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여기 두 가지의 명사가 있다. '때문’과 ‘덕분’. 어떤 상황의 앞뒤 인과관계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둘 중 무엇을 쓰더라도 얼핏 큰 의미 차이는 없어 보인다. 어쨌든 A라는 상황이 그 후에 벌어질 B라는 상황에 영향을 준다는 뜻일 테니. 다만 한 사람의 입에 담길 때 그 문장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이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 이것 덕분에 이렇게 되었어. 후자의 경우, 어떤 상황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 들어설 수 있다면 전자의 경우, 무언가를 탓하는 듯한 느낌까지도 잔뜩 밸 수 있다는 것.
아기를 키우다 보니 한 순간 한 순간 변수가 참 많다. 변수가 깃든 상황을 설명하려다 보면 자연스레 인과관계가 담긴 문장을 쓸 때가 잦아진다. "아기가 갑자기 이유 없이 '으아앙' 울기 시작하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달래다 보니 방이 이렇게나 지저분해졌네." 또는 "아기가 오늘따라 너무나 '방긋방긋' 날 보고 웃고 있지 뭐야. (그래서) 놀아주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네. 결국 대학원 과제할 시간도 없이 하루가 다 지나가버렸네?" 결과를 빚어낸 결정적인 상황의 주인공에 '아기'가 놓이는 이런저런 경우들. 이럴 때 (그래서)의 자리에 어떤 부사가 자리할 수 있을까.
"아기 때문에
방이 이렇게 지저분해졌어"
"아기 때문에
결국 과제할 타이밍을 놓쳤어"
나도 모르게 '때문에'라는 말이 앞설 때가 종종 있었다. 딱히 아기를 탓하거나 원망하려는 의도가 담긴 건 아니었는데 무의식적으로 '때문'이라는 말을 쓰고 있었던 것. 이제 겨우 생후 70일을 갓 넘긴 아기. 그 어떤 상황도 아기의 잘못인 적은 없었다. 그저 아기도 나도 이 세상 속에서 새롭게 주어진 역할 모델에 충실히 적응해나가고 있을 뿐인 것을. '때문'이라는 단어가 얹히면서 왠지 말 한마디의 뉘앙스에 '원망'과 '짜증'이 담기는 것 같았다. ‘때문에’... 한 마디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순간, '이건 아니지!' 본능적으로 고개를 가로젓고 말았다.
아기와 함께하는 삶 속에서 가장 흔히 발생하는 변수는 요컨대 바로 이런 것. 새벽 두세 시, 다소 어정쩡한 시간대에 눈을 번쩍 뜨는 아기. '나 기분 좋으니까 엄마도 나랑 같이 놀자' 하고 말하는 듯 두 눈 가득 '방글방글' 함을 담고 있는 그 느낌. 쪽쪽이를 물리고 토닥토닥하고 나면 또 금세 잠들 것도 같지만, 아기가 마냥 예쁘기만 한 초보 엄마는 그 선한 눈빛을 뿌리치지 못한다.
연애 초기 남녀가 오묘한 썸을 타듯, 아기와의 설렘을 열정 다해 주고받는 새벽 3시. 아기의 왼쪽 손바닥과 내 오른 검지 손가락이 맞닿는 시간, 새벽 4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아기가 비로소 쌔근쌔근 잠들 무렵, 새벽 5시. 그렇게 새벽 시간대를 충실히 '엄마'로 보내고 난 뒤 대학원생 모드로 돌아가자니 숨이 차다. 아직 꼭두새벽인데 하루를 다 보낸 것만 같은 느낌. 이럴 때 나도 모르게 할 수 있을 법한 한 마디.
아,,, 아기 때문에
오늘도 밤잠을 설쳤어.
앗, 이런. 단지 '때문'이라는 두 글자 '때문'에 아기는 한순간에 원망의 대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어버리는 것만 같다. 부정적인 생각은 특히 전파력이 강한 법. 자꾸만 건강하지 못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타고 들게 만든다. 마치 이렇게 말이다. '너만 잘 자주 었다면 난 푹 자고 아침 일곱 시쯤 일어나서 상쾌한 느낌으로 대학원 과제를 시작할 수 있었을 거야', '결국 너의 잠투정에 내가 이토록 피곤한 거야', '아기 때문에 대학원 여름학기가 엉망이 되어버리면 어떡하지' 등등. 이건 아니잖아! 초보 엄마에게 육아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참 모순적이게도 아기는 세상 너무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1분 1초. 그런데 나도 모르게 이런 반갑지 않은 기운을 뿜어내려 한다니. 결국엔 '때문'이라는 단어의 문제다.
아,,, 아기... 때... 까지 몇 음절을 입 안에서 오물거리다가, 꼭꼭 씹어 잘 삼켜본다. 그리고서 졸린 눈을 비비면서 천천히 음미해보는 몇 마디의 마음들. "우와... 아기 덕분에 모두 잠든 새벽에 이토록 설렐 수 있다니!", "아기 덕분에 세상 이토록 '가득 찬 느낌'으로 행복하게 밤을. 새워보다니!”
때문과 덕분. 단어 두 음절을 바꿔 썼을 뿐인데 마음가짐은 확 달라진다. 우리 아들 덕분에 (밤잠은 설쳤음에도) 나는 새벽 다섯 시쯤부터 미라클 모닝을 열머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었고, 우리 아들 덕분에 (수면부족일지라도) 한가로운 새벽에도 누군가와 뜨겁게 소통할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 이건 정말이지 '반어법'을 활용해 비꼬려는 게 아니다. ‘덕분’의 마법이다.
'덕분'이 가져다주는 마법을 자꾸자꾸 되뇌며 기억해야겠다고 다짐한다. 한국이 아닌 타지에서 부모님 찬스 쓰지 않고 남편과 단둘이 해나가는 육아, 대학원 유학생활을 겸하면서 백일도 채 되지 않은 '아기아기 한' 아들을 키우는 날들. 앞으로의 순간들에 더 강도 높은 '힘듦'이 찾아든데도 '때문'보다는 '덕분'을 입에 자주 올리리라 마음을 다잡아둔다.
아기 때문에 내가 계획해둔 일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아기 덕분에 내가 생각하지도 못한 놀라운 시간들이 자연스레 찾아들고 있는 거니까. 네가 아니었다면 그저 그랬을, 따분하고 단조로운 내 삶이, 너 덕분에 경이로운 변수들을 마주하며 더 풍요로워지고 있는 거니까.
참! 깜빡했네
그리고 너 덕분에
이 글을 쓸 수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