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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Nov 12. 2019

COWS_02화

02.

 분명 어제저녁까지 한국인 팜워커 사이에서 호주 워홀 라이프의 롤모델과도 같았던 석철 형은, 거대한 두 개의 빵 같은 J와 D 사이에서 피클처럼 보잘것없이 쪼그라들어 있었다. 형은 종종 한국인 워커들만 모아놓고 소주잔을 비우며 자신의 무용담을 안주 삼아 구성지게 늘어놓고는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나는 너희와 같은 작업장에서 노역하고 있어도 같은 급의 인간은 아니다’라는 것을 역설하는 것처럼 때로 비장해 보이기까지 했었다. 석철 형의 이야기를 듣던 고국 동포들의 눈은 평소보다 유난히 반들거리곤 했다. 《정말 대단해요.》 그들이 찬사를 내뱉는 대상은 석철 형이 아니라 그의 수중에 모인 돈, 그의 명의로 계약된 도시의 플랫이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진 않았다.

 「Fuckin’ useless bobby calves.」 놈들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형을 보고 중얼거렸다. 새끼 수소 Bobby Calves는 수태하거나 우유를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농장에서 가장 쓸모없게 취급당하는 존재였다. 

 「Move!」 둘은 전기충격봉을 휘두르며 석철 형의 몸을 Crush라고 불리는 구속 상자에 밀어 넣고 지렛대를 눌렀다. 버저음과 함께 기구가 몸통을 으스러뜨릴 듯 사방에서 조여오기 시작하자 형은 기겁하며 오만가지 욕설과 눈물을 동시에 쏟아내기 시작했는데, 「야 이 개새끼들아! 쳐다보고만 있지 말고 뭐라도 좀 해봐!!!」 시뻘건 핏발이 선 황소 같은 눈동자로 한국인 워커 쪽을 노려보며 짖어댔다. 그러나 그가 지칭한 《이 새끼들》 중에서 그의 울부짖음에 동요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정말 대단해요.」 감탄사마저 튀어나왔다. 그러니까, 동음이의어처럼, 이번엔 그 대단하다는 말에는 조롱 섞인 야유와 휘파람 소리가 곁들여져 있었다.

 「Fucking’ stay still.」 달칵-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호치키스가 지나간 형의 귓불 위로 노란색 플라스틱 번호표가 부착되었다. 그사이 짧은 단말마의 비명이 한 차례 더 축사 안에 울려 퍼졌다.

 「And what’s next~?」 

 J가 능글맞은 제스쳐를 취하며 좌중을 향해 돌아섰다.

 「Ring, Ring, Ring! Castration!」

 바로 옆에서 D가 열성적으로 벨을 누르는 모션을 취했다. Castration. 거세 작업을 지칭하는 단어였다.

 「Bring my blade, Danny.」

 「Ahoy!」

 「But first things first.」

 J는 쇠사슬을 형의 목둘레를 따라 친친 감기 시작했다. 그가 버둥거릴 때마다 잘그락거리는 소리가 도살장 안에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Why don’t we just do ringing this time?」 

 보통은 면도날과 같은 도구를 이용해 축 늘어진 소의 음낭 아랫부분, 그러니까 백색피막까지 마취 없이 흠집을 낸 다음 포도 껍질 안에 포도알 꺼내듯 Testis를 쑥 빼내는 것이 관례이긴 했지만, 피가 통하지 않게 고환 기저부에 줄을 바싹 묶어놓고 썩어 떨어져 나가게 하는 Ringing이란 기법도 흔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속전속결로 마무리 지을 모양이었다. D는 자신의 작업용 칼을 가져왔는데, 다른 쪽 손에는 화로에서 갓 뽑아 들고 온 시뻘겋게 단 인두가 쉭쉭 대며 하얀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Don’t fucking touch me!」 형은 울고 있었다. 짧은 시간 사이에 어찌나 요동을 심하게 쳐댔는지 쇠사슬이 감긴 그의 목 부근엔 벌써 시퍼런 피멍이 짙게 배 있었다. 

 「Fuckin’ settle down, prick.」 짱돌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주먹이 석철 형의 안면에 무지막지하게 내려꽂혔다. 퍽 하는 둔탁한 몇 차례의 소리가 멈추자 그의 낑낑거리던 신음도 함께 조용하게 잦아들었다. 고개를 옆으로 축 늘어뜨린 그의 오른쪽 뺨에 인두가 닿았다. 곧 치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드라이아이스 같은 연기가 사방으로 퍼져나기 시작했다.

 「아, 갑자기 배고픈데.」

 살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나자 팔짱을 끼고 묵묵히 상황을 관전하기만 하던 진호가 못 참겠다는 듯 한마디 내뱉었다. 그는 태즈매니아에서 양가죽 무두질을 하다 온 일꾼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그의 곁을 스쳐 지날 때면 언제나 쿰쿰한 양털 노린내가 진동했다. 고기 굽는 냄새가 노동자의 허기진 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Good boy!」 진호의 누리끼리한 눈동자 안에 가로로 길쭉하게 찢어진 홍채가 석철 형의 신음에 맞춰 위아래로 들썩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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