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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May 16. 2018

까맣게 타들어가는 거미가 되지 않는 법

우리는 기다림을 멈추고 달려들어야 한다. 욕망에게.


 김수영이 그랬던가. 자신이 거미처럼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는 것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어두컴컴한 반지하 골방 한 모서리에 외로이 거미줄을 치고 아무것도 날아들지 않는 곳에서 먹이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까맣게 말라비틀어져 가고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석탄처럼 변해 부서지는 거미가 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하면 된다는 말인가? 거미줄을 치지 않으면 되는 것일까? 거미줄을 끊고, 버리고, 살짝 열린 창틈 사이로 몸을 구겨놓고 비집고 들어가 밖으로 도망친다면 삶이란 것을 살아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 하지만 거미가 거미줄로 먹이를 잡지 않는다면 어떻게 허기를 채우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자신의 도구를 버리는 순간 거미는 더 이상 거미가 아니게 되는 것이 아닐까?
 사실 우리 인간들도 모두 한낱 거미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우리들도 무언가를 욕망하기에 속이 까맣게 타들어간다. 때에 따라 그 대상은 형체를 조금씩 바꾸는데 때로는 사람이었다가, 때로는 물건이 되고 또 감정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런 고통 -욕망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했을 때 오는 박탈감-의 처방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무언가를 욕망하지 않으면 된다. 절실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이 해결책은 너무나 체념적이다. 무엇인가를 손에 그러쥐어 본적도 없는데 포기하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야박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른 해결책은 없는 것인가?
 
 기대의 대상을 옮기는 방법이 존재한다.

 벌레가 제 스스로 날아들 것을 기대하는 것을 그만두라는 이야기다. 자신의 심리적 안정감이 벌레, 즉 타자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거미는 먹이가 거미줄에 걸리기 전까지 모든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온연히 상실한다. 무력한 순간이다. '활은 시위를 떠났다.'라고 하며 나는 할 만큼 했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되라지 뭐.라는 생각이야말로 다른 의미에서의 체념적인 발상이다. 잊지 말자.

결과는 본인 스스로에게서 도출되어야 한다.

 상황에 대한 통제권을 찬탈해 오기 전엔 행위는 외부인이 행하고 그 결과에 대한 책임만 본인이 스스로 짊어지게 될 테니까.

 시위를 당겨서 활을 쐈으면, 대상이 맞아 고꾸라지나 안 고꾸라지나 멀뚱하니 서서 지켜봐선 안된다. 활이 빗나갔을 경우에 타깃은 화들짝 놀라 도망치게 되어 놓치게 될 테니까. 활을 쏘고, 재빠르게 다른 활을 손에 움켜쥐고 대상에게 접근해야 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행동해야 한다. 수단을 고정시키지 말자. 무언가를 욕망한다면, 행동해야 한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고 지레 포기하지 말고 일단 뭐라도 직접 시도해야 한다는 말이다.

 거미는 거미줄을 버리는 순간 더 이상 거미가 아니다. 직접 먹이의 뒤를 쫓아서 잡아먹거나, 다른 도구와 수단을 써서 대상을 포획하는 순간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로 태어나게 된다.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괜찮다.

 체념보다는 실패하는 쪽이 훨씬 살아있는 생명체 다운 행동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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