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에 중독되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다. 그것은 물질일 수도 있고, 생명체일 수도 있고, 더러는 추상적인 개념일 수도 있다. 카페인, 니코틴, 알콜. 물질의 대표적인 예다. 연인, 가족, 친구, 그리고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36.5도의 온기를 발열하는 것들이다. 사랑, 분노, 질투, 욕망, 이상.. 눈으로 볼 수도, 손가락 지문으로 결을 훑을 수 없는 형체 없는 개념들이다.
나는 단언컨대, 위의 세 가지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모든 것들, 밤거리 솟대처럼 비죽 솟아 까묵까묵한 어둠을 받치고 있는 빌딩들 마다 점멸하는 불빛처럼 매혹적인 존재들에 중독되어 본 화려한 전적이 있다.
어슴푸레 밝아 오는 새벽녘에 느끼는 감정은 우스움이었다. 중독도 식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비식비식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에. 쾌락과 번들거리는 비애마저 초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우스운 결말이 실없는 웃음을 자아냈다. 혹자는 '질린다'라고 표현하기도, '권태'라고 무정하게 두 음절로 뚝 끊어 얘기하여도 하는 그 추락하는 감정 얘기다.
중독은 중독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튀어 올라 약동하지 못하는 신경질적인 잔잔함 속에 유일하게 약동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살아 있다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 잠시 시선을 판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에 빠져들었을 때 흔히들 '취했다'는 묘사를 끄적인다. 자신이 얼마나 특정 대상에 골몰해있는지를 표현하기 위한 으스댐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취한다는 말은 그 '취기가 깨나는' 또 다른 국면을 동전의 양면처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취할 때 모름지기 그 알량한 살얼음판이 녹아내리고 부식되는 순간을 내다보아야 한다. 시작과 끝이 무정하게 등을 맞댄 채 걸어온다. 영원하지 않을 동전 던지기를 끊임없이 계속한다. 이번엔 앞면, 다음엔 뒷면, 그다음엔 또다시 뒷면.. 빈 공터에 짤그랑 거리며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만 남을 때까지 동전 던지기를 멈추지 못한다. 푸르게 식어가는 혈액의 온도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아쉽다는 듯 아랫입술을 축이면서.
세상의 모든 것들이 뜨거운 아메리카노 같을 수 있다면. 마음도 그럴 수만 있다면. 처음 같은 풍미를 유지할 순 없겠지만 전자레인지에 요령껏 돌리면 다시 처음과 같은 온기는 되돌려 놓을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라면. 나의 중독 증상은 좀 더 오래 지속될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