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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A하는 아나운서 Aug 24. 2020

'몸 사리는' 타국 육아

평범함은 NO. 뭔가 남다른 '뉴노멀맘' 지향기

연습만이 살 길이다. 대학교 3학년 때 아나운서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부터 늘 친구처럼 따라다녔던 글귀 하나. 2007년, 그 무렵부터 책상에, 다이어리에, 컴퓨터 바탕화면에 늘 적어두고 있던 문장. '최종 합격'에 다가서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요소와 자질이 적재적소에 나타나야 할 텐데, 늘 내신형 책상머리 공부에만 익숙했던 나는 실무 뉴스 리딩이든, 프로그램 진행이든, 혹은 그 어떤 장기자랑이든, '연습'을 열혈 반복하는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저렇게 연습해야지' 마음만 먹지 말고! 거창하게 계획만 세우지 말고! 정말 훈련에 훈련 거듭하기. 그 말은 늘 진리였다. '연습만이 살 길'이라고.


아기에게도
연습만이 살 길이야


아나운서에 최종 합격한 24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도 쭉... 내 20대 전반을 좌지우지했던 이 중요한 문장을 아기에게도 꺼내 들게 될 줄이야! 만 4개월을 넘기고 이제 5개월 차에 접어든 아기가 벌써? 싶겠지만 실제로 요즘 우리 아기에게 가장 빈번히 건네는 한 마디. "연습만이 살길이야!"


너에게도 ‘연습’이 필요해.

발달단계 순서에 맞춰 131일 차, 애써 뒤집기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휘리릭 쉽게 넘어가진 않는 모양새. 엎드린 자세보다는 여전히 누워 지내는 게 편하고 좋은 아기. 그렇다 보니 거북이 자세, 혹은 고양이 자세로 으쌰 으쌰 등근육과 목 근육을 길러내는 훈련을 조금씩 해둬야 한다. 앞으로 차차 기어가고, 또 앉고, 일어서기 위해서 꼭 거쳐야만 하는 필수 단계. 일명 배밀이와 친숙해지는 '터미 타임' 훈련이다.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몇 분 동안 있자니 금방 울상이 되기 마련이지만 때론 제법 엄하다 싶은 특훈이 필요하다.

누워있는 게 너무나 편하기만 했던 날들. 뒤집기 싫다고요.


사실 나는 '터미 타임' 훈련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뒤늦게서야 깨달은 초보 엄마. 때가 되면 자연히 알아서 뒤집기도 기어 다니기도 잘하겠거니, 내심 믿고만 있었다. 한데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또래 아기들이 진작에 뒤집고 때때로 길 듯한 발달 양상을 보이는 걸 깨닫고 살짝 조바심이 나기 시작. 마침 4개월 검진 때, 아기의 담당의도 아기가 엎드린 자세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좀 더 도와줘야 할 것 같다고 조언을 했다. 아기의 '끙끙거림'을 감수하고서라도 터미 타임을 과감하게 연습해야 한다는 이야기. 이제는 더 물러설 곳이 없다. 아기가 힘들까 봐, 혹시나 뼈나 근육이 삐끗할까 봐, 가슴 졸이며 아기의 편의만 봐줬던 태도는 이제 안녕. 매일 20분씩은 아기와 함께 꼬박꼬박 터미 타임 연습을 해보자고 작정했다. 힘들어도 불편해도 어쩔 수 없어. 연습만이 살 길이야.


진작에 연습 좀 시킬 걸
이게 다 타국 육아 때문이야


미국에서 육아하면서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 자칭 '몸 사리는 육아' 되시겠다. 타국살이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 중 하나는 가족 중 누군가 '아픈' 상황이 생기는 것. 물론 아기가 태어날 당시부터 믿을만한 보험에 안전히 잘 가입되어 있기에 병원 진료를 받는다고 해서 천문학적 비용이 마구 청구되는 건 아니다. 이슈가 있다면,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병원에 가서 해결하면 될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시스템에만 마냥 익숙한 초보맘이기에 예상 밖의 변수는 가능한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


그러다 보니 육아에 있어서도 몸을 사린다. 최대한 '해보지 않은' 도전을 최소화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날들. 신생아 시절부터 조리원에서도 시도한다는 아기 수영을 80일 차가 넘어서야 해보는가 하면, 유모차 태워 나들이 나가는 것도 100일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에서야 실천. 터미 타임도 짐짓 피하고 싶었던 영역 중 하나였던 것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테지만 아기를 '엎드려 있게' 하는 건 내겐 너무나 겁나는 미션. 연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연습시키는 게 무서워서 그저 피하고 싶었던 거다.

터미타임 연습을 위해 장만한 특훈 아이템.


목표치에 도달하기 위해 20대 내내 내 곁에 머물게 했던 표어를 '육아'에 다시 쓰게 됐다. 딱히 비책은 없다. 별 수 있나. 그저 연습만이 문제 해결의 돌파구.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걱정하지 말고 말만 하지 말고, 그저 입 다물고 연습하면 그만이다. 연습에 연습하다 보니, 공채에 합격할 수 있었듯이, 여러 번의 연습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언젠간 해야 할 미션을 보란 듯이 해내고야 말겠지. 저절로 짠, 그럴듯하게 이뤄지는 일은 굉장히 희박하니까.


스스로 뒤집고 잘 기어 다니기 위한 탄탄한 사전작업. 특훈이 조금 늦기는 했지만 조급해하지 말기. 조마조마해하지 말기. 조심스럽다고 해서 도전 피하지 말기. 아기도 연습이 필요하지만 엄마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걸 절절히 체감해버렸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 살고 있지만 겁먹지 않는 연습, 한국에서만큼 소통이 편하지는 않지만 늘 용기 내서 부딪치는 연습. 너의 발달과정에 부단히 적응하기 위해 함께 나아가려는 연습. 그래 오늘도 연습만이 살길이야. 아들! 오늘도 내일도 연습하자꾸나.


나도 잘하고 싶은데 어떡해야 하죠?
언젠가는 스스로 더 잘 뒤집을 수 있겠지. 연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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