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은 NO. 뭔가 남다른 '뉴노멀맘' 지향기
아기를 낳은 이후, 정말 100번도 더 들어온 말이 하나 있다. 연락이 닿는 사람들마다 꼭 빠지지 않고 하는 말 중 한 마디, 이 정도면 거의 출산 필수 인사말로 등극하겠지 싶다. "아기 잘 때 같이 잠을 자 둬야 해." 양가 부모님은 물론이고, 남편도, 한국에서 육아를 먼저 경험한 친구들도, 전혀 일면식도 없는 인터넷 카페의 육아 동지들도 같은 말을 노래하듯이 반복했다. 출산 뒤에 가장 힘든 건 '수면부족'이라면서... 아기가 눈을 붙이고 잠들 무렵에 같이 곁에 누워서 쪽잠이라도 청해야 버틸만하다면서.
아기 잘 때 꼭 잠을 자야 해
그래야 조금이라도 버티지
미국에서 출산하고 육아생활에 적응해온 지도 어느덧 넉 달. 왜 많은 이들이 아기 잘 때 '너도 자라'고 강조 또 강조했었는지 알 것만 같다. 아기와의 생활 속에서 가장 절실히 적응이 필요했던 건 '수면 생활'에서였으므로. 아기는 정말 잘 자기도 하지만 자주 깬다. 백일의 기적 비스무레하게 7시간 8시간 통잠을 자준 적도 '있기는 있지만' 매일 고정적으로 그런 시간표를 유지하진 못한다. 한밤중이라고 해도 서너 시간 자고 깨고, 또 먹고, 또 자고, 다시 으앵... 하며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는 패턴의 반복, 또 반복. 어제 내리 잘 자줬다고 해서 오늘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언제 또 깰지, 오늘은 잘 자줄지, 기약할 수 없기에 아기 눈치만 살피고 있다 보면 엄마 아빠는 결국 수면부족을 호소할 수밖에. 그러니 잠정적인 정답은 바로 그것. "아기 잘 때 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창 시절부터 직장생활 내내 제법 모범생으로만 살아온 나인데 육아에 있어서만큼은 자꾸 딴지를 거는 나. 백일 남짓의 시간 백 번도 넘게 들어온 말이면 "아, 네 그럼 그럼요" 끄덕거릴 진리를 자꾸 거부하고 있는 요즘 되시겠다. 간단히 말해, 아기 잘 때 ‘안’ 자고 있다. 아기도 쌔근쌔근, 축구하다가 지쳐 돌아온 소년처럼 세상모르고 자고 있는 시각, 남편도 드르렁드르렁 꿀잠 들어있는 그 야심한 시각에 난 왠지 잠들기가 싫다. 정확히 말하면 잠을 청하기가 정말이지 아깝다. 그래서 요즘 같은 여름날, 여름밤 속, 난 한밤중 '수면 거부' 증세가 늘었다.
불면증은 아니다. 이른 저녁 남편이 아기랑 놀아주고 있을 무렵, 미리 잠을 자두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 대신 두 사람이 잠든 시각에 역으로 일어나 그 고요한 '새벽시간'을 돌연 내 세상으로 만든다. 대개 아기가 저녁 8시-9시 무렵 하루의 마지막 식사를 마치는 편인데 분유 라테 5온즈 정도를 꿀꺽꿀꺽하고 나면 다음 텀은 새벽 3시쯤 찾아든다.
아기의 저녁 일상은 남편이 돌봐주는 스케줄. 이때 미리 잠을 자둔 나는 새벽에 아기가 깨어 배고픔을 호소할 무렵, 부스스 일어나서 맘마를 챙겨주고 아예 깨어나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분유를 먹다 잠든 아기를 토닥토닥 해 가면서 다시 재우고 난 뒤엔 비로소 '엄마만의 세상'. 아들도 남편도 좀처럼 쉽게 깰 것 같지 않은 코골이 소리를 뿜어내고 있으므로 뭔가 조급할 것 하나 없는 편안한 여백. '아기 잘 때 너도 자 둬야 해' 종종 잔소리 같다고도 생각한 우려와 격려 섞인 토닥임의 말들에서 반대 지점으로 가고 있는 새벽녘의 풍경.
마음껏 책을 읽어도 좋고, 밀린 생각 정리를 해두기에도 제격인 시간. 새벽 3시, 새벽 4시로 찬찬히 넘어가는 그 느낌이 너무도 좋다. 이렇게나 나만의 시간, 나만의 공간을 선물해주는 '새벽'을 포기할 수는 없지. 수면부족으로 인한 식욕과다와 다크서클이 날 음흉하게 엄습한대도 놓치기 아까운 고결한 호흡의 순간. 이러다가 정오쯤 되어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까무룩 졸아버린다고 해도 그땐 그때의 따분한 낮시간이 감당할 몫. 새벽은 나만의 세상으로 즐겨줄 테다, 작정한 육아맘의 소박한 다짐.
아기 잘 때 너도 자 둬야지
왜 안 잤어
잠 부족하면 피곤할 텐데
참 다행이다. 서너 시간만 자도 잘 버텨주는 나라서. 한창 방송국에 입사지원서를 낼 때 “잠이 너무 없어서 피부가 안 좋아질 위험이 있어요"를 장난스레 나의 단점으로 호소하던 나라서. '아기 잘 때 엄마도 자야 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보란 듯이 뻣뻣하게 어기고 나만의 길을 갈 수 있는 나라서.
새벽 3시부터 넉넉잡아 오전 8시까지, 그러니까 남편과 아기가 몸을 뒤척이며 새로운 날을 시작할 준비를 ‘바스락바스락’ 하기 직전의 무렵까지 나는 '내꺼'가 된 시간 속에서 반갑게 '내꺼'가 되었으면 싶은 일들을 차분히 해낸다. 무려 5시간이나!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밀렸던 영어공부도 다시금 하고, 때론 과거의 생각을 되짚기도. 3, 4년 뒤의 일상을 상상하기도. 새벽녘 돌연 주어진 여백의 시간을 찬찬히 내 색깔로 물들여 나간다. 그렇게 하루하루의 새벽이 쌓여가고 있다.
아기 잘 때 전 '안' 잘 건데요?
단 한 가지 부작용은 자꾸 간식 욕구가 는다는 것. 새하얀 새벽에 깨어나 내꺼인 시간들을 꼬깃꼬깃 꺼내 엮어 가다 보면 참 눈치 없게 '꼬르륵' 소리. 배가 고프다. 이 새벽에 혼자 야식을 먹으면 가뜩이나 Stay Home, 집콕 일상에 확찐자 되는 건 시간문제일 텐데... 고민하다 쓰디쓴 커피나 한 잔 더 내려마시기. 그러다 보면 눈은 자꾸만 더 또랑또랑해지는 새벽. 서른 다섯 남편과 이제 막 110일 차 아기의 코골이 화음을 리듬 삼아 내 새벽을 나만의 리듬감으로 연주해가기. 네. 아무리 애정 섞인 잔소리 하셔도 저는 오늘도 똑같을 거예요. 저만의 새벽 힐링을 포기할 수가 없거든요. "아기 잘 때 전 '안' 잘 건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