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미국맘 성장기
국민 육아템이라고 불리는 놀잇감들이 있다. 아기 체육관이 대표적.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그려져 있는 패드에 아기가 등을 대고 누우면 아기의 눈이 맞닿는 곳에 동물 캐릭터 인형들이 올망졸망 걸려있다. 동시에 아기의 발은 미니 피아노 건반에 가 닿는다. 발로 두드리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일명 '뮤지컬 토이'. 아기의 시야 확장을 도와줄 수 있게끔 시선을 끄는 매력덩어리 인형이 걸려있으니 인지발달에도 도움될 테고, 건반을 신나게 두드릴 수 있으니 신체능력 발달에도 두루두루 좋을 게 분명하다. 누가 이렇게 똑똑한 아이템을 만들었지? 이 아이템만큼은 싫어하는 아기들의 거의 없을 것만 같다.
어머,
이렇게 귀여운 소리가 나네.
우리 아들 뻥뻥 잘도 차네.
아기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 때, 적절히 상호작용을 해주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상식적으로도 알 법한 이야기지만 다소 뻔하더라도 각종 육아서적에는 어김없이 이런 강조가 빠지질 않았다. 격려 아끼지 말기. 긍정적인 강화요인 Positive reinforcement 만들어주기. 자꾸자꾸 칭찬을 덧대주니, 남편은 어디에서 무슨 저널을 읽었는지 '칭찬보다는 격려를!'이라고 한 마디 덧댄다. 그래 뭐 맞는 소리네. 무조건적인 '잘한다'보다는 '더 잘할 수 있어'라고 한 발 더 앞서 나가 유도하고 격려 Ecouragement 해주는 게 중요할 테니.
우리 사자 친구 예뻐해 주자
우리 아들이
빨간 여우 먼저 손잡아 주자
요 며칠 가만히 나의 상호작용을 돌아보다 보니, 나는 이렇게 한 마디씩 덧대고 있었다. 아들이 아기체육관에 대롱대롱 달려있는 동물 캐릭터를 유심히 관찰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자주 튀어나온 말. "우리 아들은 노랑 사자를 좋아하는구나.” 만지작만지작 동물 인형에 손을 가까이 대면서 무언가 사물을 인지해가는 과정이 신기해서, 혹은 기특해서 자꾸만 또 다른 행동과 반응을 유도해 나간다. "사자 만지니까 친구가 좋아하네? 손으로 예쁘다고 쓰담쓰담 해주자. 우리 친구 하자고 손잡아 주자."
순간 멈칫. 생각해보면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나도 내가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닌데, 무심코 아들에게는 "먼저 손 내밀어 보자"고 제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인지발달을 이끌어가는 놀이의 일부였을 뿐이지만, 이 안에 은근한 암시가 들어있었던 것. 먼저 꽤 괜찮은 사회성을 갖추고 친해지기 위해 노력해 봐. 네가 먼저 다가서 보려 시도해 봐.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말을 건네면서 친밀도를 쌓아보렴. 그래 그렇게 인맥의 지평을 넓혀가보렴. 친목도모에 있어서 중심이 되어보렴.
물론 아기가 자라나면서 차차 '사회성'을 길러나가는 건 중요하겠지만, 어떤 역할을 하면서 그 관계에 참여해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엄마의 목소리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나는 무의식적으로 다가가 보라고, 손을 내밀 어보라고, 그렇게 사자도, 호랑이도, 여우도 친구로 만들어보라고 바삐 유도를 하고 있었더랬다.
때론 변두리에 위치해도 괜찮을 거다. 굳이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모임의 중심부에서 늘 나서 목소리 내며 주목받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뭐 어떤가. 때때로 가장자리에 위치해 있다가 통찰력 있는 한 마디를 그윽하게 던질 줄 아는 사람이 더 매력적일 때가 있다.
더불어 모든 사람과 다 '친구'하지 않아도 괜찮고 '친해지려'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 혼자의 에너지가 좋다면 내향적인 매일매일을 이어가도 행복할 수 있는 것. 왁자지껄 떠들썩한 무리에서 '친밀도'를 높이고 그 오고 가는 에너지를 중재하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마음을 믿고 맡겨둘 수 있는 사람들과 진중한 소통을 이어가는 일은 가능하다. 한 마디로, 모든 분야에서 인플루언서 (Influencer)일 필요는 없다는 것. 때론 아웃사이더 (Outsider) + 인플루언서 (Influencer), 이른바 아웃플루언서의 위치도 매력적이라는 것.
사자가 같이 놀자고 말을 거네?
오늘은 어때? 마음을 받아줄까?
같이 놀아볼까? 마음이 별로야?
앞으로 아들과 함께 놀 땐 이렇게 물어봐야지. "사자한테 친구 하자고 해봐. 우리 친구 예쁘다고 해주자" 제안하지 말고 아들의 성향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자고 마음먹어본다. “사자가 같이 놀자고 말을 거네? 오늘은 어때? 마음을 받아줄까? 같이 놀아볼까?” 마음이 어떤지 먼저 '물음표'를 던져보자고 가만가만히 생각해둔다. 그리고 이렇게 조곤조곤 속삭여야지. 고백하자면 엄마도 아빠도 말이야. 어느 누구에게나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친화력 갑의 자리보다는 은은하게 센 영감을 쥐고서는 주변부 영역에 서성이는 걸 좀 더 좋아하는 것 같거든.
가까이 마주한 인연과 반드시 꼭 친해질 필요는 없어. 모두에게 다가서지 않아도 돼. 대신 마음에 드는 관계, 함께하고픈 에너지가 있는 사람에게는 방긋 예쁘게 미소를 띄울 수 있는, 그 여유만 기억해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