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유치원을 다닐 적에는 크리마스 시즌마다 연말마다 원장 선생님이 산타 복장을 하고 등장하여 원생들에게 선물을 나눠주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원장님은 「짱구는 못 말려」에 나오는 두목 원장님과 외관상 매우 흡사했기 때문에 시뻘건 옷을 입고 수염을 덥수룩한 수염을 붙인 거구의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즐거움 대신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원생들이 산타클로스 품에 안겨 사진을 찍을 때마다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유는 낯선 사람 품인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냥 그날따라 원장 선생님이 더 무섭게 느껴져서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치원 측의 어설픈 행사 덕분에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크리스마스에 대한 특별한 환상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내 기억 속의 원장님 모습....
산타클로스 이벤트와 함께 기억 저편에 남아 있는 또 다른 기억은 곱게 한복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모아 놓고 ‘장래의 희망’에 대한 포부를 돌림노래처럼 시키는 광경이다. “ㅇㅇ아~ ㅇㅇ아~ 너는~ 너는~ 자라나서~ 무~엇이 되고 싶니~♪” 이렇게 반 아이들이 후렴구를 제창하면, 지목 당한 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 대답하는 구성의 돌림노래를 불렀다.
“너는~ 너는~ 자라나서~ 무~엇이 되고 싶니~♪”
“나는~ 나는~ 자라나서~ 엄~마가 되겠어요~♬”
“그래~ 그래~ 너는~ 너는~ 엄~마가 되어라~♪”
엄마가 되겠어요! 라고 우렁차게 외치는 아이는 화장을 곱게 하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여자 원생들도 모두 비슷비슷하게 두꺼운 화장을 한 채였다. 남자 원생들은? 당연히 아이답게 민얼굴로 앉아 있었다. 더 열 받는 것은 내 다음 순서로 지목된 남자아이의 꿈이 ‘경찰’이었다는 데 있다. 아, 왜 나는 그 시절 경찰이라든지 의사라던지 로봇 과학자가 될 꿈을 꾸지 못했던가. 그 시절의 나는 산타클로스보다 ‘모든 여자 아이들은 나중에 엄마가 된다’는 명제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왜 5살의 나는 ‘12월 25일에 산타클로스가 선물을 나눠주러 온다’는 이야기에는 심드렁했으면서 여자 아이는 엄마가 된다는 명제에는 확신에 가까운 믿음이 있었던 걸까?
“현대 국가도 기본적으로 집단적 자아에 관해 들려주는 이야기로 정의된다. (…) 영웅과 적, 독특한 가치관, 삶의 방식을 비롯한 온갖 요소가 이야기에 녹아있다” 윌 스토가 자신의 저서 「이야기의 탄생」에서 서술한 것처럼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한 민족의 집단 의식 및 공동체적 특성을 반영한다. 아이들은 가부장제를 계승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성장한 기성세대가 각색한 이야기들을 통해 한국의 집단주의 문화와 결혼, 젠더 역할과 규범 등을 비롯한 사회적 요소들에 대한 개념을 무의식 중에 학습하게 된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이란 놀이를 통해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선입견’ 또한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노출되었던 콘텐츠들-동화, TV 프로그램, 교재 등-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다. 굳이 ‘누구와 누구가 만나 결혼하여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류의 결말이 아니라 할지라도, 가족과 관련된 서사는 거의 모든 이야기에 배경처럼 깔려 있다. 이때 제시되는 ‘보통’의 가정과 결혼제도에서 엄마와 아빠는 염색체에 따라 명칭이 정해질 뿐만 아니라 그 역할까지 명확하게 구분 당한다. 아이들은 인식이라는 것이 생기기 전부터 자연스럽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젠더 역할과 규범이 무엇인지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엄마-아빠-아이라는 삼자적 가족극장 안에 사적 영역의 행복 서사가 기입되어온 것이다
나아가 남성과 여성이라는 극화된 젠더이원 체계에서 노동과 사랑, 섹슈얼리티, 정체성, 공동 거주와 사랑연합의 합법적 방식도 독점적으로 규정되고 이상적인 규범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종교 교리를 잘 모르는 아이들도 동성애 커플에 반감과 혐오감 드러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상이 아닌 비정상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것들은 일차적으로 당혹감을 자아낸다.
반면 같은 사회적 콘텐츠에서 독신자(오늘 날에 1인 가구)가 등장할 때 지정되는 역할은 늙거나 병이 들어서, 혹은 공동체에 용서받지 못할 죄를 저질러 마을 밖으로 버려진 존재이거나 혹은 외딴 오두막에서 장작불을 지펴 놓고 무쇠 솥에 두꺼비 다리나 파리 눈알 등을 넣고 펄펄 끓이는 무서운 마녀로 묘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위에 언급된 정상적 범주에 속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다.
윤지영. (2017). 비혼선언의 미래적 용법 : 페미니스트 변이체들의 반란. 현대유럽철학연구, 46(0), 349-391.Ji-yeong Yun. (2017). L'usage futuriste et evenementiel du manifeste du refus du mariage: la revolte de la nouvelle subjectivation feministe nomme metamorphoject. Researches in Contemporary European Philosophy, 46(0), 349-3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