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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rain D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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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r 23. 2020

가족 여행에서 사람을 한명 죽였다

가족 여행에서 이방인을 한 명 죽였다. 호텔 방에서 피해자는 테이블 위에너덧 명의 사람들에게 팔다리가 단단히 포박된 채 눕혀져 있었다. 가족들은 나를 돌아보며 '네가 목을 썰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니, 시켰다. 하얗게 질려 구원을 바라는 눈길로 그들을 한 명씩 돌아보았지만 이미 가족들도 패닉 상태에 빠져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결국, 나는 내가 총대를 메기로 결정했다. 누구라도 한 명은 해야 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의식이 남아 있는 사람의 목에 칼질했다. 호텔 방 바닥으로 머리통이 떨어질 때까지 내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썰려라, 썰려라, 썰려라, 썰려라...'


머리가 사라진, 몇 분 전까지는 온전한 사람의 몸이었던 고깃덩어리를 바라보면서 가족들은 단체로 귀신처럼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 괜시리 분위기에 책임감을 느낀 나는 그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저번에도 한 번 해봐서 잘 안다. 나만 믿으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나 나도 살인과 유기가 처음이긴 마찬가지였다. 나 역시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게워낼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지만, 공황에 빠진 가족들을 위해 애써 끝까지 태연한 척했다.


시체의 부위를 잘게 나눈 우리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가장 골칫거리인 머리통을 유기할 방법을 토론했다. 추려진 방법은 크게 세 가지였는데, 하나는 호텔 옆 아파트 단지에 사는 사람이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곳을 잘 봐두었다가 종량제 봉투를 사서 그 안에 음식물 쓰레기와 함께 섞어 버리기였고 또 다른 하나는 땅속 깊숙이 파묻어 놓기였다. 마침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기에 우리는 근처 부지로 가서 머리통을 버릴만한 장소를 물색하기도 했다. 나는 기꺼이 신발을 벗고 맨발로 흙을 이리저리 밟으며 날이 갠 뒤 땅이 얼마나 굳을지 감도를 체크하기도 했다. 마지막 방법은 신문지에 잘 포장하여 냉동실 한구석에 얼려놓기였다.


우리는 우선 머리통 유기를 제일 마지막에 결정하기로 하고, 잘게 토막 낸 살점들을 각자의 캐리어에 나누어 담고 호텔 체크 아웃을 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가족들과 또 몇 명의 지인을 초대한 술자리가 열렸다. 가족 친구 중 한 명이 동네에서 유명한 탕아였는데,  그가 술자리에서 취기가 오르면서 또 다시 난동을 부리기 시작하자 가족 중 한 명이 지나가는 말로 '저런 새끼한테 시체 운반 역을 맡겨서 인생 좆되게 만들어야 하는 건데'라고 내뱉었다. 술자리 분위기가 삽시간에 싸해지는 것은 당연했다.


나는 그 어색한 상황을 무마하고자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빈 술병으로 그 탕아의 머리를 냅다 후려쳤다. 얼마나 세게 내려쳤는지 바닥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굴러떨어지는 그의 머리에서 피가 철철 솟기 시작했는데, 나는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재밌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의 머리에서 피가 멈추지 않아 바닥을 흥건하게 적셔가고 있었고, 나는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 흰 셔츠에 붉은 그을음이 생길 정도로 그의 곁에 따라 누워 배를 잡고 뒹굴며 한참을 웃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구급 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그 사이 누군가 구급차를 부른 모양이었다. 탕아가 실려 나가는 사이, 가족들과 지인들은 뭐 저런 미친년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이때다 싶어, 미친 척의 종지부를 찍어야겠다는 신념으로 깔깔 웃다가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목 놓아 통곡한 것이다. 바닥에 뭉개진 피 그을음 위로 나의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나는 맨손으로 바닥을 치며, 머릿속으로는 계속 마지막 남은 시체 부분 처리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역시 얼리는 게 가장 좋으려나?








그런 꿈을 꾼 밤이었다.

2020.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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