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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현 Apr 21. 2020

코로나 초절정, 미국에서 출산하다 (2)

35시간 만에 유도분만 성공

지금 진통의 세기를 숫자로 표현한다면?"
"6이나 7?"
"네가 원하면 진통제 줄게.
에피듀럴 맞고 싶으면 지금 이야기해"


입원 이틀 차, 양수가 터진 이후의 진행상황은 생각보다 굉장히 빨랐다. 아! 이 정도 고통쯤이 밀려드는 거로구나. 그냥저냥 느껴왔던 보통의 '수축' 쯤이 아니었다. 오후 5시에서 6시쯤이 되자, 견디기 꽤나 괴로운 고통이 '쓰윽' 나를 스치고 지나가기 시작. 못 참을 고통은 아닌데 확실히 '아픈' 느낌. 진통의 세기를 겨우 1이나 2라는 숫자로 소심하게 표현해대던 나는 드디어 5에서 7 사이의 숫자를 거침없이 외치기 시작했다. "와, 진짜 아프다. 아주 아파. 근데 아직은 완전히 미칠 것 같은 아픔은 아닌 것 같아." (출산 때 느낀 거지만, 고통의 정도를 표현하기란 한국어로든 영어로든 참으로 어렵다.)


이곳 분만실에 들어온 이후, 단 한번도 우리 손으로 저 문을 열고 나간 적이 없는 신비의 방. 한번 들어오면 마음대로 나갈 수 없다는 코로나 시국 속 분만의 방.


에피듀럴 (Epidural). 한국에서의 '무통주사'에 해당하는 마법 같은 마취주사. 이미 많은 경험담들을 통해 '무통 천국'을 경험하며 순산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었기에 나 역시, 임신 초기부터 남편에게 재차 강조했었다. "무조건 아파 보인다 싶으면 '에피듀럴'을 외쳐줘."


헌데 한국에서는 임산부의 자궁문이 어느 정도 열린 이후에야 에피듀럴 주사를 허락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미국 이곳은 너무 관대한 것 아닐지! 진통이 어렴풋이 시작된 뒤 1시간이나 지났을까. 진통을 완화시킬 주사들, 몇 가지 보기를 제안하는 의료진. 아직 자궁문은 1센티도 안 열렸다는데? 이 정도 진통은 더 참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벌써 맞아도 되나? 괜히 맞았다가 너무 편안해져서 분만 시간만 지연되는 것 아닐까. 아프긴 아픈데 조금 더 참아보겠다고 했다. "나는 분만 시간이 늦춰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며 일단은 견뎌보겠다며...... 무통 천국 경험하다가 진통도 더뎌져서 괜히 시간만 더 걸리는 건 싫으니까. 평소의 습관대로 "전 괜찮아요"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괜찮기는 뭐가 괜찮다고.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도 연습할 필요가 있다.)


의학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그런 '판단'을 마음대로 했던 걸까.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싶었다. 남편 역시, 너무 아프면 참지 말고 주사 맞아도 된다고 토닥토닥. “그러게, 그렇네. 아니, 의사가 무통주사 놔주겠다는데 그걸 내가 왜 거부했지? 무슨 근거로 참겠다고 한 거지? 점점 더 아프잖아!"


 "저 마음 바뀌었어요.
저 에피듀럴 바로 맞을게요."


에피듀럴 효과가 제대로 나타났던 새벽 1시-2시 쯤. 진통수치가 100을 찍어도 나는 평화로웠다고 하더라.


그리하여, 저녁 8시쯤 '에피듀럴' 무통주사 투입. (어차피 맞을 주사, 진작에 초반부터 맞을 걸! 무슨 오기로 버티겠다고 한 건지.) 마취가 전문의가 와서 이런저런 설명과 경고를 곁들여 가며 에피듀럴 설명을 하는데, 무슨 영어를 하시는 건가요? 양쪽 귀가 꽉꽉 막힌 상태. 미국 살이 1년 차가 넘어도 영어는 늘 어렵지만, 정말이지 출산병원에서 마주하는 영어는 왜 이렇게 내 맘 같지가 않았던 건지. 속으로는 ‘흔히 뭐 다들 맞는 주사인데 큰 부작용이야 있겠어요. 그냥 빨리 좀 놔주세요’와 같은 심정.


그만큼 진통의 강도는 세졌고 나는 그 강도를 7이나 8의 숫자로 외쳐대는 수준이 되었다. 와, 유도분만을 위해 미리 입원해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양수가 터진 뒤 병원으로 출동해야 했던 상황이었다면 이 진통을 어떻게 견디며 병원까지 올 수 있었을까. 양수는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양이 아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내 몸을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 생각만 해도 머리가 까마득하다. 본격적인 진통이 파도처럼 쓱 밀려왔다가 한풀 꺾여 지나갈 때, 미리 다운로드 받아뒀던 핸드폰의 진통 어플을 눌러볼 정신조차 없었다. 뭐가 가진통이고 진진통이고 구별할 틈도 없이 어마어마하게 큰 짐덩이가 나를 짓누르고 지나가는 느낌. 혹시 무통주사 효과가 나만 나타나지 않는 건 아니겠지. 나도 그 무통 천국이라는 것, 경험해볼 수 있는 거겠지?


아까 바나나 한 개만 더 먹어둘 걸 그랬지!

그 무렵, 정신없는 진통이 밀려드는 와중에도 '배고픔'을 해소하고픈 욕구는 스멀스멀 잠재돼 있었으니! 생각을 되짚어보니, 오후 2시 바나나 한 개를 먹었던 게 화요일 끼니의 끝이었다. 배고플 만도 하지. 진통이 올 땐 허기짐을 느낄 여유가 없었으나, 에피듀럴의 효과를 반짝 보고 있을 땐, 그저 '배고프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찼다. 혹시라도 진통만 실컷 느끼다가 응급상황이 발생해 제왕절개 수술로 넘어가야 한다면? 수술에 대한 공포도 만만치 않았지만, 수술 후에 언제 다시 정상적인 끼니를 챙길 수 있을지 모르니 그 또한 억울한 일이었다. 출산 직후, 뭐라도 먹으려면 반드시 '자연분만'을 해야 되는 거다. 자연분만도 제왕절개 수술도 양쪽 다 무섭고 겁났지만 아침 끼니를 먹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은 간절히 '자연분만'을 향해 있었다. 으악. 이럴 줄 알았다면 아까 바나나 한 개만 더 먹어둘 걸 그랬지!



무통주사 천국이 제대로 찾아왔던 새벽 1시, 2시 무렵. 컴퓨터 화면에 잡히는 그래프 상으로 진통의 강도는 최고치를 찍고 있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살만해지니 핸드폰도 만지작만지작, 한낮의 시간을 지나고 있을 한국의 가족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끊임없이 블로그의 분만 후기를 검색 또 검색. 에피듀럴을맞은뒤 언제쯤 최종 출산에 다다를 수 있나? 혹시 무통 천국만 맛보다가 응급 제왕으로 넘어간 경우는 얼마나 되나?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 상황을 유추해보고 무한 상상. 지금이 새벽 2시니, 적어도 오후 2시를 넘기진 않겠지? 정오 전에도 가능할까. 이왕이면 훨씬 더 빨랐으면 좋겠네.


이런저런 후기들을 통해 열이면 여덟은 무통 천국을 느꼈다고 본 것 같은데, 역시나 평균치 이상의 경험담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 와, 이 정도면 뭐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진통은 문제 될 게 없겠네. 스트레스에 찌릿찌릿 일상 이곳저곳이 망가져있는 것 같을 때, 사람에게 상처 입고 마음이 아픈 듯할 때, 그에 딱 맞는 '무통' 천국을 투입할 수 있다면 이 세상 얼마나 더 살 만할까. 현실 불가능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마음껏 그 천국 맛보기.


이왕이면,
오전 11시 이전에 태어났으면 해


여기에 플러스! 막간의 무통 천국이 이어지는 동안 태어날 아기의 탄생 시각에 대한 소망도 소소하게 품어봄. 이왕이면, 미 동부 시간 오전 11시 이전에 출산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서머타임이 적용돼 있는 현재, 한국과 미국의 시차는 13시간. 여기 시각 11시가 넘어가면 한국은 자정을 넘겨 다른 날짜로 넘어가는 셈. 쉽게 말해 태어난 '날짜'가 달라진다. 태어나는 시간을 인력으로 어찌 조절하겠냐마는, 이왕이면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생일 날짜가 같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엄마의 욕심이랄까. 이 욕심이 채워지려면 지금쯤은 자궁 문의 열림 정도에 '산뜻한' 진전이 있어야만 했다. 새벽 1시경 내진 시, 2-3cm가 열려있다는 의료진의 대화를 얼핏 들었었다. 새벽 4시 30분 내진, 두근두근 부디 5cm 이상 열려있기를 간절히 바라던 마음!


9cm! 곧 출산준비해야 해


와, 세상에! 야호! 운이 좋았던 건지, 기적이 뒤따른 건지, 몇 시간 사이 유도분만 과정에 급진전이! 유도 초반 단 1cm도 열리지 않아 스스로도 답답했던바, 유도분만 결국 '실패'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터라 예상 밖의 전개에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설마 응급수술로 넘어가진 않으리라 믿어보며. 그렇다면 난 운 좋게도 오늘 아침식사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속으로는 무슨 메뉴를 골라야 하지? 희미하게 생각해 보며.)


본격적인 분만 준비에 들어가기 전, 무통 마취가 풀려버리면 어쩌나 열심히 에피듀럴 버튼을 눌렀던 덕분에 실제 분만이 이뤄지는 '결정적 순간' 내 진통에 대한 느낌은 철저하게 '0' 상태. 진정한 '무통'의 상태에서 온 근육을 짜내다 보니, 내가 의료진들이 원하는 대로 힘을 주기는 주고 있는 건지 아무 감각을 느낄 수가 없었다. 가뜩이나 평소에도 체력이 달린다고 느꼈는데 누군가 강하게 지시한다고 해서 쉽게 '힘'이라는 게 생성이 되겠는가. "이래서 운동을 평소에 하라는 거였나 봐" 소소하게 반성하기도. (임신 초기부터 후기에 이르기까지 운동량 제로. 순산에 좋다고 하여 야심 차게 홈트레이닝을 해보고자 짐볼을 샀으나 열심히 활용하지 않았음을 다시금 뉘우치는 중.)


다행히 출산에서 활용되는 호흡을 유튜브를 보며 예습했는데, '아나운서' 발성 호흡법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틈틈이 기억을 떠올리며 길게 길게 복식 호흡하려 애썼는데, 그 또한 유용했다. 하지만 최후의 결정적인 순간에 주효하게 작용한 건 내 호흡이나 힘주기 스킬의 정확도보다는 곁에서 조력해주는 사람들의 밀집된 에너지 (?). 남편이 곁에서 온몸으로 끌어주고 약 10명의 의료진이 내 곁에 찰싹 달라붙어 '으쌰 으쌰' 불어넣어 준 덕분. 그 단단하고 옹골찬 기운 덕분.


배고파요. 먹을 것좀 주세요.


그리하여 8시 43분. 3.39킬로그램의 아기와 마주하다. 아기가 옮겨지는 모습을 보고 울음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나 역시 흑흑. 눈물 뚝뚝. 감격이 번진 눈물방울을 쏟았다고!! (기억해두자.) 배고픔에 지쳐 울었다고 하면 감동력이 떨어지잖아. 이내 이어진 나의 다급한 외침.


 팬케이크랑 애플주스요!

갓 태어난 아기와 스킨 투 스킨 (skin to skin) 시간은 가져야 하겠고, 배고픔은 달래야 겠고. 한손을 바들바들 떨며 맥모닝 닮은 빵 한 입 우걱우걱.


자연분만의 미덕은 빠른 회복력이라고 했던가. 아기와의 skin to skin 시간을 거친 뒤, 그토록 소원하던 아침식사 대령이오. M 햄버거사의 모닝 시리즈 같은 브런치 메뉴를 한 손에 쥐고 우걱우걱 쩝쩝. 바랐던 대로 '자연분만' 성공 뒤 만족스러운 끼니를 밀어 넣고야 말았다. 오래지 않아 바로 모자동실을 향해 휠체어 타고 병실 이동. 남편과 한 분만실에 갇혀(?) 출산에 이르기까지 무려 35시간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었으니, 자그마치 2박 3일 격리 후, 떳떳하게 ‘탈출'하는 기분도 의기양양 뿌듯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지난 학기 성적표 올에이 학점 찍고 흐뭇 뿌듯했던 것과 유사한 '업텐션'이었다고.

"해냈어! 내가 결국엔 해냈다고!"  
35시간 머물던 가족분만실에서 모자동실, 일반병동으로 이동. 출산 직후 받아본 고운 자태의 튤립화분에 힐링모드.


코로나 바이러스로 워낙 예민한 시국이 이어지고 있다 보니, 자연 분만한 산모 기준, 2박 입원이 원칙이었으나 stay home 라이프가 일반화된 요즘의 미국 분위기를 고려해 산모와 아기의 상태에 문제만 없다면 1박 이후 퇴원도 권장한다고 했다. "최대한 빨리 집에 가서 아기랑 안전하게 집안에만 콕 박혀 있을 거야!" 초심을 지키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았지만, 그래도 최대한 기본적인 회복과정을 충분히 거치며 병원의 도움을 받고 싶었던 마음도 비등비등했다. (한국에서처럼 퇴원 후, 조리원으로 향해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게 아니었으므로.) 상의 끝에 우리 부부와 아기는 원래의 원칙대로 이틀 모자동실에 머물기로 결정. 분만실보다 다소 작은 모자동실에서 남편과 나, 갓 태어난 아기, 세 식구의 동침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안 믿겨서 설렘 폭발. 아침에 낳고 지칠 대로 지쳐 잠들 법도 한데, 난 결국 그날 새벽까지도 잠을 설쳤다. 인형 같은 아기를 곁에 두고 도대체 어떻게 졸 수 있단 말인가!

병실로 옮기자마자 받은 출산 기념 선물. 그 어떤 호텔의 웰컴푸드보다 더 감동적이야


작은 병실에서 보내는 또 다른 2박 3일. 시시각각 방문해 아기와 산모 상태를 끊임없이 점검하던 간호사들, 너무나 고맙고 고마운데 잦은 검진 일정에 적잖이 지치기도 했고, 서서히 출산의 긴장감이 풀려오면서 생생하게 다가오던 온갖 근육통, 스멀스멀 밀려들던 또 다른 통증들은 결코 반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히 '후련했고' 별 탈이 없었음에 '감사했고',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사실이라는 면에서 '신이 났다'. 이 인형 같은 아기가 진짜 나의 미니미, 내 아기라니!


그리고 또 한 가지 은근히 '신이 났던' 요소 한 가지는 '남이 차려서 가져다주는 밥상'. 호텔 조식급은 아니지만 호스텔 아침식사 정도는 되는 것 같다고 남편과 재잘재잘거렸던 것, 바로 매 끼니때마다 가지런히 배달되어 오는 병동 식사. 온갖 영양 뜨끈하게 갖춘 밥상은 아닐지라도, 부부 스스로가 차려먹고 고민했던 식사 상차림이 아니라, 누군가가 친절하게 쥐어주는 끼니. 그 사실만으로도 힐링이 되고 위안이 됐다. 한국에 머무는 친구들의 조리원 식단을 살짝 참고해보자면, 너무나 다른 모습의 아메리칸 스타일 산모식. 다들 산모가 이걸 먹는거냐고 놀라워 하겠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별명이 '빵순이'인 나는 굳이 한식이 아닌 이런 메뉴, 나쁘지 않았는 걸? 한국의 어르신들 기준, 쓱 보기에 불량스러워 보이는 식단일지라도 난 매 끼니 참 맛있게 즐겼다.


자, 그렇다면 먹을거리에 관한 이야기, 아메리칸 스타일의 산모 식단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계속.


바라만 봐도 훈훈한 아빠와 아들. "와, 이 풍경이 진짜 실제라니! 꿈에서만 어렴풋이 봤던 이 장면, 믿겨지지 않아."
태어나자마자 내 가슴 위에 탁 얹혀진 우리 아들. 눈, 코, 입, 귀, 손가락, 발가락 모든 게 신기하기만 했던 순간들.
발도장 쾅쾅. “엄마 내가 이세상에 출석체크를 한 거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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