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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Oct 19. 2020

방귀가 잦으면 언젠가 똥이 나오겠지

 착한 딸이 지겨우세요? 



"방귀가 잦으면 똥이 나오겠지"


무려 둘째 이모가 2020년 신년 맞이 기념으로 내게 사사하신 말씀이다. 가족들의 바람과는 기울기가 다른 삐딱선을 타는 내 모습을 보고 거진 체념을 하다시피하며 내뱉은 말이다. 처음에는 셋째 이모네 딸과 나를 비교하며 자극하려 하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 약발이 시들해지기 시작하자 ‘네 인생이 걱정되어 그런다’로 전략을 바꾸셨다. 사실 가족들이 내 인생을 걱정하는 이유는 정말 ‘나’ 하나 때문만이 아니라 집에 가장 역할을 떠맡은 K-장녀로서, 그들의 안정된 노후를 보장할 만큼 큰돈을 펑펑 벌어들여야 하는데 훨훨단신이니 어쩌고 하며 ‘지랄 떠느라’ 제 입에 겨우겨우 풀칠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치 믿음으로 이익을 실현하는 기도 매매법처럼, If you are Johnberman(존나 버티면), you could earn huge money(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리라)라는 주식 시작 명언을 실현하듯이 가족들은 나의 지랄 행보에도 불구하고 인내심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나는 아직 시장에서 평가절하된 우량주인 셈이다.




제멋대로 사는 삶을 정신력이 강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추천하고 싶지는 않지만, 가족들의 부담스러운 기대를 꺾고 싶은 이들에게는 한 번쯤 시도해보라 말해주고 싶다. [역시 우리 딸, 우리 딸] 하던 것이, [저 불쌍한 것, 저 불쌍한 것]으로 바뀌게 되고, 그 순간 가족 부양의 짐이 조금은 덜어지는 되기 때문이다. 사실 대부분의 문화권 안에서 딸들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기성세대와 사회 기득권층의 기분을 거스르지 않고 그들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사는 법을 습득하며 자라난다. 가족 및 각종 사회 공동체의 욕구와 바람을 내면화하여 자아를 형성하고 진짜 느낌과 본능적 욕구를 존중하는 태도는 ‘성숙하지 못하다’라거나 ‘이기적’이라고 손가락질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게 모범적인 딸이거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정에서 자란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딸일 수록 충족시켜야 하는 주변의 기대치는 나이와 함께 점점 더 그 수위가 높아지고는 한다. 주변에서 본인에게 기대하는 바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착한 딸이니까. 나 또한 거짓으로 형성된 욕구가 나의 주관적 욕구라고 착각하는 20대를 보냈다. 대학 입시와 졸업, 그리고 취업까지 내가 원하는 것보다 사람들 앞에 그럴싸하게 보일 것들을 성취하고 싶었고, 가지고 싶어했다. 기대를 만족시킬수록 부담을 덜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면 그것은 대단한 착각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당신이 가족들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은 점점 더 당연하게 되고 바라는 것은 점점 더 커지게 된다. [딸]과 [인적 자원]의 경계는 모호하다. 과연 어디까지 도리이고 어디서부터 과도한 부담이 되는 것일까? 사실 나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 확실했던 것은 가족들의 기대치를 낮출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버겁기도 했다. 나는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 아니라 버틸 자신이 없어서 그만 두었고, 또 어떤 것은 시도하려 하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는 삶은 버겁다. 가장 최악의 것은 이도 저도 되지 못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휘뚜루마뚜루. 그렇게 인생의 변곡점을 그리다 보면 나중에는 나를 노후 연금처럼 생각하던 가족들이 ‘저 놈이 제 앞가림만 잘했으면’이라는 뉘앙스로 기대의 방향이 바뀌게 되더라. 시집과 손주 타령하시던 엄마도 언젠가부터 내가 아닌 남동생을 붙잡고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라고 훈수 두더라. 나에게 바라는 역할이 ‘용돈 잘 주는 고모’로 바뀌게 되더라. 그래서 나는 이제 미래의 남동생 주니어에게 용돈 따박따박 챙겨주는 능력 있는 고모가 되기 위해, 좋은 습식 사료 가져다 바치는 고양이 집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방귀를 뀌고 있다.



뿡.


뿡.


뿌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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