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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Jul 13. 2020

"어떻게 생각해?"

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출산하고 난 뒤 가장 먼저 읽었던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가수 이소은의 아버지가 쓴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이 책의 도입과 결론에 이르기까지 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중요한 한 마디는 'Forget about it'. 가수 이소은 자매를 키워오면서 이규천 교수가 하나의 양육 철학처럼 일삼았던 말이었다. 자녀가 어떤 실수를 했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를 내보였을 때, '잊어버려'라고 경쾌하게 한 마디 던졌던 것.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지?"라고 앞날에 대한 부담을 쥐어준 것도 아니요, "어떻게 이럴 수 있니?" 원망스러움이 번진 말을 담아낸 것은 더더욱 아닌 쿨한 태도였다.


출산한 뒤 가장 먼저 읽은 책. 이규천 <나는 천천히 아빠가 되었다>. ‘잊어버려’ 한 마디에 담긴 육아철학이 스며있다



Forget about it


하나의 가훈 같기도 하고, 좌우명 같기도 한 이 말 한마디. 실제로 가수 이소은 씨가 미국 로스쿨에 재학하면서 난관을 경험할 때마다 그 험난한 산을 넘을 수 있었던 주요 원동력이기도 했다고. 듣고 있는 수업에서 좋은 성적이 나오질 않아 스스로도 혼돈의 시간을 겪고 있을 때, 아빠가 건네 준 명료한 한 마디 '잊어버려'.


이미 스스로가 펼쳐낸 상황에 대해서 고뇌하지도 자책하지도 말고 그저 묵묵히 나아가라는 것. 그리고 너는 그렇게 잘 모든 순간을 이겨내리라고 조용히, 요란하지 않게 믿어주는 마음이 이 짧은 말 한마디에 살포시 포함돼 있는 듯했다. 그리고는 들었던 생각. 나는 아기를 키우면서 그 어떤 통찰력 있는 한 마디로 아기에게 내내 속삭일 수 있을까. 'Forget about it' 만큼이나 짧고 간단하면서 깊은 뜻을 품은 주문 같은 한 마디, 어디 없을까.


가수 이소은의 로스쿨도전기가 담긴 에세이. 아빠의 Forget about it 한 마디가 얼마나 힐링포인트였는지 이야기한다



어떻게 생각해


100일 남짓 아기를 키워오면서 남편이 아기에게 가장 자주 건네는 말 중 한 마디. 아기랑 놀아주면서 장난스럽게 아기랑 대화를 나누다 보면 이 말이 꼭 빠지질 않는다. "엄마 오늘 예쁜 옷 입었네. 어떻게 생각해?", "엄마가 오늘 이렇게 쓴 커피를 또 마시려고 하네. 어떻게 생각해?" 언젠가부터 별 것 아닌 소소한 말 뒤에 꼭 이 말을 꼭 추임새처럼 붙이기 시작했는데 자꾸 쓰다 보니 지켜보던 나도 이 말에 정들어버렸다. 아기를 돌보며 남편 따라 저절로 가장 자주 쓰는 말로 자리 잡고 있는 것. "아빠가 오늘은 상추 색깔의 티셔츠를 입었네. 어떻게 생각해?", "아빠 다리 진짜 길다. 어떻게 생각해? 우리 아들 다리도 저렇게 길어질까? 어떻게 생각해?". 최대한 개구진 어조로 짧게 툭 던지는 한 마디. 우리 가족이 유행어가 된 느낌이다. 우리 아들은, 이 상황 어떻게 생각해?



늘 너의 생각을 진심다해 묻는 연습. 어떻게 생각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원 수업 때도 교수님들로부터 가장 자주 들어온 한 마디. 전공과 관련된 심화 지식에 대해 의견을 나눌 때는 물론이고, 스몰토크가 오고 갈 때도 상대방의 생각을 묻는 데 이 말은 참 중요한 쓰임새를 지닌다. 어떤 생각이 '당연한 것'이라고 정해두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너의 생각을 물어봐주니 참 배려심 깊다고 느꼈다.


출산 일정이 다가오면서 과제와 발표 스케줄을 조정하고 주제를 정하느라 교수님과 1대 1 상담을 자주 했었는데,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National Emergency 선포 이전) 모든 이야기가 '결론' 지점에 달하기까지 항상 내 생각을 꼼꼼히 묻고 그에 대해 방향을 찾아가는 방식으로 대화가 진행됐다. "이건 이러이러하단다. 내 생각은 이렇거든. 넌 어떻니?"가 아니라, 주제 도입부부터 "어떻게 생각해?" 한 마디가 대화를 이끄는 식.


“글쎄요. 제 생각은 말이에요.”


아기도 예외는 아닐 거다. 아직은 "어ㅁ... 마아아 아"를 희미하게 발음하는 단계. 하지만 발음이 점점 더 명료해지고 의사표현을 또렷하게 해 나갈 날들이 머지않았음을 안다. 지금 아기에게 '어떻게 생각해?' 장난처럼 질문하듯이, 이 주문 같은 말을 앞으로도 진심 다해 자주 쓰자고 어렴풋이 다짐해둔다. 우리가 대화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너의 생각이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내내 기억할 수 있게끔 말이다. 적당히 아기가 갈 방향을 정해두고 살금살금 "이거 괜찮지? 이게 좋지 않을까" 유도하기보단, 정말 호기심 가득 품고 '너의 생각'에 집중하는 물음표를 품자고 생각해둔다. "어떻게 생각해?"


소소한 질문 같지만 결국에는 너의 생각, 너의 존재를 깊이 배려해주는 한 마디. 어떻게 생각해.

네 진짜 생각이 궁금해. 네 마음이 품고 있는 그 이야기가 중요해. 너의 삶의 궤적을 하루하루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네 목소리를 내는 건 참 소중해. 그리고 그걸 엄마 아빠 둘 다 최대한 믿고 존중해주려 노력할 거야. 물론 타인에게도 이 물음표를 건넬 수 있는 연습도 꾸준히 해야겠지. 이 다섯 가지 포인트가 가득 담긴 진심 어린 한마디 '어떻게 생각해'. 책에서 보았던 '잊어버려'만큼이나 통찰력 있는 주문의 언어가 되었으면 좋겠다.


호기심 가득 품고
너의 생각에 집중하는 물음표


가훈을 정해야 할 일이 생긴다면 이 여섯 글자를 우리 가족 시그니처로 명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살포시. 종이로 가족신문 만들면서 가훈도 정해 오기 과제, ‘라떼’는 했는데 요즘 같은 세상에 이 숙제는 너무 촌스러우려나? 그렇다면 가족 웹진이나 가족 소셜미디어 계정을 만드는 아들의 과제가 있다면 이 한 마디를 가족의 Mission Statement처럼 새겨두어야지. 어떻게 생각해.


하루하루 일상을 꾸려가는 데 있어 네 생각이 모든 이야기를 꾸려가는 데 중요한 원동력이 된다는 사실을 늘 인지할 수 있도록. 세상 힘들고 짜증 나는 순간, 지치는 순간이 와도 결국엔 너의 생각을 딛고 다시 나아갈 수 있음을 몸소 체험하도록.


자, 이런 엄마의 마음,

어. 떻. 게. 생. 각. 해 ?


엄마는 밥보다 빵이 좋은데, 이거 어떻게 생각해?
슬슬 뒤집기도 시도할 때가 되었는데, 이거 어떻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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