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편 (1) 도대체 누가 뜨거운 심장으로 살라 그랬니
"Revenge is a dish best served cold."
영미권에서는 아주 유명한 격언이다.
직역하자면 이렇다.
"복수는 차갑게 식힌 음식처럼 서빙해야 한다."
조금 더 진한 맛으로 변주를 좀 줘보자면,
"가장 달콤한 복수는 살얼음처럼 차갑게 식혀낸 맛이다."
근데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복수란 본래 뜨거운 것이었다.
원망과 적개심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두 눈이라던지, 머리끝까지 활화산처럼 화가 '치솟는' 다던지,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던지... 복수는 언제나 붉은 색감을 띄고 있었다. 피가 낭자한 뒷골목의 검은 그림자, 심장에 비수가 박힌 채 숨을 헐떡이며 서서히 무너져가는 실루엣까지. 복수의 미학은 언제나 뜨거운 피와 타오르는 증오로 점철되기 마련이건만.
그런데 복수를 차갑게 서빙한다고?
여기서 복수의 아이러니가 시작된다. 진짜 복수는 뜨거울수록 실패하기 쉽다. 감정에 휘둘릴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판단력은 흐려진다. 이는 뇌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분노에 사로잡히면 전두엽은 마비되고, 편도체만 과열된다. 이성은 흐려지고 판단력은 날아간다는 소리다. 그런 상태에서 저지른 복수는 대부분 분풀이에 불과하거나 자충수가 되고 만다. 어설프고 효과적이지 못하다.
복수는 단김에 빼는 요리가 아니다. 숨이 완전히 죽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 감정의 열기가 식고 나면,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서론이 길었다. FaileDiary에 실패 인덱스 하나 더 끼워 넣으며, 이 와중에 웬 복수 타령이냐고, 어이없어할지도 모르겠다. 사실 전하고 싶었던 말은 단순하다. 차갑게 식혀야 할 건, 복수만이 아니라는 것. 젊은 혈기—혹은 그보다 더 솔직하게, 객기로 불려야 마땅할지도 모를 충동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음, 소제목을 붙이자면 이렇다. ‘의류 브랜드 런칭’하겠다고 들끓는 펀딩 열기 속에 몸을 던졌다가, 그 열기로 초가삼간... 아니, 팀플까지 와르르 태워먹은 이야기.
어쩌면 강 건너 불구경이라 독자 입장에선 재밌을지도?
n 년 전. 글로벌 브랜드 x사를 그만두던 날, 나는 확신 하나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력서에 한 줄 남은 화려한 커리어를 디딤돌 삼아, 이번엔 내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야망.
왜 나는 브랜드가 되고 싶어 했을까?
당시 수십억 단위의 돈을 받으며 우리 브랜드 옷을 걸치고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 셀럽들과 스포츠 스타들을 보며 내 처지가 너무 극명하게 대비되어 잘 보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억대 개런티를 받는 셀럽이 되고 싶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자신의 가치와 가능성을 화려하게 떨치며 돈을 벌고 세간의 인정과 사랑을 받는 그들의 재능과 기회가 부러웠을 뿐.
그래서 내가 고안한 선택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내가 브랜드를 만든다.
둘째, 내가 브랜드가 된다.
물론, 회사 안에서 성실한 한 부서원으로 살아가는 일에 의미가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렇게 살아간다는 건 늘 내 이름이 아닌, 타인의 상징을 달고 움직이는 삶에 다름이 없게 느껴졌다.
상품의 일부,
브랜드의 부속품.
무대 아래 어둠 속에서 잠긴 채 유령처럼 움직이는 스태프,
익명의 톱니바퀴.
아마 그즈음부터였을 거다. 내 머릿속에 시시포스가 떠오르기 시작했던 게. 무의미한 반복, 무거운 돌덩이, 끝없이 미끄러지는 언덕. 삶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런 실존적 질문들만 점점 깊어졌고-.
어느 날 문득, 나는 두 발을 멈춰 서게 되었다.
의미 없어 보이는 돌 굴리기를 멈추기로 결심한 것이다.
(2)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