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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rain D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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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un 21. 2019

밖에선 밤비 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꼭 이런 밤이었지비."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할랑이는 관솔불이 오선의 콧날을 따라 미끄러지듯 노리끼리한 잔영을 만들어 비추고 있었다. 

 "집 한 채를 꿀떡하고도 고 적귀놈 아가리가 닫힐지를 모르는기라. 하, 장관이지. 제이기! 새벽부텀 밤비는 부슬부슬 흩날리는데 도무시 꺼지지를 않는거여. 그 불이."

 술상 위에 빈 술잔을 탁 소리 나게 내려놓으며 오선은 꽉 쥔 주먹으로 입가를 훔쳤다. 알싸하게 술기운이 뻗쳐오는 모양이었다. 

 "머라 씨부리쌌노. 취했으면 자라 고마."

 "니 내 말 제대로 듣고 있나? 그게 말이 된다 생각하나? 그기이 요물인기라. 불이 아니라, 화마였다! 화마!"

 오선은 또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어 새삼스레 지분거리는 것이었다. 그것도 벌써 십수 년 전, 밤새 내린 비에도 꺼질 줄 모르고 활활 타오르며 동네의 집 두어 채를 더 집어삼켰던 화재 사건에 대한 기억을 바로 어제 일인마냥 눈알에 시뻘겋게 핏발까지 세우고 술 상에 남은 안주 위로 침까지 튀겨가며 흥분하고 있었다. 퍼붓는 빗속에서도 기름이라도 끼얹은냥 더욱 기세 좋게 타들어가는 불을 보며 새벽에 맨발로 뛰쳐나온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것은 불이 아니라 한이다, 한恨. 마음이 타들어가는 기라. 동네에서 젤로 나이 많은 할매는 섦 게 울며 뇌까렸다. 불쌍해서 어쩔꼬. 딱해서. 

 밤비 아래 폭삭 젖어들어가는 것은 집이 아니라 사람들 마음이었다.  

 "고거사 야문 놈이지. 야문놈이야. 암만 그래싸도 지를 거둬준 식솔들을."

 이가네 집에서 거뒀던, 아니 장날 장터에서 주웠던 거지 놈이 그만 새벽께에 불을 놓고 휑 달아나버린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그 일을 두고 이가가 지난날 조강지처를 모질게 소박 놓았던 벌을 받은 게라고 수군거렸다. 

 "허, 그래도 예닐곱밖에 안됐던 노마가."

 버럭 화를 냈다가도 어느 틈엔가 홀로 히죽거리며 얼마 안 남은 술병을 기울여 잔을 채우는 오선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점무가 마지못해 맞장구를 친다.

 "어째 불을 놓았으까. 그것도 하필 비 오는 날 밤에."

  킬킬대는 오선의 웃음소리가 적막 가운데 울려 퍼졌다. 

 "배속에 아아가 한 명 들어있었다든데."

 술병을 흔들어 보던 오선은 방 쪽 저 구석에 빈 병을 휙 집어던지며 다시 웃음을 문다.

 "그때, 뱃 속에 아아 한 놈이."

 기억해라.

 너는 기억해라.

 나 또한 죽어서 육신은 흩어져도 원망은 굳게, 굳게 붙잡을 터이니-. 

 내 살아도 죽어도 이가네를 반드시-.

 "제이기! 새벽부텀 밤비는 부슬부슬 흩날리는데.. 도무시 꺼지지를 않는거여.. 그 불.. 그 불이...!"

 오선은 흉측하게 일그러진 왼손 바닥으로 제 얼굴을 훑으며 넋 나간 이처럼 실실 웃음만 흘린다.

 "불이 아니라 화마였다. 화마..."

 밖에선 밤비 오는 소리가 한층 또렷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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