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래의 희망이 [좋은 엄마]였던 아이는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라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세상은 놀라운 속도로 변해갔다. 그중에서도 가장 괄목할만한 성장을 한 것은 단연 SNS(social network service) 플랫폼이었다.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 등 각종 플랫폼 및 커뮤니티가 확산 및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누구나 인터넷에 접근만 할 수 있으면 손쉽게 콘텐츠를 생성하고 다른 소비자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사회적 이슈와 그와 관련된 젊은 층들의 생각과 감상을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즉, 예전에는 정보의 제공자 및 발화자가 한정적이었다면(책, 신문, 잡지 등) 인터넷 공간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정보를 편집하여 콘텐츠를 불특정 다수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음만 먹는다면 누구나 스토리텔러가 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캘리포니아에 사는 70대 할머니만의 텃밭 가꾸는 팁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고, 중국에 한 도시에 사는 거대한 강아지 차우차우가 재롱부리는 모습을 서울 도심에서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빠른 속도의 공유라는 SNS 특징은 세간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공간과 시간의 제약이 사라지며 각종 사회적 문제가 폭로되고 그에 대한 공공연한 논의가 불특정 다수를 통해 진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플랫폼을 통해 거의 실시간으로 피드백을 주고받던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특정 경험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비슷한 사회 구조에 속한 대다수 사람이 겪는 보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다.
한 예로 N 사 플랫폼에서 연재되었던 한 출산 웹툰의 경우, 매회가 업로드 될 때마다 작가의 이야기를 공감하는 댓글이 몇 백 개씩 달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만화를 교과서로 지정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출산 미경험자들에게 처음으로 낱낱이 공개된 임신과 출산 과정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탄생의 신비’라는 우아한 수식어만 가져다 붙이기에는 ‘탄생의 고통’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산모들의 고충들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 낳는 만화>의 작가는 만화의 프롤로그 부분에서 분만만 힘든 것이 아니라 임신 중에도 힘들고 아플 수 있다는 것을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사실에 분개하며 '내가 이 경험을 꼭 기록할 것이다'라고 다짐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즉 여성 신체에 대한 위험부담과 숱한 이상증상들을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미리 마음에 준비를 하거나 혹은 다른 선택-예를 들면 딩크족-을 내릴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같은 작품에서 작가 쇼쇼는 인터넷에 떠돌던 ‘조리원의 하루’라는 노래를 언급하며, ‘유축할 때마다 농장에 갇혀 밥 먹고 젖만 짜내는 젖소가 된 기분이었다’고 그때 당시 느꼈던 고통 및 정서적 우울감을 진솔하게 서술하고 아름답게 미화된 모성신화에 대해 진솔 담백한 폭로를 이어가며 많은 기혼자들의 동조를 사기도 했다.
ⓒ 쇼쇼 작가의 <아기 낳는 만화> 중
또한 각종 매스 미디어에서 ‘변종’ 취급을 면치 못했던 1인 가구의 삶이 SNS를 통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비혼 인구에 대한 대중적인 인식 개선도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성애적 가족 서사에 가담하지 않고도 나름의 행복을 누리며 사는 다양한 삶에 대한 롤모델이 제시되며 젊은 층의 진입장벽 및 두려움을 낮추기 시작한 것이다. 한 예로 現 중화민국(대만) 총통 차이잉원(63세)의 짤(인터넷 공간 속에서 돌고 도는 각종 '자투리 이미지 파일'의 통칭)에는 왜 결혼하지 않았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소시지 하나를 위해서 돼지 한 마리를 다 살 필요가 없다’라고 대답한 모습이 담겨 퍼지며 ‘크, 저게 인생이지’, ‘여자답다’라는 등의 반응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여기서 총통이 비유한 ‘돼지’는 가정을 꾸림으로써 수반되는 사소하지만 중요한 사건- 내조, 자식의 교육 등-들을 지칭한다. 그가 느끼기에는 결혼을 통해 얻는 기쁨과 보람의 크기보다 그로 인해 겪게 될 시간과 에너지의 소모가 더 크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특히나 아직 결혼에 대한 보수적인 시각이 강한 동아시아권 국가에서 결혼하지 않고 정치적 커리어 달성에 초점을 맞추는 롤모델이 등장한 것이 결혼과 출산의 압박을 받는 젊은 세대에게 카타르시스를 준 것이다.
또한 점차적으로 새로운 삶의 양상을 담은 콘텐츠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며 여러 세대에 폭 넓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가장 흥행한 애니메이션으로 기록된 겨울왕국(Frozen, 2014)의 후속작 겨울왕국2 (Frozen II, 2019)에는 주인공 엘사가 한 왕국(아렌델)의 여왕 자리를 동생 안나에게 물려주고 노덜드라인 정령들과 함께 마법의 숲에 남는 것을 선택하는 행보가 그려진다. 여왕의 자리에서 혼인을 통해 적통을 재생산하여 대를 잇는 역할과 임무를 맡는 것 보다 자신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상태에 남기로 결정한 것이다. 게다가 엘사에게는 다른 디즈니 만화에 등장하는 러브 라인도 없다. 그는 뮬란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아버지를 위해’ 대신 전장에 나가는 운명을 선택하지도, 라푼젤에 등장하는 주인공처럼 자신의 반쪽과 함께 역경을 헤치고 쫓겨난 성으로 돌아가 다시 왕관을 쓰는 운명을 선택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아내도, 엄마도, 여왕도, 언니도 아닌 그저 엘사인 채로 남는 것이다. 그렇다고 원조 홀로족 격인 옛 동화 속 ‘마녀’들처럼 외딴 곳에 쓸쓸히 고립되지도 않는다. 아렌델의 여왕 자리를 물려주고 노덜드라인과 정령들과 함께 마법의 숲에서 지내며 이후에는 안나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안나로 대표되는 ‘사회’와 지속적인 소통을 유지한다.
만약 5살 때의 내가 이와 같은 서사의 동화나 만화를 접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대만 총통과 프로즌의 엘사라는 캐릭터를 알았다면 내 꿈은 ‘좋은 엄마’가 아니라 한 나라의 총통이 되었을지도 또 자유로운 탐험가나 고고학자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더 한층 더 다양해진 스토리텔링 채널과 콘텐츠를 통해 앞으로 자라날 아이들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물론 나의 선택지도 더욱 폭 넓어졌다. 사람들의 다양성을 지지하고 응원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그런 꿈을 꾸게 되었으니까. 내가 그런 콘텐츠들의 영향으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