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텀블벅 성공 후기- 동업의 난(亂)

사업 편 (2) 친구 사이에 이해관계가 얽히면 생기는 일

by Ellie


현명한 옛 어른들은 말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돈거래는 하지 않는 거라고.

또 이런 말도 남기셨지.

친구끼리 사업하는 거 아니라고.


수백 년을 건너온 선조들의 혜안. 왜 나라고 몰랐겠는가? 다만 내가 그 케이스 중 하나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뿐.

그 말이 다시 떠오른 것은 꽤 늦은 후였다. 그러니까… 텀블벅 펀딩이 대성공하고, 우정 혹은 파트너 쉽이라 불리던 것이 와르르 무너진 후쯤?


"야, 이거 진짜 대박각이다."


이 대사. 이게 데드 플래그가 될 줄은 미처 몰랐다.

그러니까 전쟁 영화로 치면, 참호 안. 머리 위로 총알이 빗발치는 참호 안에서 병사 하나가 품에 고이 간직해 둔 오래된 흑백 사진을 꺼내는 식의 클리셰가 될 줄이야.




INT. 참호 속. 전장 한복판.

총성이 빗발치는 가운데. 땅은 진창이고, 병사들의 몸은 흙과 피로 뒤덮였다.
세 명의 병사, 참호 안에 몸을 낮추고 숨을 죽이고 있다.


병사 A (조용히 숨을 고르며): ...씨X, 오늘 안에 여기서 나갈 수 있을까?

병사 B (코웃음 치며): 뒤지지만 않으면 다행인 줄 알어.

병사 C (그때 품에서 조심스레 뭔가 꺼낸다): 야, 이거 좀 볼래?


카메라가 천천히 줌인한다.
병사 C의 손엔 오래된 흑백사진 한 장.
손때로 가장자리가 누렇게 바래 있다.


병사 C (조용히 웃으며): 우리 와이프야. 예쁘지? 품에 안 긴 건 내 딸이야. 이제 막 걸음마 시작...


순간, 병사 A가 번개같이 손을 뻗어 사진을 낚아챈다.


병사 A (다급하게): 미친놈아!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사진 안 집어넣어?!

병사 C (화들짝 놀라며): 왜 이래 갑자기?

병사 A (버럭): 야 이씨, 이 타이밍에 사진 꺼내면 무조건 죽는 거야, 병X아!


그 순간.

콰아아아앙!!!!!
거대한 포탄이 참호 근처에 떨어진다.
순간, 섬광. 귀를 찢는 폭음. 모래와 연기가 화면을 집어삼키며 페이드 아웃.


.

.

.


설마 내가 그 병사 C가 될 줄이야.

자, 그럼 이제부터 시작한다. 텀블벅 대성공! (이라고 쓰고 우정 멸망기라고 읽는) 찐 실화 스토리.








제1장: 태동(胎動) - 브랜드 런칭


때는 202n년, 장소는 홍대 근처 어느 카페. 또래로 보이는 네 명의 여자들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각각의 포지셔닝은 각기 달랐다. 디자이너 A, 기획자 B, 마케터 C, 인플루언서 D. 그들의 이름은... 그냥 이니셜로만 해놓자. 사실 뭐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니다. 어차피 이 이야기의 끝에서는 서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니까.


사실, 처음부터 모두 알던 사이는 아니었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 자본금은 빠듯했고, 인건비는 꿈같은 얘기였다. 결국 가장 현실적인 선택은 지인 추천이었다. 나는 인플루언서 D를 알고 있었고, 그녀의 소개로 나머지 인원을 알게 된 케이스였다. 인건비 대신 신뢰로 때운 파티 조합. 저렴하지만 위험한 구조였다. 결론부터 미리 말하자면 나중에 트롤짓을 하는 '지뢰' 역할은 파티원을 모았던 구심점인 D, 그녀 자신이었다는 슬픈 이야기.


아이디어 구상 단계엔 모든 것이 순풍에 돛 단 듯 순조로웠다. 파티원도 잘 모이고, 아이디어 회의도 막힘 없이 쭉쭉 진행되고. 무엇보다 의기투합이 굉장히 잘 되는 것 같았다. 사업 초창기. 우리는 이런 모종의 암묵적인 룰을 세웠다.


하나. 각자 맡은 바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둘. 갈등은 미리미리, 감정이 터지기 전에 말한다

셋. 성공의 과실은 공정하게 나눈다 (단, '공정함'의 정의는 추후 논의)


아, 3항에서 벌써 두 번째 복선이 깔렸구나. 이런 xx.




제2장: 융성기(隆盛期) - 텀블벅 대첩


우리의 제국은 놀라운 속도로 성장했다. 텀블벅이라는 전장에서 우리는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목표 금액을 nnnn% 넘게 달성하며 후원자들의 뜨거운 성원을 받은 것. 우리의 컨셉, 브랜딩 방향, 디자인, 그리고 서사까지 — 모든 것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마냥 순탄하진 않았다. 의견이 자주 부딪히기도 하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서로 마음이 긁혀 돌아서선 뒷말을 보태곤 했던 적도 있었다. 그런데도 누구 하나 먼저 그만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왜? 우리는 각자의 이유로 브랜드 론칭에 진심이었기 때문. 나 같은 경우에는 회사를 박차고 나온 데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하던 시기였다.


그때 내 머릿속을 꽉 채운 롤 모델이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야 조 말론. 전직 플로리스트였던 그녀는 작은 뷰티숍에서 일하다가, 1994년 ‘조 말론 런던’이라는 향수 브랜드를 론칭하게 된다. 그 후. 개점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5년 치 목표 매출을 달성, 미국 진출 반년 만에 약 11억 원의 매출을 기염을 토하며 1999년, 에스티로더에 수백만 달러에 인수되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자리 잡게 된다.

조 말론— 그 이름이 말 그대로 하나의 브랜드가 된 것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의 기획 아래 놓인 수많은 점들 중 하나가 아니라, 스스로 선을 그어 도형을 만든 사람.


프로젝트가 높은 펀딩률을 기록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명 희망이 보였다. 이 수치를 기반으로 브랜드를 정식 론칭하고, 플랫폼에 입점하고, 홈페이지를 열고, 다음 시즌 제품까지 기획하고— 문제는, 모든 제품 제작과 배송이 끝난 뒤부터 시작됐다. 정확히 말하면, 정산이 시작되면서부터.




제3장: 파국(破局) – 제국의 종말


생산 공장에 잔금을 치른 뒤부터, 어딘가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수익 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수익금을 전부 두 번째 상품 론칭에 재투자하자고 제안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었다. 모두가 같은 뜻일 거라 믿었던 건 순진한 착각이었다. 시작할 때 정산과 분배 기준을 명확히 하지 않았던 것이 결국 화근이었다. 왜 우리는 당연히 같은 방향을 보고 있을 거라고 믿었던 걸까. 누군가는 중간 정산이 당연하다고 여겼을 수도 있었을 텐데. 결국 이 일도, 다들 먹고살자고 시작한 거 아니었던가.


"처음 아이디어는 내가 냈잖아."
"브랜딩 구체화시킨 건 나였고."
"제작은 누가 다 관리했는데?"
"내가 주말마다 시장 조사 다닐 때, 넌 뭐 했는데?"


이쯤 되면 각자의 마음속에서 '기여도 계산기'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침내, 공식적인 회담이 열렸다.


1차 회담
- 의제: 수익 배분 논의
- 결과: 무산 (서로 다른 계산법으로 인한 이견)


2차 회담
- 의제: 기여도 재평가
- 결과: 회담 중 한 명 중도 퇴장


3차 회담
- 의제: 최종 합의점 모색
- 결과: “알아서 해.” 한쪽의 선전포고


4차 회담
- 의제: 정산 및 해산
- 결과: 처음 투자 비율대로 수익금을 나누고, 브랜드는 공중분해하기로


정산, 그리고 브랜드의 공중분해. 그게 지난 반년 가까이 쏟아부은 프로젝트의 결말이었다. 브랜드 콘셉트 정립과 포지셔닝을 맡았던 입장에서 모든 결과가 무(無)로 돌아간다는 건 분명 아쉬운 일이었다. 하지만 1차, 2차, 3차… 4차 회담까지 거치며 정신력과 감정을 고갈시킨 상태에서, 더는 이 일을 붙들고 있을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브랜드고 나발이고—이 문제로 얽힌 그 인간들과 더 이상 얼굴 맞대고 표정 관리하며 싸우고 싶지 않았던 것. 그게 내가 최종 합의에 동의한 가장 현실적인 이유였다.






몇 년이 흐른 지금, 동업의 쓴맛을 본 사람으로서 앞으로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1.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계약서는 반드시 써라.
말로만 한 약속은 기억도 다르고, 해석도 다르다.


2. 누가 무엇을 맡을지, 처음부터 명확히 나눠라.
“적당히 알아서 하자”는 말은 나중에 책임을 미루고 탓하게 되는 씨앗이 된다.


3. 돈 문제는 감정을 빼고 계산하라.
친구라고 대충 넘어가면, 결국 더 깊은 오해가 생긴다.


4. 각자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나중에 따지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지분이나 역할은 미리 정해두는 게 최선이다.


5. 의견 충돌은 당연한 일이다.
오히려 한 번도 안 싸운 사이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라.


6. 언젠가 헤어질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때를 위한 규칙도 미리 만들어두는 게 좋다.


7. 혼자 판단하지 말고, 전문가(변호사, 회계사)의 조언을 들어라.


8. 무엇보다, 사업이 성공해도 정산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여라.


그래서 결론적으로 나는 사업에 성공했는가?

아니. 실패했다.

왜?

내가 쏟아 부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감정 소모까지 계산하면 완전한 적자였으니까.

그리고 D와는 완전히 관계가 틀어지다 못해 이젠 연락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를 통해 알게 되었던 다른 파티원 모두.


퇴사.

그 이후 브랜딩 런칭 실패.

팀플은 성공했는데 팀이 와장창 깨졌다.

사람고 안 남고.

돈도 안 남고.

욕설만 남은 브랜드 론칭 도전기를 내 FaileDairy 한 대목에 끼워 넣으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에필로그.


혹시나 당시 파티원 중 누군가 이 글을 우연히 보게 된다면-. 이거 하나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비록 우리는 쌍욕하며(?) 갈라섰지만, 만든 제품만큼은 정말 좋았다고. 지금도 그때 만든 샘플, 잘 입고 있다. (너네도 그렇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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