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아름답고 푸른 신경다양성 세계
아나운서 시절, 바람 불면 날아갈 듯, 부서질 듯한 체구로 무난히 직장생활을 해왔다. 40킬로대 초반으로, 아니 해외출장 한번 다녀올 때면 39킬로그램 대까지 뚝 떨어지기도 했던 야리야리했던 1인. 엄마가 되고 나니 두 아이를 번쩍번쩍 잘도 안아가며 혼자 들데리고 외출? 끄덕 없이 잘도 해낸다. 취미는 혼자 둘 데리고 외출하기요, 특기는 혼자 둘 데리고 외출해서 둘 다 재밌어 죽겠다는 지경으로 업텐션 만들기 되시겠다.
두 살 터울 남매를 혼자 데리고 나갈 때 가장 염두에 두는 포인트는 '오늘은 둘 다 어떻게 웃겨주지? 정도. '오늘은 애둘, 뭘 해먹이지?', '다음 달은 애들 각각 하원 후 스케줄 어떻게 짜지?'에 착실히 대답을 축적해 나가야 할 텐데, 나는 둘을 만족시킬 유머코드를 찾아 어슬렁어슬렁 헤매곤 한다. 공통된 웃음을 자아내려는 데 집착하는 엄마, 바른생활 엄마이고 싶지만, 왠지 나 불량엄마인가... (반성부터 살짝 해보고 이야기를 이어 보도록 하지요.)
신경다양성 아이, 그리고 신경다양성으로 태교한 아이를 키워간다. 임신했을 때 한창 ABA 수련을 달렸으니, 뱃속에서부터 신경다양성 언니오빠들의 몸짓과 소리를 끊임없이 느껴온 둘째다. 육안으로 두 아이의 신경회로를 적나라하게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아마도 회로의 구조하며 색채, 흐름 등등 모양새는 각각 그 결을 달리할 것이다. 나는 각기 다른 회로를 가지고 있을 두 아이가 ‘함께 좋아하고 흥분하고야 마는' 포인트를 찾을 때, 그때의 쾌감에 적잖이 흥분한다. '다른' 아이가 '같은' 것에 눈을 두고 '같은' 호감을 가지며 '같은' 관심사에 눈을 마주치며 서로의 들뜬 기분을 나누는 타이밍. 생각만 해도 '이거지!', '옳거니!' 웃음이 터진다. 신경다양성 세계에 사는 아이와 신경다양성의 문을 두드리는 아이와 함께 살아내는 최대의 재미다.
두 아이는 자동차를 참 좋아한다. 사실 오빠가 먼저다. 2년 선배가 좋아하니, 당연히 후배도 따를 수밖에. 서로 향하는 방향을 달라도 결국 한 지점에서 엇갈리고 부딪치고, 그러다 까륵까륵 대고. 너희도 웃고 나도 웃고. 빠방만 있다면 너희와 어디에서든 행복해질 수 있지.
꽃을 쓰다듬는 손길은 첫째도 둘째도 정겹기 마찬가지. 자연 앞에서 둘은 발달의 느림과 빠름을 논할 필요가 없다. 꽃을 매만지며 무한정 웃고 웃고 또 웃는 데는 둘 사이 그 어떤 발달의 격차도 없다. 그 앞에서 한참을 쪼그려 있고, 다리 저린 줄도 모르고 그 파릇파릇한 초록의 기운을 받아내는 둘다 그야말로 '순수'의 끝판왕이니까.
책이든, 장난감이든 관심사가 다양하게 나뉠 공간에 데려갔는데, 신기한 순간이 있다면?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 가서 따로 흩어질 것만 같지만, 둘은 계속 근거리를 유지한다는 것. (야, 너네 서로 다른 거 좋아하는 거잖아. 오빠는 헬로카봇이고 동생은 주니토니잖아) 그렇다고 서로 사이좋게 붙어만 지낼 것도 아니면서. 어깨동무라도 하고 너 하나 나 하나 할 만큼, 도란도란 알콩달콩한 녀석들도 아니면서, 보이지 않는 끈이라도 엮어둔 것처럼 둘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켜보고 따라 하고 한 번은 양보도 했다가 또 한 번은 절대 안 뺏긴다고 힘을 주었다가 난리부르스를 춘다. (얘들아, 그냥 따로 놀아도 돼!)
이래서 핏줄은 단단한가. 서로가 엮인 것처럼 차차 다른 사람들도 그 매듭에 합류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굳이 '사회성 그룹' 프로젝트에 넣지 않아도 실타래에 고리 걸어준 또 다른 동반자들이 '핏줄의 힘'이 아니라도 불쑥불쑥 등장해 주는 그날을 가만히 꿈꿔보는 풍경.
둘은 카페놀이를 좋아한다. 엄마는 스타벅스를 좋아하고, 아빠는 엄마를 위해 기꺼이 스타벅스 커피셔틀을 자처하니 둘은 역시 우리의 아들딸들이 맞다. 아이들 데리고 별다방 콩다방 착석해서 오래도록 머무는 게 가능할 수 있냐는 물음표도 종종 받지만, 그게 너무나 당연히 가능해서 감사하는 날들.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인생 2년 차와 4년 차도 카페 참 잘 즐긴단 말이야. 그래 맞아. 카페에서는 종종 창밖도 내다봐주고, 구름 한번 쳐다봐주고, 또다시 고개를 테이블을 향해 내리꽂고 제 할 일도 해보다가 그렇게 무심히 흐름 타면 되는 거거든.
그러나 무엇보다도 24시간 일상 속에서 무엇보다 둘이 가장 좋아하는 건 엄마 약 올리기. 이때만큼 대동단결하는 순간이 있을까. 혼자 둘 데리고 나갈 때면 둘은 땅바닥에 마주 보고 주저앉아, 엄마 표정이 일그러질 때까지 꺄륵꺄륵 깔깔깔깔 쉼 없이 웃어대곤 한다. (이 녀석들아, 빨리 일으느라아아아!)
행동분석가로서 어른의 지시를 순조롭게 따르게 하려면 어찌해야 하는지, 이 순간을 강화하지 않으려면 어떤 전략을 써야 할지, 머리로는 빠삭하더라도 하필 이때 발동하는 '유머 코드'. 애들 더 웃게 해주고 싶어서 더 안달이 난 척도 하고, "아 어떡해애애애" 더 삐친 척을 해가며 남매의 꺄륵꺄륵에 한 뼘 더 흥을 돋아준다. 때로는 치료사이기보다는 그냥 신경다양성 세계의 큰 우주에 살고 있는, 두 아이와 그 우주를 씩씩하게 돌아다니는 '엄마'인 순간에 기꺼이 조금 더 힘을 실어볼 때가 있다.
아이들이 향하는 발걸음을 뒤에서 사뿐사뿐 쫓아가며, 나는 그 우주에서 홀연히 에너지를 충전해 가고있다. 신경다양성의 세계에서, 신경다양성의 문을 끊임없이 두드리는 세계에서 그 두 세계를 왕복하는 여정을 매 순간 가을 아침 산책하듯이 가벼이 즐겨본다. 이 산책에 동행하시라고, 당신도 이렇게 두 사이를 열심히 오가기를 권하려고 이토록 매일 또박또박 적는 것은 아니다. 그냥 이 세상 걷다보면 결국 이 예쁜 풍경들을 오가게 되는, 그 어떤 힘이, 기회가 있을 거라고 잠잠이 믿어본다. 나도 그렇게 이 세계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