테 들었어! 형씨 장난 아닌데....? 루다니아를 제압했다며? 제법이잖아!"
그는 겸언쩍은지, 이마를 긁으며 부끄럽다는 듯 말했다.
"정말이지... 요통도 나아져서 지금 막 루다니아를 뭉개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말야."
요통이 나아졌다니 다행이다 생각하는데, 제발이 저린 듯 브루도는 계속 투덜거렸다.
"이래선 내가 마치 꾀병을 부린 것 같잖아..."
하지만 다시 나와 눈이 마주친 브루도는 뭐 끝이 좋으면 다 좋은거라며 크게 웃어제꼈다.
그리고는 슬쩍 내게 눈짓을 보내며 윤돌을 칭찬했다.
"윤돌도 어쩐지 야무지게 변했어. 형씨 덕분이야."
음... 그럴까? 평소의 윤돌을 잘 모르니까 내가 할 말은 없었다. 어쨌든 브루도가 고마워하고 있다는 마음은 충분히 전달받았다. 이제 마무리가 되었으니 다음 마을로 가야겠지.... 생각하는데, 브루도가 내게 보답을 해야겠다고 말했다.
"신수 바. 루다니아도 잠잠해지니 꼴 좋구만! 이제 다시 데스마운틴 근처 광석을 채굴할 수 있겠어... 그래! 형씨에게 보답을 해야지."
보답?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은 아니긴 한데....
그래도 보답을 준다니 기대가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뭘까? 좋은 무기를 준다면 좋긴 하겠는데...
브루도는 자신 뒤편에 있는 집을 가리키며, 그 곳에서 보물을 가져가라고 했다.
"괜찮으면 집에 있는 보물을 가져가도록 해."
"보물... 이라고요?"
"다르케르님이 쓰시던 특별한 검이니 분명 형씨에게 도움이 될 거야."
아.... 다르케르의 검! 그게 뭐였더라....? 전에 본 적이....생각이 나지 않았다. 보물이라 하니 데스마운틴의 특별한 광물일까 생각했던 나 스스로가 조금은 부끄러웠다. 다르케르의 무기라면 감사히 받아야지!
바로 브루도의 집으로 가려는 나에게, 부르도는 갑자기 몸을 굽히고 다가와 속삭였다.
"그나저나 말이야..."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거지? 부르도의 눈빛이 꽤 진지했다.
"형씨도 하일리아인이라면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100년 전의 하일리아의 영걸님도 퇴마의 검 뭐시기라는 검을 쓰셨다더군."
아... 검... 내가 잃어버린 그 검... 브루도도 알고 있었구나. 무슨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싶었더니, 퇴마의 검 이야기구나. 또 왜 안 가지고 있느냐 뭐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하나? 아니지... 브루도는 내가 영걸인 걸 모르는데... 그런데, 브루도가 의외의 이야기를 꺼냈다.
"미로숲에 잠들어 있다 전해지는 그 검..."
뭐라고? 미로숲....? 잠들어... 있다고...? 내가... 잃어버린 게 아니었어?
내 놀란 눈을 바라보던 브루도는 모르고 있었냐는 눈빛으로 한번 씩 웃더니, 한마디 덧붙였다.
"땡기면 형씨도 한 번 찾아보는 거 어때?"
세상에나 맙소사. 미로숲에 있다니... 여기서 그런 정보를 얻게 될 줄이야! 다른 어떤 보물보다도 브루도가 준 정보가 바. 루다니아를 잠재운 보상 같아서 나는 실소를 멈출 수가 없었다.
브루도와의 이야기를 뒤로 하고, 나는 브루도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고론족의 집 안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어서 매우 더웠다. 이런 곳에서 정말 어떻게 사는 건지... 싶은데, 방 안쪽의 가장 큰 의자 위에 보물 상자가 하나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보물 상자를 열어 보니 '거암 크러셔'가 들어 있었다.
시커 스톤의 기록에 따르면, 영걸 다르케르가 쓰던 최고의 강도를 자랑하는 대검이라고 한다. 한 손에 들기에는 어려운 아주 묵직한 ... 일반인은 두 손에 들고 휘두를 수 없는... 공격력이 무려 60! 어마어마한 무기다. 두 손에 들고 한번 휘둘러 봤는데... 허억... 일반 대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중심을 잘 잡고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원심력에 밀릴 것 같은 그런 대검이었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데, 브루도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떠나기 전에 브루도에게 미로숲에 대해 물어보고 싶어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브루도는 미로숲이 어디 있는지는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거암 크러셔에 대해 물어보았다.
"거암 크러셔는 어떻게....?"
질문을 다 마치기도 전에 브루도는 이렇게 말했다.
"아.. 거암 크러셔, 맞아! 혹시 거암 크러셔를 잃으면 대장간의 불로한을 찾아가 봐. 거암 크러셔는 윤돌의 선조님... 그러니까 다르케르님이 쓰시던 녀석이야. 불로한이 다시 만들어 줄 거야."
아항... 이 거암 크러셔도 내구도가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는데, 브루도는 껄껄 웃으면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뭐, 다르케르님은 그 녀석을 부채 대신으로 쓰셨다고 한다만!"
허풍이 꽤 심하네... 브루도...
나는 브루도의 말을 듣고 대장간을 찾아가 보았지만, 불로한이라는 자는 집 안에서 쿨쿨 자고 있었다. 시간을 보니 새벽 3시가 넘은 시각. 당연히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때겠구나 하여 그대로 고론 시티 중심지로 나왔다. 어느새 동쪽 하늘께가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부족한 요리를 보충하고, 무기를 점검해 본 후 밝아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다르케르의 조각상이 눈에 들어왔다. 다르케르를 만나고 와서 보니 조각상을 꽤나 잘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리고 데스마운틴 위를 올려다 보았다. 루다니아가 하이랄 성을 조준하고 있는 모습이 뚜렷이 보였다. 다르케르의 영혼이 저기 있다고 생각하니 왠지, 쓸쓸하지만은 않았다. 다만, 다르케르가 기대하는 것 처럼 하이랄 성에 내가 당도할 날은 언제가 될런지....
다음 행선지는 어디로 가야 하는 게 좋을까? 미로숲을 찾아 볼까? 아니면 마지막 남은 마을을 찾아야 하려나? 시커 스톤의 지도를 켜서 보니 다음 마을은 거리가 좀 있다. 거의 대각선 방향으로 하이랄을 가로질러야 하네....
일단은 이 뜨거운 도시를 좀 벗어나 홀가분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또 다시 길을 떠나 보자. 내가 나아가는 길에 뭔가 또 다른 것이 실마리가 되어 다음 행선지로 나를 이끌어 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