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2)
달라도 너무 달라, 한국 vs 미국
핑크빛으로 물든 자리. 한국에서 지하철을 탈 때면 언제나 꼭 마주하곤 했던 임산부 배려석. 아무래도 미혼 일상을 살고 있을 땐,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두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 뿐. 그 자리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해서 아주 깊이 이해하진 못했다. 모든 일이 그렇다. 내가 '당사자'가 아니면 감각이 실로 무뎌진다. 종종 무심히 그 자리에 앉아 심드렁히 졸고 있는 아저씨, 편안히 수다를 나누는 아주머니들의 태연한 모습에 화가 난 적은 많았지만, 그로 인해 임산부 당사자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지, 피곤했을지, 깊은 생각에 다다르진 못했던 시절이었다.
뚜벅이 대학원생이다 보니, 월화수목 수업이 있는 날, 학교에 갈 때면 늘 전철을 타야 한다. 보스턴에선 T라는 명칭으로 통한다. 레드라인, 오렌지라인, 그린라인, 블루라인이 있고, 난 서울 지하철의 2호선과도 꼭 닮은 듯한 '그린라인'을 주로 타고 이동한다. 통근 시간대만 피하면 앉을 자리는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서울 전철과 달리 열차 한대의 길이가 상당히 짧은데 대신 역을 지나쳐 가는 빈도가 꽤나 잦다. 한 대 놓쳐도 1분 뒤에 곧 쓰윽요란하지 않게 선로로 또 다른 열차가 들어와주니까 오예.
하지만 출퇴근 시간대가 겹치면 지옥철이 따로 없다. 서울 전철 다를 게 없다. (미국의 경우, 6시 칼퇴근 라이프가 아니다 보니, 보통 4-5시대 전철이 최악이라고 보면 된다. 출근 시간대는 7시-8시로 한국과 비슷) 시간대를 잘 못 만났다 하면 체력훈련받고 온 것처럼 너덜너덜 녹초가 되어버린다. 손잡이를 잡기도 힘들고 문에 간신히 들어와서 옆 사람 등에 의지하고 넘어지지만 않아도 다행인 시간. 겨우겨우 시간 맞춰 타기만 해도 적당히 버티고 서서 견딜만 했었는데 임신하고 난 뒤, 전철은 때때로 공포로 다가오곤 했다.
무조건 앉을 자리부터 찾기. 임신하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라면 바로 이 마음가짐이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앉아있거나 어디 기대어 있는, 소위 '늘어져있는' 몸짓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전철을 타면 늘 입구 근처에 서있는 게 습관이었던 나였다.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도 웬만하면 앉지 않던 게 내 성향.
280일의 귀한 여정을 펼쳐야 하는 예비맘에겐 절대 해당될 수 없는 얘기였다. 공공장소에서나 학교에서나 자리가 있다면 일단 무조건 앉아야 한다. 적당한 운동은 필수라지만, (운동은 좀 더 편안해지면 따로 할게요) 워낙 말랐었던 신체조건 탓일지, 체력이 약했던 탓일지, 석사 시절의 무거운 책꾸러미와 노트북까지 얹어들고 계속 '서있기'가 꽤나 부담이 된다. 어딜 가나 '자리 찾기'에 혈안이 된 내 스스로가 짐짓 눈치 보일 때도 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앉는 건 정말이지 중요하다. 임산부, 진짜 힘들다.
문제는 출퇴근길 지옥철에서다. 보스턴에는 '임산부 배지'라는 게 없다. 이 제도라도 있는 한국이 부럽다. (물론 배지를 달고 있어도 자리를 양보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례를 듣고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좌절하기는 했지만.) 임신 중기에 접어들었으나 아직 가지 몸은 거의 티가 나질 않는다. 오히려 초기 입덧이 너무 심해 원래 유지하고 있던 체중에서 4킬로가 넘게 빠졌었고, 겨우 그 몸무게가 다시 돌아온 정도의 수준. 워낙 마른 몸에서 의도치 않은 '입덧 다이어트'까지 강제로 하고 나니, 굳이 말하지 않는다면 30주에 임박해도 아마 눈치채지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낯선 타인들 틈에서 '누군가가 임신했는지'를 여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란 사실상 없다. (게다가 한국과 달리 이곳은 상대적으로 더 다양한 몸매의 소유자가 너무나 많은 지라) 겨울이 임박한 시점, 코트 입고 목도리까지 두르면 사실상 표가 전혀 나질 않는다. 배라도 볼록 나와서 실컷 티라도 낼 수 있다면 조금 더 배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아쉬움이 든다. 임산부 배지나 스티커 붙일 수 있다면 더 좋았겠고. 너무나 힘겨웠던 초기는 지났으나 날이 갈수록 살이 빠져서 체력이 더 저하됐던 시기엔 이곳의 전철이 더 절망, 그 자체였던.
"저기, 미안한데...
나 임신했고,
너무 힘들어서 그러니
자리를 양보해줄 수 없겠니?"
아무리 당장 쓰러질 것 같고 힘들어도 보스턴 지하철에 탈 때마다 낯선 외국인들에게 이 한 마디를 던지기엔 솔직히 좀 머쓱하다. 말하지 않으면 배려받을 수 없겠으나, 딱히 말할 용기도 나질 않는다. 그건 내 나라 한국에서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지만. 이곳 역시 노약자 배려석, Priority Seats는 마련되어 있지만, 역시나 대부분 무심해보였다. 개인적인 도리상 때때로 먼저 일어나서 양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뭐 역시나 심드렁히 그 자리를 독차지하고 앉아서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이곳도 많았다.
한 번은 그럭저럭 자리 여유가 있는 전철에 올라탔는데 앉기 좋은 빈 자리 몇 개가 눈에 띄었다. 올라타는 사람과 미처 내리지 못해 급하게 서둘러 내리는 사람들과 부딪치다 보니 결국 여유롭던 자리들마저 하나 둘 차는 상황. 그 가운데 고맙게도 한 외국인 남성이 핸썸하게 앉으라고 자리를 내줬는... 데. 그 사이를 툭 치고 들어와서 떡. 차지하고야 마는, 누가 봐도 한국인 남성. 아무리 봐도 내 또래 비슷한 유학생 같은데 무심히 핸드폰 메시지를 돌리다가 모바일 게임에 접속한다. 아, 이렇게 얄미울 수가 있나! 과제 페이퍼 더미와 참고서적, 노트북 한 짐을 지고 앞에 선 나는 그저 한숨 쉬며 멍하니 그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를 탓만 할 수만은 없다. 일단 내 행동이 다소 느렸고, 그는 내가 힘든지 몰랐을 거고, 특히나 힘들어서 당장에라도 주저앉고 싶은 임산부인지 더더욱 몰랐을 거고, (알았대도 양보할 마음이 없었다면 할 말이 없지만), 괜히 힘들었던 마음에 자리를 놓친 억울함이 뒤섞여서 그저 입을 삐죽 내밀고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차가운 쇠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 여전히 그 '얄미움' 한 가득에 뒤돌아서 해보는 소심한 한풀이.
만약 한국에서 지내고 있었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낯선 타지에서 이방인이자, 임신 티가 나지 않는 몸으로 임산부의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한국이었다면 이 고단함이 조금은 줄기는 했을까. 좀 더 배려받고 이해받을 수 있었을까. 분홍색 임산부 배지를 거머쥐고 최대한 있는 힘껏 존중받아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걸 알고도 애써 모른 척하는 심드렁한 시선 속에서 더더욱이 분노하다가 포기하고 좌절하고 말았을까. 분홍색으로 물든 자리에 당당히 앉을 수 있었을지, 아니면 앉아도 되는 그 자리에 앉아서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고 있지는 않았을지 물음표를 품게 된다.
얼마 전 한국 기사를 통해 한국의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을 비워달라는 민원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제도 도입 초기 때만 해도 좀 낯설지만 점차 잘 정착되겠지 싶었는데, 굳이 그 자리에 무덤덤히 앉아계신 분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접하면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심지어 "임산부도 운동해야지" 하면서 비켜주지 않았던 사람이 있었단 이야기를 듣고 험한 소리가 나올 뻔했다. 임산부만을 위한 배려석, 그 개념 자체가 없는 보스턴 지하철과 비교한다면 정말 손뼉 칠 만한 훌륭한 취지의 자리인데 왜 존중받고 이해받지 못하고 있는 걸까. 왜 색깔만 독특한 그냥 그런 '분홍'자리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간 모르고 흘러온 시간 속에서 내 곁에 지금의 나처럼 지쳐가던 임산부들은 얼마나 많았을지. 그 고단한 시선들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차곡차곡 쌓여왔을지 궁금하고 미안해진다. 임신한 몸, 나 하나를 감당하기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나중에 출산 이후 아기와 함께 지하철을 탈 일이 생긴다면 또 어떤 배려를 기대하게 되고 또 그 속에서 속상해하게 될까.
이 글을 마무리 짓고 나서 학교 도서관을 나서 오후 5시쯤 보스턴의 지옥철을 또 경험할 예정이다. 나는 오늘 그린라인 속에서 운 좋게 자리에 앉을 수 있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맘 편히 포기하고 손잡이에 매달려가는 상황에 깊이 적응해야 하는 걸까. 어떤 상황이 주어지든 아기는 무사히 안전히 맘 편히 함께 지하철에 탑승해주고 있기를 바라본다. 그렇게 280일 중 반절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