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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카프카 소설에 나오는 벌레랑 사촌지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네

by Ellie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중식이- 반딧불이 中


얼마 전, 나는 다시 외국계 회사에 취업했다. 창작계 프리랜서로 활동한 지 6년 차이자, 사회에서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라 불리던 삶을 만 6년 만에 정리했다는 뜻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내 시간과 공과 에너지와 피땀눈물.. 등등 기타 내 신체의 수분들을 바치고 내 젊음을 공물 삼아 바쳤던 창작 행위와 그를 통해 산출된 결과물로 사회의 그럴싸한 인정을 받는데, 사람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지속 가능한 수입원 구축에 실패... siva.. 했다는 얘기다.


전업 작가?

이제 안 한다.

아니,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어도 못 한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방구석에 틀어 박혀서 타이핑만 하다가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 말라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아- 젠장.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인간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데. 만약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하늘에서 날벼락이, 그것도 하필 내 정수리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비명횡사하게 된다면 난 내 이름은커녕 제대로 된 가죽 한 장 남기지 못할 게 분명하다.


그래서 지금 기분이 어떠냐고 누군가 잔인하게 묻는다면-. 잠깐 두 눈과 입술을 꾹 다물겠지. 그러다가 말을 고르고 골라도 도저히 예쁘게 내뱉을 말이 없어서 남의 노랫말이나 빌리겠지. 아니 글쎄, 저는 제가 반짝반짝 작은 별인 줄 알았는데 개똥벌ㄹ... 반딧불이라잖아요? 내가 카프카 변신에 나오는 그레고르 잠자(Gregor Samsa) -이하 벌레-였다니! 나 은하계 일원 아니었어? 갤럭시 오브 가디언즈는 못 돼도 존재감 있는 뭔가라도 되는 거 아니었어요?


'그래도 괜찮아 나는 빛날 테니까'.


글쎄.

솔직히 욕이 나온다.

그것도 무지 험한 욕.

그걸 증명하기 위해 나는 지금도 양손 중지로 키보드를 치고 있다.

이제 망스라이팅(희망 + 가스라이팅)은 그만.

제발 좀 그만!


모든 인간은 자유롭다고, 특별하다고, 반짝인다고 얘기는 그마안-.



?: 인석아... 너는... 별이야.... 소중하고 특별하고 이 세상에 하나뿐인 유일무이한 존재....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토요일 오후.

모든 소리가 눅눅하게 젖어드는 시간.

나는 카페 구석에 가만히 앉아 반쯤 빈 머그잔을 앞에 두고 궁상맞게 상념에 잠긴다. 벌써 회사에 출근한 지 한 달 차가 되어가고 있는 시점. 그러니까 더 이상 생계를 위해 글을 쓰지 않는 이 즈음이 내 실패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들여다보기 적절한 때라고 생각이 들어서.

얼마간 시간을 보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아래와 같았다.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데서, 난 남들과 다를 거라고, 난 당연히 성공할 거라고 생각한 데서 모든 위험 부담이 시작되었다.


그럼 여기서 꼬리 질문.


나는 왜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했을까?


이유야 간단하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었으니까.

첫 직장은 국내 대기업. 두 번째 직장은 탄탄한 외국계.

이 모든 걸 뒤로 한채, 버티지 못하고 도피하는 나는 반드시 '특별해야' 했다. 아니면 말 그대로 굶어 죽을 테니까.


'니 나가서 뭐할라꼬? 넘의 돈 버는기 그리 쉬운 줄 아나?'


첫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1차, 2차, 3차... 끝없는 면담을 거치던 그 시절에 들었던 질문이었다.

그땐 속으로 그 늙은이를 비웃었지. 저요? 존나 할 거 많은데요? 뭘 해도 회사 안에 처 박혀 있는 것보단 나을 거예요. 하다 못해 길에서 크레페를 뒤집더라도 '평범한' 직장인으로 늙어가는 것보단- 인격 모독이 취미인 당신 정수리보다는 제 미래가 더 빛날 겁니다. 언더스탠드?


어릴 때부터 난 글 잘 쓴다는 소리는 곧 잘 들었으니까. 상도 받고, 신문사 공모전에 당선되기도 하고. 뭐 그럼 당연지사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맞지 않을까?


그땐 몰랐다. 나는 알베르 카뮈처럼 깨어 있는 ‘반항하는 인간’이 아니었다는 걸.

내 신경계가, 사회 문화가, 매스미디어가, 타인들의 성공팔이와 희망팔이가 내 안에 헛된 욕망을 불어넣었을지 모른다는 걸.

한국이라는 공동체, 그 뿌리 깊은 아비투스가 나의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으며, 내 생각과 선택 그 모든 것의 저변에는 나의 개인적인 성장 배경, 사회적 관계망, 계층적 현실이 아주 촘촘하게 코딩되어 깔려 있었다는 것을.

이 모든 일련의 선택은 주체적 사고와 자율적인 결정의 결과가 아니라 사회적 자동성의 연쇄 반응일 뿐이었다고, 그때의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모든 것이 너무도 상대적이었다.

난 독립적이지도, 자율적이지도 않았다.

단지 현실이 너무 버거웠기에 내면화된 타인의 목소리를 편리하게 '나의 것'으로 취해 도망과 도피의 근거로 삼았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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